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총선…좌파의 부활, 극우파의 약진, 마크롱의 패배

[장석준 칼럼] 프랑스 총선 2차 투표 결과와 한국 정치에 대한 함의

지난 19일(현지시간) 대서양 양쪽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콜롬비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와 프랑스 하원의원선거 2차 투표였다. 그리고 두 선거 모두 좌파의 승리 혹은 성공이라 평가할 만한 결과로 끝났다.

콜롬비아에서는 좌파연합 '역사적 협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50.44%를 얻어 우파 포퓰리즘 세력인 '반부패 공직자 동맹'의 로돌포 에르난데스 후보(47.31%)를 누르고 당선됐다. 콜롬비아는 2000년대 남미 좌파 붐 시기에도 홀로 우파가 집권하던 나라였으나, 최근 이 나라에서 격렬히 전개되고 있는 민중운동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새 정부를 꾸리게 된 것이다. 이로써 중남미는 노동자당 룰라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는 올해 말 브라질 대선이 끝나면 2000년대의 제1차보다 더 강력한 제2차 좌파 붐 시기에 돌입하게 된다.

한편 프랑스 총선에서는 '마크롱의 패배, 좌파의 부활, 극우파의 약진'이라 요약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총아 노릇을 하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나 그간 지지부진하던 좌파가 부활한 것은 반길만하지만, 극우파가 의석을 무려 10배나 늘렸다는 소식이 이 모든 낭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의 징후와 그 속에 잠복한 다양하고 복잡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거 결과라 하겠다.

최대 패배자는 마크롱의 여당

프랑스 총선 결과는 좀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 투표가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는데다 최근 개별 정당만이 아니라 정당연합이 주요 행위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9일에 실시된 선거는 '2차 투표'이지 '결선투표'가 아니다. 결선투표라면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1, 2위 후보만 놓고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는 1, 2위뿐만 아니라 1차 투표 득표율이 유권자(투표자가 아니라)의 12.5%를 넘는 모든 후보가 선택지에 오를 수 있다. 즉, 선거연합이 좌파와 우파로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을 경우에 2차 투표에서도 3명 이상의 후보가 경쟁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프랑스 정치 지형은 과거처럼 단순히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는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세력(선거연합 명칭은 '앙상블')은 유럽연합형 신자유주의에 합의하는 세력들의 대연합이다. 대선에서 비록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바람을 일으킨 급진좌파 '불굴의 프랑스(이하 FI)'의 전 대선 후보 장-뤽 멜랑숑은 이에 맞서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 등과 함께 좌파연합인 NUPES('새로운 생태-사회 인민연합'이라는 뜻)를 결성했다.

그런데 이 두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다. 대선 결선투표까지 진출해 마크롱 대통령과 맞붙은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파 '국민행진'('국민전선'의 새 이름, 이하 RN)이 있다. 이들은 2010년대를 뒤흔든 유럽 극우 포퓰리즘의 원조이자 중추에 해당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오래 된 드골주의 우파의 잔여 세력('공화파'라 불린다)이 이끄는 '우파-중도파 연합(이하 UDC)'이 있다. 이번 프랑스 총선은 앙상블, NUPES, RN, UDC, 이 네 세력이 벌인 경합이었다.

최종 성적을 보면, 넷 중에서 최대 패배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여당 앙상블이다. 프랑스 하원은 총 577석으로, 과반이 289석이다. 2017년 총선에서 마크롱 지지 세력은 의석이 과반을 거뜬히 넘어 전체 의석의 60%에 이르렀다(350석). 덕분에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건너뛰며 독단적인 통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앙상블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251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조차도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 덕택에 실제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결과다. 마크롱 세력은 지난 총선 2차 투표에서는 49.11%를 득표했지만, 5년만에 득표율이 38.57%로 줄어들었다. 반면 이번에 앙상블이 확보한 의석 비중은 43.5%에 이른다.

앙상블뿐만 아니라 UDC도 처참한 결과와 마주했다. 5년 전에 20% 가까이 됐던 득표율이 이번에는 7% 수준으로 급락했고 의석도 120여 석에서 68석으로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앙상블도 단순다수대표제의 왜곡 효과 덕택에 득표율보다는 더 많은 의석 비중을 차지했다(11.78%). 아무튼 전반적으로 기존 신자유주의 합의에 가장 집착하는 두 세력이 심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인 앙상블이 내각을 꾸리려면, 십중팔구 UDC를 연립정부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아니면 과반연합이 없고 따라서 안정적인 내각을 꾸릴 수도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 의원내각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단일 정당이 없는 상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제1기에 그랬던 것처럼 노란조끼운동 같은 예기치 않은 반란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황제처럼 군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1야당이 된 좌파연합, 10배 이상 성장한 극우파

앙상블, UDC와 달리 좌파연합인 NUPES는 의석을 크게 늘렸다. NUPES에 참여한 정당들의 기존 의석을 다 합쳐도 70여 석밖에 안 됐었으나 이번에 NUPES는 135석을 확보했다. 해외 선거구에서 당선된 좌파 의원 18명까지 합치면 150석이 넘는 영향력을 펼칠 수 있다.

물론 1차 투표에서 앙상블(25.75%)과 거의 같은 득표율(25.66%)을 기록한 뒤에, 제1당으로 부상해 멜랑숑을 총리로 하는 좌파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데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석을 2배로 늘리는 게 그리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프랑스 좌파라면 말이다.

대선에서부터 이어진 멜랑숑 바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위업이다. 대선 1차 투표에서 21.95%를 득표하며 2위 르펜 후보를 바짝 따라붙고 다른 좌파 후보들(가령 1.75%를 득표한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을 압도한 멜랑숑은 이 성과를 FI만이 아니라 좌파 전체의 부활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기로 결단했다. 그가 나선 덕분에 서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이 한데 모였다. FI는 이 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당의 유력한 후보 상당수를 희생하며 다른 정당들에게 지역구를 양보하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패배에 익숙해져 있던 좌파 유권자들, 노동계급의 만년 투표 기권층이 이 움직임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모처럼 기운을 얻었다. 이들이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꺼이 투표소를 찾은 덕분에 NUPES 참여 정당들은 가까스로 사망을 면하거나 아니면 힘찬 도약을 했다. 의석이 30석이던 사회당은 본래 몰락할 운명이었으나 28석을 유지했다. 점점 더 화석에 가까워지는 중이던 공산당은 10석에서 12석이 됐다. 의석이 단 하나뿐이던 신생 생태주의당은 단숨에 27석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급성장한 것은 역시 FI다. FI는 17석이던 의석을 66석으로 늘렸다. NUPES 전체의 약진을 이끈 힘이 멜랑숑과 FI에서 나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실 NUPES가 2차 투표에서 얻은 31.60%가 의석에 그대로 반영된다면, 의석 수가 애초 여론조사 예측대로 170석 이상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앙상블과 UDC에게는 득표율보다 많은 비중의 의석을 안겨준 단순다수대표제의 왜곡 효과가 NUPES에게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NUPES는 해외 좌파 의원 18명을 합쳐도 26.51%의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FI가 사회당, 공산당에 덜 양보하고 자당 후보를 더 많이 냈더라면, NUPES 전체가 더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FI의 그러한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NUPES가 하원 내 제2블록이자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 격변도 없었을 것이다.

올해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유서 깊은 프랑스 좌파 역시 저 강력했던 이탈리아 좌파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점쳤었다. 그러나 이 운명이 반전됐다. 길고 넓게 보면 노란조끼운동 같은 대중운동이, 짧고 좁게 보면 멜랑숑과 FI의 정치력과 의지, 결단이 운명을 바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좌파의 두 배 약진에 찬 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반대편에서 또 다른 드라마가 펼쳐졌다. 고작 8석이던 RN의 의석이 무려 89석으로 늘어났다. 극우 포퓰리즘의 원내 영향력이 10배도 넘게 늘어난 셈이다. 프랑스는 대선 결선투표와 총선 2차 투표를 통해 극우파의 제도정치 진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이 신화가 완전히 무너졌다. RN은 이제 드골주의 잔당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지닌 하원 내 제3당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인상적인 기록은 오히려 RN의 일정한 패배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르펜은 몇 달 전 대선 1차 투표에서 813만 명의 지지를 받았고, 결선투표에서는 무려 1328만 명이 르펜에게 표를 던졌다(41.45%).

반면에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을 지지한 이들은 425만 명이었으며(18.86%), 2차 투표에서 이 수치는 395만 명으로 줄었다(17.30%).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NUPES의 활약이 마크롱 등 신자유주의 주류 연합에 실망해 르펜에게 표를 던지던 유권자를 흡수하거나 적어도 이들의 르펜 지지 열기를 식힌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8석이 89석이 된 드라마는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 100여 명에 육박하는 RN 후보들이 2차 투표 관문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만큼 극우 세력이 각 지역구의 대중들 사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RN의 떠오르는 스타 에드비지 디아스(34세)가 보르도 외곽 한 지역구에서 거둔 승리다. 그 지역구는 노란조끼운동의 거점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시간을 국유화하라? 생태적 계획을 향해

그렇기 때문에 주요 정치 세력으로 복귀하며 모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은 좌파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마도 이 기회를 여는 데 가장 기여한 멜랑숑의 리더십에 미래를 위한 힌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멜랑숑은 오랫동안 '분열'의 정치가라 손가락질 받았다. 사회당을 뛰쳐나와 FI의 전신인 좌파당을 창당하고 몇 년 전까지 자기 당이었던 사회당 후보와 선거에서 맞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분열'을 감행한 대상은 무엇이었던가? '노동계급'과 '사회주의'를 내걸며 실제로는 영미형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던 당이었다. 그는 이런 당과 분리해야 할 때에 과감히 분리함으로써 노동 현장과 거리의 노동 대중에게 돌아갔다.

정반대로 멜랑숑은 또한 '통합'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몇 달 전 대선 때만 해도 핵발전소와 채식주의를 놓고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던 생태주의당과 공산당이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결성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미래를 예언했다면, “농담하지 말라"는 핀잔이나 들었을 것이다. 벌써 2010년대 초부터 생태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노동운동과 생태적 대의 양쪽에 발 딛고 서 있던 멜랑숑과 FI가 나서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 멜랑숑의 생태사회주의는 결코 겉멋만 든 표어나 설익은 이념이 아니다. 총선 유세 막판에 멜랑숑은 “시간을 국유화하자"는 낯선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을 국유화한다니,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는 단기라는 시간 지평이 인간과 자연의 긴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본의 지배에서 시간을 되찾자는 것이 시간 국유화론이다. 멜랑숑은 그것의 더 정확한 표현이 '생태적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 리듬을 인간과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헌법상 하원의원이 아니어도 총리가 될 수 있다며 멜랑숑은 이번에 의원에 출마하지 않은 채 전국을 돌며 NUPES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이제 더는 의원이 아닌 그는 더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대중들 곁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이는 마크롱 세력만이 아니라 극우파와도 대결해야만 하는 좌파연합 지도자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무대다.

분열해야 할 대상과 분열할 줄 알고 통합해야 할 때에 통합을 성사시켜내는 정치, 의회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정치, 어느 철학자나 사회과학자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내다보는 정치. 이런 정치가 사망 일보직전의 좌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결코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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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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