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양해각서, 상호주의 없는 한국 우위 갑을관계"

[고용허가제와 인신매매] ② '사업장 이탈' 책임 송출국에만 지운 MOU, 무리한 제도 압박 요인 됐나

최근 우즈베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자국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한 사업장에 묶어두기 위한 인신매매 성격의 벌금·보증금 제도를 운용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 문제는 이들 나라만의 일탈일까? 이주노동 현장에선 사업장 이동 금지 등 강제노동 조항을 둔 고용허가제가 파생시킨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한국 정부와 송출국이 맺은 협약에 '무단이탈자나 미등록 체류율이 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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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와 인신매매 ① 한국 산인공 발급 문서에 방글라데시 '인신매매성 보증금' 명시, 알고 있었나

"상호주의라는 관점이 없고 철저한 '갑을관계'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지난 2019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정부 간의 고용허가제 양해각서(MOU)를 보고 한마디로 평했다. 인력 송출국에만 의무와 책임을 지운 편향적 구조가 양해각서의 핵심 성격이라는 평가다. 송출국이 미등록 체류 방지 등에 있어 '을'의 지위에 놓인 점이 우즈벡에서 확인된 사업장 이동 제한 목적의 벌금 같은 인신매매성 제도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레시안>은 8일 한국과 우즈벡 고용노동부가 2019년 서명한 고용허가제 양해각서 및 2017년 필리핀 고용노동부와 맺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확인했다. 양해각서에 드러나는 주요 문제점에 대해 이주 노동·행정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 MOU 전문 보기)

송출국에만 '미등록 체류'·'부패 방지' 의무 부여

편향성은 제15조 '부패 방지 및 불법 체류 방지 조치'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불이익 조처를 규정한 10항이다. 송출 과정에서의 부패나 미등록 체류 방지는 양쪽 모두의 책임이지만, 제재를 가하는 주체는 한국 노동부로만 정했다. 제재받는 대상도 송출국으로만 명문화됐다.

"근로자 송출 과정에서 부패 사실이 발생하거나, 무단 이탈자 또는 한국 내 불법 체류 상태인 우즈베키스탄 근로자의 비율이 타 송출국의 평균을 초과하면, 한국 고용노동부는 우즈베키스탄 고용노동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 구직자 명부 배정 인원(쿼터) 축소, 근로자 송출 절차 일시 중단 또는 본 양해각서의 효력 해지 등의 조처를 할 수 있다."(제15조 10항)

고 운영위원장은 "고용허가제의 근본적 문제인 사업장 이동 제한 때문에 부당대우, 임금체불,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많다. 미등록 체류 상당수는 이 때문에 발생한다"며 "이건 한국 측의 문제인데도 송출국에만 책임을 지우고 있다. 한국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발생한 불이익이 송출국 전체와 다른 구직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기관 입장에서 이탈 방지, 계약 위반 시 제재 등 조항을 두는 건 목적상 타당"할 수 있다면서도 "송출국에만 일방적 의무를 부과하고 목적국의 의무는 언급하지 않는 것은 불평등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주민 인권을 위한 행정사 모임의 최희성 행정사도 "사업장 이탈 발생의 주요 원인이 한국 사업주의 불법행위에 기인하는 바가 상당한데도, 이에 대한 근본적 개선 없이 인력 쿼터 제한 등 송출국에만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 타당한가"라며 "역으로 노동자 산업재해 피해 등에 따른 한국 정부의 배·보상 책임은 왜 양해각서에 규정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양해각서에 미등록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등록 체류 방지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 제한 등 미등록 체류를 야기하는 한국 고용허가제의 강제노동 구조를 지우는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 집행위원은 미등록 방지 의무를 지우더라도 "교육 등 방법을 통하면 된다. 의무 위반에 인력 쿼터 등 일방적인 페널티를 주면 상대국에 압박이 된다. 을의 위치에 있는 송출국 입장에서는 자국 노동자에게 반인권 조치를 하게 된다"고 했다. 보증금이나 벌금으로 미등록 체류를 줄이려는 우즈벡이나 방글라데시 정부의 인신매매성 제도가 편향적 양해각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불이익과 관련한 기준이 모호해 해당 조항이 갑인 한국 정부에 유리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 운영위원장은 "부패 사실 발생, 미등록 체류율 등 요건이 구체적인 기준으로 규정돼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사전 협의 절차를 두고 있지만, 한국 고용노동부가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제재를 가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정한 합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우즈벡 고용허가제 MOU 전문 중 도입부. ⓒ프레시안

MOU 곳곳 비대칭 UN·인권위 무시한 '불법체류' 용어 고집

이 밖에도 비대칭 구조는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최 행정사는 △한국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이주노동자가 귀국할 수 없게 된 경우 보상 등 후속 조치가 없다는 점(10조 3항) △직장내괴롭힘, 성희롱 등과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도 사업장 부적응으로 귀국할 때 경비를 본인이 부담하게 한 점(12조 3항) △근로계약 기간 만료 전 귀국한 노동자의 재입국을 6개월 간 제한한 점(14조 2항) 등을 불합리한 조항으로 꼽았다.

고 운영위원장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현지에서 운영하는 EPS(고용허가제) 센터와 관련해서도 "송출국에 한국어능력시험 수수료, 관련 물품의 세금·관세 면제는 물론, 원활한 환전과 송금을 위한 행정 지원 의무까지 지운다"며 "수수료 결정권은 한국 측이 쥐고 있고 이로 인한 이익도 한국 측이 보는데, 현지 업무는 온전히 송출국이 부담한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가 양해각서에서 국제적으로 사용 자제를 권고하는 '불법 체류'를 공식 용어로 쓴 것도 문제다. 해외 언론이나 UN 등 국제기구, 유럽·아프리카 연합 등은 체류 비자와 관련한 행정절차 위반인 '미등록 체류'를 사실상 형법상 범죄처럼 규정해 반사회적 범죄자로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불법 체류'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나아가 과거 썼던 '불법 이민'이라는 표현도 비정규 이주(irregular migration)로 대체했다. 유럽연합은 관련 글에서 "대부분의 불법 이민자는 범죄자가 아니"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필요한 서류 없이 체류하는 것은 형사 범죄가 아니라 행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제외한 다수 아프리카 국가도 공식 문서에 비정규 이주민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정부에 '불법체류자'란 용어를 지양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수정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외국인 출입 행정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권고를 따르지 않고 현재까지 불법 체류 용어를 공식적으로 쓰고 있다.

한편 한국 고용노동부는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국가 간의 준수·협력사항을 규정한 외교문서로,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필리핀 대법원은 전자도서관에 한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가 맺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공개하고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사법 절차의 투명성과 정보 접근권 강화 등 사법 개혁 일환으로 설립된 전자도서관엔 판결, 행정명령, 조약 등 각종 사법 정보가 망라돼 있다.

※ '고용허가제에 따른 인력 송출에 관한 대한민국 고용노동부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고용노동부 간의 양해각서' 한글 번역본 전문 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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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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