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노동자도 '인신매매성 각서'… 거액 보증금 맡긴 채 입국

자국 공기업에 '1년 치 소득' 규모 보증금 예치, 각서 위반 시 몰수… 우즈벡 이어 또 "실태 파악 필요"

우즈베키스탄 고용허가제(E-9) 이주노동자들이 자국 정부와 체결한 '인신매매성 계약'이 드러나 논란인 가운데, 방글라데시 노동자 역시 미등록 체류 방지를 명목으로 1년 치 소득에 달하는 보증금을 정부에 예치한 뒤 입국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경제적 수단을 이용한 인신매매 문제가 다시 드러난 만큼,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 송출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프레시안>이 확인한 2022~2026년 작성된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보증금 각서 및 지급확인서를 보면,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은 10만~30만 타카(약 120만~400만 원)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자국 국영 기업 보에셀(BOESL)에 맡기고 입국했다. 10~30만 타카는 방글라데시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연봉과 비슷하다. 최저임금이 1만 2500타카인 의류·봉제 공장 노동자와 비교하면, 2년 치 연봉에 해당한다.

보에셀은 방글라데시 해외동포근로·해외고용부 산하의 해외 인력 송출 공기업이다. 민간 브로커 폐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공사로, 한국 고용허가제를 포함해 정부 간 협약으로 인력이 송출되는 업무를 독점으로 관리한다.

보증금은 자국 노동자들의 '이직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각서에는 "고용주에 의한 이직(Auto Release) 처리를 제외하고, 사소한 이유로 1년 이내에 사업장을 변경하거나 다른 회사와 계약하지 않는다", "사소한 이유로 고용주를 상대로 고소·진정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이 명시됐다. 아울러 "비자 만료 후 불법(미등록) 체류하지 않고, 한국 출국 시 불법 물품을 지니지 않는다"는 조항도 담겼다.

▲방글라데시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이 국영기업 보에셀(BOESL)에 제출하는 보증금 관련 각서 일부. 약속을 어기면 보증금 전액이 보에셀로 몰수된다는 내용이 적혔다. ⓒ프레시안

각서는 "이를 어기면 보증금 전액이 보에셀 소유로 몰수되며, 당사자는 이 금액에 대한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정했다. 또 "결핵 등 질병으로 인해 본국으로 귀국해야 할 경우,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한 후 남은 잔액만 수령하는 데 동의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보에셀은 가족 등 보증인의 연대 보증 각서도 받았다. 보증인 각서에는 "본인의 자녀나 형제·자매, 배우자가 제출한 각서 내용을 명확히 숙지하고 준수하겠다"며 "본인 과실 등으로 부과되는 벌금과 손해배상금을 보에셀에 지급할 의무를 지며, 이를 이행하지 않아 법적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포함됐다.

익명을 요구한 방글라데시인 A 씨는 <프레시안>에 "보증금을 내야 한국 입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어, 보증금을 내지 않거나 각서를 쓰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며 "30만 타카란 큰 금액을 누가 쉽게 낼 수 있나. 대부분 높은 이자로 대부업체에서 빌리거나, 땅이나 집을 담보로 잡거나 팔고, 친척·지인들에게 빌린 후, 한국에서 일하며 빚을 갚는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보에셀에 30만 타카를 보증금으로 예치한 은행 지급확인 영수증. ⓒ프레시안

'합법' 이직조차 막아… 대부분 빚 지고 입국

방글라데시인들은 각서 조항조차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각서는 '1년 내 사소한 이유로 이직할 시' 보증금을 몰수한다고 정했으나, 조건을 불문하고 한 번이라도 직장을 옮기면 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례를 여러 번 목격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이직을 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임금 체불도 많고, 약속과 달리 기숙사가 없거나, 사업주 폭력·폭언이 심하거나, 업무 능력이나 언어 문제로 해고를 당하거나 합의 사직을 하는 경우"라며 "이럴 때도 보증금이 몰수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다. 한국 외국인고용법도 이런 경우 3번까지 이직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섹 알 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도 통화에서 "3년 동안 한 곳에서 일하다 사정이 생겨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는데 '중도 포기했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못 받은 피해자를 안다"며 "사례가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극히 예외적 상황에만 3번 이직을 허용하는 한국 고용허가제도 '노예 제도'라고 비판받는데, 이보다 더한 억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의 최정규 변호사는 14일 통화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의 보증금은 성평등가족부 고시 등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지표'에 규정된 인신매매 수단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고시는 이주 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나 이탈보증금 탓에 자의로 일을 그만두거나 사업장을 옮기기 어려운 경우를 경제적 통제를 통한 인신매매라고 규정한다.

이에 지난 12일 일부 방글라데시인들이 "보에셀의 보증금 징수 및 몰수 제도에 대한 시정을 요청한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을 이유로 자국 정부에 낸 벌금의 인신매매 문제를 확인하자, 방글라데시 노동자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며 이 제도의 운용 실태를 확인해달라고 나선 것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방글라데시인 일부가 지난 12일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 일부. ⓒ프레시안

고용노동부 외국인력담당관 관계자는 통화에서 "진정서가 오늘 접수돼 내용을 파악해 볼 예정"이라며 "최근 성평등가족부의 개선 조치 권고에 따라 노동부가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개선을 요청한 바 있다. 방글라데시 사안이 이에 준하는 문제라면, 그에 따른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재한 방글라데시인들의 진정서 접수는 현지 언론에도 비중 있게 보도되며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방송사 <쇼모이TV(SomoyTV)>는 지난 13일 보에셀 측이 "HRD Korea(한국산업인력공단) 지침에 따라 보증금을 받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나 고용노동부가 이 사안을 우려해 '보증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준다면 우리는 보증금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지난해 강제노동이 확인된 태평염전의 소금 수입을 미국 정부가 금지했듯, 유럽연합, 미국 등은 공급망 내 인권침해와 인신매매 문제를 엄격히 감시한다"며 "인신매매는 한국 기업에 큰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모든 송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만큼 송출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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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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