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본인이 패배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중국의 개입으로 수십만 건의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시민권자가 아닌 자가 투표를 실시해서 기소된 경우는 129건에 불과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근거가 부족한 부정선거 선동으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역풍을 받아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연설에서 27만 8000명의 비시민권자가 유권자 등록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광범위한 부정선거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거의 제시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미국) 연방 법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사건 기록을 분석한 결과, 연방 검찰이 1996년 의회가 제정한 '비시민권자 투표' 관련 연방 법률에 따라 기소한 사람은 단 129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며 "이 중 3분의 2 이상인 86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5년 반 임기 동안 기소됐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한 검찰은 어떤 사건에서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직적인 공모 혐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피고인 중 누구도 금전적 대가를 받고 투표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시민권자들이 중국이나 특정 국가의 지시나 요구 등을 받아 의도를 가지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합법적 투표권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관련 안내를 받고 투표를 실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통신은 "법원 기록과 인터뷰에 따르면, '비시민권자 투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거나 유죄를 인정한 73명 중 40명은 자신이 투표할 법적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며 "이 중 32명은 실수로 유권자 등록이 되었거나, 등록을 권유받았거나, 선거 관리 담당자로부터 투표 자격이 있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 중 8명의 경우 영주권자도 투표할 수 있다고 믿었거나, 등록이 완료된 것을 투표 자격의 증거로 여겼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34명의 피고인의 정당 소속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1명은 민주당원, 9명은 공화당원, 14명은 무소속인 것으로 집계됐다. 통신은 "이러한 다양한 정당 소속은 이 사건이 특정 정당을 위한 조직적인 공작의 일부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통신은 73명의 피고인 전원과 연락을 시도해 39건에 대해 피고인 또는 대리인과 면담을 실시했는데, 이들 중 한 남성은 플로리다주의 차량등록사무소 직원이 미국 시민과 결혼했기 때문에 투표할 수 있다고 잘못 알려줬다고 판사에게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한 명은 스스로 시민권자가 아니라고 밝힌 후에도 유권자 등록을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유권자 등록을 할 경우 국적 취득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들 피고인 중에는 한국인도 있었는데 멕시코, 일본, 폴란드, 이스라엘, 나이지리아, 캐나다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최소 3명은 유권자 등록을 할 때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을 사용했는데, 누구도 자신들에게 투표 자격이 없다고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신은 "트럼프는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를 부정행위의 증거로 자주 인용하지만, 법률 전문가들은 이러한 범죄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사기와는 다르다고 말한다"라며 "사기는 고의적인 기만 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비시민권자의 투표를 부정선거라고 규정하고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과 투표 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 제시를 의무화하는 이른바 '미국을 구하는 법안(SAVE America Act)'을 지난 3일 의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공화당이 "100년 동안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통신은 "선거 관계자 8명과 투표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시민권자의 투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근거 없는 부정선거 우려를 부추기고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17일 '세이브 아메리카 법안의 역풍'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법안 통과가 무산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믿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굳이 11월에 투표소에 가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있겠나?"라며 "공화당은 트럼프의 부정선거 선동 발언 때문에 2021년 조지아주 상원 결선투표에서 의석 2개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신문은 "공화당은 향후 2년의 (의회) 집권 연장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두고 선거 운동을 펼쳐야 한다"라며 "선거의 공정성을 개선할 방법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미국 선거가 정직하지 않다는 식의 막연한 의구심을 퍼뜨리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톰 틸리스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의 지적은 정확하다"라고 진단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한 근거인 수백만 명의 유권자 명부가 "중국에 의해 구매되거나 도난당하거나 해킹당했다"는 것에 대해 "실제로 2020년 정보당국 메모에는 적대 세력이 선거 인프라, 특히 '유권자 등록 데이터베이스, 전자 선거인명부, 공식 선거 웹사이트를 무력화할 능력이 있다'고 경고한 내용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신문은 "그러나 트럼프가 인용하지 않은 메모의 다른 부분에는 표 집계 시스템은 선거 결과를 왜곡할 만큼 광범위한 규모로 조작하기 어려우며, 각 투표소의 시스템은 인터넷이나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이를 악용하려면 물리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고 나와 있다"면서 "실제 감사 과정이나 종이 투표 추적을 통해 그러한 시도(부정선거)가 적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명시돼 있다"라고 전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밀 해제한 메모에 "투표 인원의 상당수는 미국 선거 행정 과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허위 정보와 거짓 서사가 쉽게 확산될 수 있다"며 적대국이 미국 내 부정선거 여론을 확산시킬 가능성을 우려하는 대목도 있었다고 밝혔다.
신문은 "해당 메모의 작성일은 2020년 1월 15일이다. 참으로 선견지명이 있는 정보가 아닐 수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적대국이 할법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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