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청문회를 막장으로 만든 '언어의 마술사들'

[기자의 눈] 철지난 이념 공세, 동성애 혐오 발언까지

지난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는 정현백 여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여야 의원들이 정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책 역량 등에 대해 검증 절차를 거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청문회는 때 아닌 '이념 논란'으로 번졌습니다. 정 후보자가 과거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있을 때, 해당 단체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민관합동 진상조사에 의혹을 제기한 점이 공격 대상이 됐습니다.

정 후보자는 수 차례 "사법부 판결을 존중한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야당, 특히 한국당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신보라 의원은 "참여연대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미제 사건'이라고 하고 있다"면서 "후보자의 입장과 동의되는 부분 아닌가"라고 했고, 김순례 의원은 정 후보자의 해명을 겨냥해 "노련한 교수 출신 시민운동가답게 답을 냈다"고 비꼬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순례 의원은 "참여연대는 한 번도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라고 말한 적 없다"며 "천안함 관련 의혹을 해소해야 하고, 재조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여연대가 주장했던 게 바로 김순례 의원이 주장한 "재조사"입니다. 정 후보자의 말처럼, 참여연대 등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도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2010년 당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는 오류가 있고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인 시민들에게 의혹을 남기고 있다고 지적할 뿐입니다.

즉 이런 겁니다. 천안함 사건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묻는다면, 상식적으로야 당연히 북한이 저지른 일이겠죠. 그런데 당시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주도한 합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이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고, 조사단이 수행한 실험 역시 재연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형사재판에 비유하면, 범인이 누군가는 명확한데 범행 수법에 대해 검찰이 명쾌하게 입증하는 데 실패한 상황입니다. (☞관련 기사 : 천안함 사건, 4년 지났으니 폭침인가? / 문재인 "북한 잠수정, 감쪽같이 천안함 피격")

또 한국당 소속인 송희경 의원은 정 후보자가 지난 2000년 방북 뒤 쓴 기고문에서 "(북한은) 어머니의 직업에 따라 1주일 단위로 맡길 수 있는 탁아 시설도 있고 양질의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쓴 부분을 거론하며 '대북관이 의심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주적'인 북한의 체제라도 전문가로서의 평가는 정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났지만, 설사 낡은 냉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런 부분을 더 보완해서 북한보다 훨씬 좋은 제도를 만들어야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전략을 제시하려면 말입니다. 정 후보자가 쓴 기고문의 이런 단편적 내용을 문제삼아 '대북관'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집을 철거하려 했던 철거반원에게 "김일성보다 못한 놈"이라는 욕(?)을 했다고 해서 이 철거민을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로 기소했던 냉전 시대의 일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념 공세만으론 부족했던 걸까요? 김 의원은 동성애 혐오에 가까운 발언까지 청문회 질의 자리를 빌려 했습니다. 다음은 김 의원과 정 후보자 간에 두 차례에 걸쳐 이어진 문답의 주요 내용입니다.

김순례 : 후보자는 2012년 군대 내 동성애에 찬성했고, 2013년 동성애 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지지 성명을 냈다. 2013년 4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결의에도 참여하는 등의 활동 내역도 있다. 동성애에 관한,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참으로 많이 했다. 과거 동성애에 대한 소신,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정현백 : 네. 그렇다.

김순례 :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동성애 안 좋아한다, 군대 내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킨다고 동성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대통령과 국정 철학이 다른데 (장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생긴다. 동성애 찬성에 변함 없나?

정현백 : 의원님, 동성애와 동성혼을 구별해서 물어보시라.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정체성 문제다. 성적 정체성 문제에 대해 찬반을 밝히는 것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김순례 : 동성애는 대통령과 확실히 결이 다르다. 다른 각도에서 묻겠다. 대통령이 찬성하는 차별금지법은 지난 10년간 발의됐지만 동성애 합법화 아니냐는 주장 때문에 번번이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동성애 차별 금지와 동성애 합법화는 다르다고 했다. 동의하나.

정현백 : 네.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순례 : 이성 간에 결혼이 허용되는 것도 이런 견해로 보면 차별 아닌가 싶다.

정현백 :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을….

김순례 : 이성 간 결혼하는 것도 동성 간 결혼을 해야 한다는 사람이 보기에는 차별 아닌가.

정현백 :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 생각한다.

김순례 : 언어의 마술사다. 참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신다. 그럼 차별이든 차이든, 아무튼 이것(차별) 금지하면 동성 결혼을 허용한다는 것 아니냐.

정현백 : 동성혼은 국민 사이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래서 사회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다.

김순례 : 결국 차별 금지가 동성 결혼 허용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말로는 차별 금지라고 하면서 동성 결혼 합법화는 아니라는 '말의 극한의 마술'로 호도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결국 동성 결혼 합법화 문제와 직결된다. 성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종교적·관습적·문화적 충격의, 차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동성혼 허용'이라거나, 동성혼 허용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성 간 결혼이 허용되는 것이 차별'이라는 주장은 성소수자들을 고립시키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또 그런 해석의 차원을 떠나서라도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냐 아니냐', '동성애 찬성하느냐'는 질문이 국무위원 청문회 석상에 버젓이 등장하는 것은 민망하기까지 한 풍경입니다.

여가위만이 아니었습니다. 여성부 장관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같은 시각 국회의 다른 곳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청문회도 열렸는데요. 여기서는 한국당 소속 한 의원이 "재산 보유 현황을 보니 외제차가 2대 있다. BMW와 벤츠인데 어떤 연유에서 외제차를 타게 됐느냐"고 몰아붙여 장관 후보자로부터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송구스럽다"는 사과를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같은 당 소속 다른 의원은 잠시 후 "외제차 탄다고 사과하는 것은 '글로벌 마인드'가 안 돼 있는 것이다. 창피한 수준이고 해외토픽감"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어쩌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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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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