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20년만에 재선 대통령…극우 40% 득표에 불안한 유럽

르펜 "빛나는 승리" 자평…6월 총선에 촉각

프랑스 대선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를 밀어내고 재선에 성공했다. 유럽 통합에 대한 신념을 가진 중도 마크롱의 재선으로 프랑스의 유럽연합(EU) 내에서의 역할 및 러시아 제재에 대한 입장에 당장 변화는 없을 것으로 관측되지만, 40%가 넘는 르펜 득표율을 두고 극우의 범람이 끝나지 않았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 프랑스 내무부 집계를 보면 전날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이 58.5%를 득표해 41.5%를 득표한 르펜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은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이후 처음이다. 선거 이틀 전 르펜에 10%포인트 가량 앞섰던 여론조사보다는 큰 폭의 승리를 거뒀지만 르펜을 상대로 2배 차 압승을 거뒀던 지난 대선에 비해서는 불안한 성적표다.

당선이 극우라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마크롱 자신도 파리 에펠탑 부근에서 한 승리 연설에서 "많은 유권자가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를 저지하기 위해 내게 투표한 것을 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특정 캠프의 후보가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72%에 불과해 4분의 1이 넘는 유권자들이 기권했다. 파리 등에서 마크롱과 르펜 모두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인 이유 중 하나로 두 후보 모두 지지하지 않아 투표 직전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파리 북부 도시 생드니에서 24일 결선 투표장을 나서며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 응한 알제리계 무슬림 아시나 찬나(58)는 이 매체에 극우의 당선을 막기 위해 마크롱에게 전략적으로 투표했다고 밝히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찬나는 르펜의 히잡 착용 금지 공약을 언급하며 "마크롱은 적어도 르펜처럼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크롱과 함께라면 우리 삶은 계속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자가 많은 생드니를 포함한 행정구역인 센생드니는 지난 1차 투표 때 3위로 탈락한 장 뤽 멜랑숑이 50%나 득표한 지역이다. 1차 투표 때 마크롱(27.8%), 르펜(23.1%)에 이어 22%를 득표한 멜랑숑 지지자 표의 향방은 결선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마크롱은 21일 생드니에서 유세를 펼친 것을 비롯해 선거운동 기간 내내 멜랑숑 지지가 우세했던 지역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높은 기권율은 지난 2017년 마크롱이 이끄는 중도를 표방하는 신생정당 전진하는공화국(LREM)이 득세하며 전통적 좌파인 사회당과 우파인 공화당이 모두 몰락한 가운데 중도가 아니면 극우 혹은 극좌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재 프랑스의 정치 구도에서도 기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방송 <BBC>는 "마크롱은 중도에서 양 쪽 다리를 벌리고 서서 보수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의 조합이라는 오래된 조합을 파괴했다. 반대파는 왼쪽과 오른쪽 '극단'으로 밀려났다. 유권자들은 마크롱에 반대한다면 갈 곳이 없다. 이번 선거를 보면 지금까지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마크롱이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오며 '대선 3차 투표'라고도 불리는 6월 총선에서 르펜과 멜랑숑이 재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종 패배했지만 지난 2017년 대선 때보다 7%포인트 이상 더 득표하며 지지율 40%를 넘긴 르펜은 이번 선거 결과가 "빛나는 승리"라며 "이번 패배에서 희망을 느낀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화된 물가 상승을 타고 구매력 문제에 초점을 맞춘 유세로 노동자들의 마음을 샀던 르펜의 전략은 총선까지 유효할 전망이다. <BBC>는 1차 투표에서 3위로 고배를 마셨던 멜랑숑 지지자 수백만명도 총선에서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전했다. 

마크롱의 전진하는공화국은 2017년 총선 당시 하원 의석의 과반 이상을 점유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이 같은 결과가 나올지 불투명해지며 개인화되고 중앙집중화된 통치 방식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마크롱이 불가피하게 협치로 나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패트릭 비날 프랑스 하원 의원은 마크롱이 "회사의 경영자가 아니다. 모든 것을 위에서 결정할 수 없다"며 하향식 통치방식을 고수하기보다 의회·노조·시민사회와 더 많이 소통하고 협상해야 한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극우의 당선을 우려했던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샤를 미섈 유럽연합 상임의장은 소셜미디어(SNS)에 "브라보 에마뉘엘. 이 격동의 시기에 우리는 유럽연합에 헌신하는 더 단결된 유럽과 프랑스가 필요하다"고 썼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최고의 협력을 이어가게 될 수 있는 것이 기쁘다"라고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유럽을 지지하는 강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치러진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지지자인 야네스 얀사 슬로베니아 총리가 이끄는 슬로베니아민주당(23.5%)이 중도 자유운동(34.5%)에 밀리면서 르펜의 패배와 함께 유럽에서 우파 포퓰리스트가 득세할 우려는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 <CNN> 방송은 "르펜은 프랑스에서 큰 지지를 받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을 것"이라며 "반EU·반서구 정서가 유럽연합의 가장 강력한 회원국인 프랑스에 여전히 살아있다. 극우가 계속 득세한다면 5년 뒤의 결과는 지금과 매우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신들은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결과와 관계없이 반이슬람 등 의제를 설정한 쪽은 극우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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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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