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2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중앙일보-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포럼 오찬 연설을 통해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약속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없다"면서 "환경영향평가 실시는 국내적 적법 절차의 문제로서, 사드 배치 결정의 취소나 철회를 의도하고 있지 않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민주적·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다면, 배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절차적 문제 검증이 사드 배치 자체를 재검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의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수순임을 내비친 셈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국회 비준동의에 대해서는 최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도 주목을 끈다. "한미동맹 강화"라는 프레임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견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이러한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의 원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배치를 공식적으로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작년 7월 8일 한미 양국의 기습적인 사드 배치로 초래된 '사드 대란'의 문을 닫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좁아지고 만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게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싶다. 최소한 사드 문제를 놓고 미국과 제대로 토론이라도 해달라고 말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절차적 문제는 사드 문제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드의 북핵 방어의 효율성과 북핵 문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 한국의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로의 편입 및 한미일 삼각동맹으로의 연결 가능성,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우려 자극 및 한중·한러관계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사드 보복 장기화 가능성, 한반도 및 동북아의 군비경쟁과 신냉전 격화 우려, 사드 배치가 향후 미국의 대북 예방적 공격론에 미칠 영향, 미중간의 무력 충돌 발생시 한국이 연루될 위험 등 토론하고 검증해야 할 문제들은 넘쳐난다.
대한민국 국익과 미래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문제들은 사드 배치의 절차적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한미간에도, 국내에서도 본질적인 문제들을 토론하고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물론 정부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전임 정부지만 이미 합의한 사항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선 직전에 사드 포대가 한국에 반입된 상황에서 이를 없었던 일로 하는 것도 어렵다. '거대한 럭비공' 트럼프가 한국의 재검토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한미간에 조금이라도 이견이 있으면 이를 침소봉대하면서 정부를 공격해온 보수 언론과 야당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들로 인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그 대가가 너무나도 혹독할 것이기에 문재인 정부의 재고(再考)를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당장 철회가 어렵다면 최소한 한미간의 토론을 통해 '상호 만족할 만한 해법'을 모색해달라고 요구해왔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는 토론의 범위를 절차적 문제로 한정하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또 늦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한미간의 사전 협의, 정상회담, 후속 협의를 통해 사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놓고 미국과 토론에 나서야 한다. 국내 비판 여론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이를 절차적 문제 해소로 무마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외교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지혜도 보여줘야 한다. 이게 촛불 민심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해온 국민 여론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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