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권의 묵직한 역사서가 도착했다. 피터 라인보우의 <목매달린 자들의 런던>(갈무리, 2026)은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이을 만한 역작으로 평가받는 역사학 연구이다. 이 책이 갈무리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공통장(commons) 연구자인 권범철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저작 이전에 이미 갈무리 출판사에서 라인보우의 저작 4종(<히드라>, <마그나카르타 선언>, <메이데이>, <도둑이야!>)이 번역됐다. 이는 2010년대 이후 도시와 자연자원 인클로저에 대항하는 다양한 운동을 커먼즈, 즉 공통장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던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노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역자인 권범철 역시 그의 저작 <예술과 공통장>(갈무리, 2024)에서 드러나듯 '자본의 공통장'이 될 위험에 대항해 공통장을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던 예술가 공동체의 연구자이자 활동가였다.
시계추를 좀 더 뒤로 돌려보면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마르크스주의와 민중·민족 담론의 위기 이후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실비아 페데리치,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등의 사상의 수용을 경유해 이뤄진 한국 자율주의 혹은 포스트오페라이스모(post-operaismo) 운동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한때 몇몇 연구자 집단과 네그리·하트의 <제국>, <다중> 등의 저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이 운동은 2010년대를 거치며 커먼즈 담론과 만나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됐다. 따라서 이 저작의 번역은 한국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궤적이라는 지성사적 관점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하며, 한국 자율주의-포스트오페라이스모-공통장 운동의 지적 활력을 증명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5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한정된 지면에서 소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듯, 산 노동에 대한 조직적인 살인인 사형(capital punishment)과 산 노동에 대한 죽은 노동의 억압인 자본의 처벌(punishment of capital)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 책은 사형 제도와 자본주의 발전 사이의 관계를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18세기 런던은 자본주의적 임금 노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공간이었다. 이 시기 지배계급은 이른바 '피의 법전(Bloody Code)'을 통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라인보우는 타이번(Tyburn)의 교수대가 떠돌이 빈민과 장인들을 순종적인 임금 노동자로 주조하기 위한 폭력적 장치였음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생존을 위한 하층 계급의 관습적 행위들이 폭력적으로 범죄화되면서, 산 노동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자본의 질서에 편입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은 공통장 논의와 어떻게 연결될까?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재산'의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노동자와 빈민들에게는 작업장의 찌꺼기나 자투리 물자를 가져갈 수 있는 관습적 권리가 존재했으며, 이는 일종의 공통장이었다. 하지만 배타적 사적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지배계급은 이런 관습적 전유를 '절도'로 재규정했다. 한때 공동체의 유지와 생존을 위한 정당한 권리였던 것들이 사유재산이라는 이름 아래 독점됐고, 이를 지키려던 노동계급의 실천은 사형이라는 극단적 폭력으로 억압당했다. 즉, 재산 개념의 재정의는 곧 공통장에 대한 인클로저이자, 공통장을 지키려는 이들에 대한 합법적 처형 과정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들이 처형당한 역사,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목이 만든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를 공식 역사로 은밀하게 승인해왔던 지배적 역사쓰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실천이다. 이 책은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역사 쓰기를 지향하지만, 톰슨과는 달리 라인보우의 서사는 노동계급의 '형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역사적으로 상이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계급이 어떻게 '자유'를 실현해 나갔는지에 주목한다.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감금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탈감금(excarceration)의 의미를 노동 조건에 내재한 착취에 맞서서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스스로를 조직하는 방법이라는 관점에서 확장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탈감금은 사실상 공통장을 인클로저하고자 하는 자본의 논리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이다. 역사적으로 이 과정이 노동계급의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않았지만,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여전히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산 노동의 물질적, 비물질적 노동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탈감금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역사는 지금 이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런던의 교수대 아래서 산 노동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내려 했던 공통장의 감각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 속에서 삶의 기반을 위협받고 있는 노동계급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 책은 자본의 폭력적 질서에 맞서 끊임없이 대안적 삶의 양식을 발명해 온 노동계급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오늘날 새로운 공통장의 정치를 상상하기 위한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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