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취소? 형식상은 대통령, 실질적으론 '법 위의 황제'!

[기고] 권력자도 심판대에 서야 법치주의…'법 앞의 평등' 형해화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신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조작기소 특검법'과 공소취소 문제가 다시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다. 김 후보자는 지난 2월 출범한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공취모)'의 공동대표를 맡아 모임을 이끌어왔다. 공소취소를 앞장서 주장해온 인물이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수장으로 지명되면서, 대통령의 형사사건 처리 문제가 다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럽의 근대 정치혁명을 상징하는 두 사건이 있다. 1649년 1월, 영국의 찰스 1세는 법정에 피고인으로 섰다. 왕이 반역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사형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140여 년 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국민공회의 재판을 거쳐 단두대에 올랐다. 두 법정이 절차적으로 완전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 사건이 정치사상사에서 갖는 의미는 재판의 완전성이 아니라 그것이 세운 원칙에 있다. 암살이나 쿠데타가 아니라 '재판'이라는 공적 절차를 통해 통치자도 법적 책임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의 사상적 뿌리는 1215년의 마르나카르타와 "왕은 어떤 사람 아래에도 있지 않지만 신과 법 아래에는 있다"는 13세기 법률가 브렉턴(Bracton)의 명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재위 중인 군주가 실제로 법정에 서서 그 책임을 진 것은 이 두 재판이 처음이었다.

이후 이 원칙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이 됐다. 영국의 헌법학자 다이시(Dicey)는 법의 지배를 구성하는 요소로 '자의적 권력의 배제'와 '법 앞의 평등'을 꼽았다. 통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한 법 앞에 서야 하며, 누구도 자의적으로 그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로크는 통치자의 권한이 국민의 신탁(trust)에서 나오며 신탁을 위반한 권력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고 보았다. 그는 또 '사람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썼다. 몽테스키외는 재판권이 입법권·집행권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면 자유가 존립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세 사상가의 논의를 관통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법치주의는 시민들에게 법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는 원칙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자와 국가기구가 주어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헌정적 명령이다. 그리고 그 명령은 통치자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독립된 절차로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이 기준에 비추어보면 최근 한국의 권력구조는 우려스럽다. 이재명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권력구조에서는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난 2월 통과된 대법관 증원법에 따라 대법관 정원이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면서, 이 대통령은 임기 중 전체 대법관 26명 가운데 22명을 순차적으로 임명하게 된다.

물론 대법관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라는 헌법적 절차가 있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선거와 헌법적 절차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에도 대통령의 영향력이 이미 큰 상황에서, 대법원 구성에도 대통령이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삼권분립의 관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이러한 권력 집중이 곧바로 위헌이나 불법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대통령 본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법안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작기소 특검법'은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사건들을 특검이 검찰로부터 이첩받아 공소취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검 후보를 복수의 정당이 추천한다고 하더라도 최종 임명권자가 사건 당사자인 대통령이라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재판받을 당사자가 자신에 대한 공소취소 권한을 가진 사람의 최종 선택에 관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이해충돌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법철학에는 오래된 원칙이 있다.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 대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법 정의의 최소 요건으로, 판단의 공정성이 성립되는 전제조건이다. 이 원칙은 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건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누구든, 그가 사건 당사자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면 그 판단이 실제로 공정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자신의 사건을 처분할 특검의 임명에까지 결정적으로 관여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은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대통령이 당사자인 사건의 유·무죄 여부를 미리 판단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특정 사건의 공소가 부당하게 제기된 것이라면 그 부당성을 다툴 수 있는 사법적 절차가 있다.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다투고, 상급심에서 다시 판단받으며,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한다면 재심 등 적법한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대통령 재임 중 재판이 정지돼 있기 때문에 공소취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재판을 잠시 멈추는 것과 공소 자체를 취소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판단의 시기를 미루는 것에 불과하지만, 후자는 그 판단을 받을 절차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사법 절차 안에서 해소돼야 할 문제를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의 공소취소를 통해 없앤다면, 진실 규명 여부와 별개로 사법 절차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법률가 울피아누스는 '황제는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자(princeps legibus solutus est)'라는 문구를 남겼다. 이 명제는 후대에 군주의 법적 우위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결합됐다. 근대 이전의 왕정에서는 '왕은 법 위에 있다'는 관념 아래 통치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 법의 적용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찰스 1세와 루이 16세의 재판이 근대 정치에 남긴 유산 가운데 하나는 저 오래된 믿음을 깨뜨리고 '권력자도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원칙을 정치사의 전면에 세운 것이었다.

오늘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저 원칙과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권력의 흐름이다. 권력자가 자신에 대한 사법적 통제 절차를 스스로 설계하거나 그 결과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강력한 정치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자신의 형사사건에서까지 스스로에게 유리한 사법적 예외를 제도화한다면, 형식상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면서 실질적으로는 법의 적용에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권력자도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되면 그 결과는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후 어느 정권이든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사법적 예외를 제도화하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법 앞의 평등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절차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 절차를 권력자 자신이 설계하는 순간 법 앞의 평등은 껍데기만 남는다. 유럽의 근대인들이 왕에게조차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며 세운 원칙을, 우리는 오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대통령은 황제처럼 법 적용의 예외일 수 있는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한 뒤 국회의사당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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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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