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유능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그의 지지자들은 "일 잘 한다"고 평가해 왔고, 반대자들 역시 행정능력 자체만큼은 인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계곡 불법시설 철거에서 지역화폐, 코로나19 대응에 이르기까지 개별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재명은 문제를 발견하면 밀어붙이고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이미지를 굳혀 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거시 경제 지표는 상당히 좋다. 2026년 8월 수출은 982억5천만 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했고, 6월부터 석 달 연속 월 수출액이 9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라면 올해 안에 1조 달러를 넘기는 전인미답의 땅을 밟을 수도 있다. 미국, 중국, 독일에 이은 '글로벌 수출 4강'이 눈앞에 와 있다.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란 말이 무색하게 주식시장도 역사적 고점을 경험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졌던 막대한 공적자금 부채 97조2000억원이 내년 예산을 끝으로 모두 상환된다.
국가 아젠다도 선명하다. AI를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으로 선정하고 GPU, 데이터센터, 전력망, 반도체, 인재 양성을 하나의 전략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직후 정보통신산업과 초고속통신망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택했던 것과 비교해볼 만하다. 물론 성공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의 반도체 투자 압박도 있고 막대한 전력 수요와 데이터센터 입지를 둘러싼 환경 갈등도 있다. 그럼에도 평가할 만한 것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아젠다를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이전과 지역균형발전, 세종시 완성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이래 민주당 정부가 수십 년 동안 추진해온 장기 프로젝트를 이재명 정부가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낸다면 역시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지율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지난 4일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40%, 부정평가는 51%였다. 취임 후 최저치다. 흥미로운 점은 긍정평가의 첫 번째 이유가 '경제·민생'(14%)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부정평가에서도 '부동산'(23%), '경제·민생'(11%)이 꼽혔다. 그리고 '도덕성 문제·본인 재판 회피'가 6%로 나타났다.
"경제를 잘하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격언으로는 이런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쉽게 말해 '성과가 없다'는 게 아니라 성과가 신뢰로 전환되지 않는다. '유능함'의 반대말은 '무능함'만이 아니다.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저 사람은 일을 잘하는가?" 그리고 "저 사람은 누구를 위해 일을 잘하는가?" 첫 번째 질문의 답이 아무리 긍정적이어도 두 번째 질문에서 의심이 생기면 유능함에 균열이 가게 된다.
7월 형사소송법 개정 당시부터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우회로'라는 야당의 비판이 제기됐고, 지난 8월에는 검찰인권존중미래위원회가 대통령 관련 사건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으면서 같은 논란이 재점화됐다. 실제로 대통령 사건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인식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통령의 '사심 없는 유능함'이라는 브랜드에 균열을 낸다는 점이다. 정치에서는 실제 동기 못지않게 동기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순간 동기의 신뢰성에 균열이 가면서,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 손해를 본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해보면, 미래에 100억 원을 벌 기업이라고 해서 모든 기업의 현재 가치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위험한 기업에는 높은 할인율이 적용된다. 정치적 성과도 비슷하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높으면 작은 성과도 크게 평가된다. 반대로 신뢰가 낮으면 큰 성과에도 '정치적 할인율'이 붙는다. 정치적 신뢰가 훼손될 때 나타나는 비대칭성이다. 좋은 일은 우연으로 설명되고 나쁜 일은 의도로 설명되기 시작한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많은 성과를 만들어도 그 성과가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으로 축적되는 데 한계가 생긴다.
유시민이 대통령을 비난하며 '마키아벨리적' 정치인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했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인용하자면, 세상 일의 절반은 운(포르투나)에 달렸고,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역량(비르투)으로 개척할 수 있다. '비르투'는 단순한 도덕적 선이 아니다. 상황을 헤쳐 나가는 정치적 능력, 용기, 결단력, 그리고 지혜를 말한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은 '마키아벨리적' 정치인이다. 상황 판단이 빠르고, 의제를 선점하며, 행정조직을 움직이고, 반대를 뚫고 결과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필요한 '비르투'는 시장이나 도지사에게 필요한 비르투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다. 대통령 이재명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를 더 얻어내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포기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때 비로소 유능함은 신뢰와 결합한다.
결국 '사즉생 생즉사'다. 이 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AI 시대를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위험을 관리하면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면 오는 2030년 퇴임하는 대통령의 이른바 '사법 리스크'를 바라보는 정치적 환경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건 어려워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 위에 신뢰가 올라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이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대량실업 문제를 안고 가야 했다. 카드 대란, 대북송금 논란, 자녀 비리 등 수많은 사건을 겪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김대중 정부를 설명할 때 우리는 정보통신산업, 초고속인터넷, 벤처산업, 문화산업, 생산적 복지, 남북정상회담 같은 거대한 유산을 함께 이야기한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에 진입한 후 첫번째 도약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넘쳐나는 돈을 활용해 국가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 기회다.
'유능함'이라는 브랜드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유권자들에게 자기희생적 방식의 '신뢰'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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