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지만, 1차적으로는 미국을 겨냥한 '맞춤형 억제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작년부터 빈번해지고 있는 탄도미사일 발사 양태를 보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물론이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력의 '허브'에 해당하는 괌과 태평양 사령부가 있는 하와이까지 사정권 안에 두겠다는 북한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핵과 미사일 능력을 앞세워 안보 문제를 해결하고 "상용(재래식) 무력" 부담을 줄여 경제발전에 힘쓰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병진노선'과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만큼 '핵 억제력 확보'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을 상대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타깝고도 답답한 상황이지만, 이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문제는 핵보유국이 되려는 북한의 결기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지만, 이러한 셈법을 바꿔놓겠다는 국제사회는 번지수를 못 찾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데에 있다. 핵심 당사국인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의 종언"을 선언하면서 대북정책 재검토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행정부도 압박과 제재 강화, 국제 고립화, 전략 무기를 동원한 무력시위, 조건부 대화론 등으로 구성되었던 '전략적 인내'의 틀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를 요구하고 또 칭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오바마 행정부 때 익히 봤었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박근혜-오바마가 떠넘긴 대표적인 적폐인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작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드 배치 검토' 발언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양상은 '한미일 대 중러' 사이의 갈등과 균열이다. 북핵을 잡겠다며 들여놓고 있는 사드가 오히려 북핵 해결에 필수적인 국제 공조를 잡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북한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수시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의도에는 사드 문제를 최대한 키워, 한미일 대 중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드 배치 강행은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두 가지 역설적인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요구할수록 대화의 조건이 멀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또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 혹은 북한의 비핵화를 강하게 요구할수록 그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선 대화의 전제조건을 내려놓고 대화를 통해 당면 목표인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한미 군사훈련의 대폭 축소와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 개시도 능동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북 협상의 중간 목표로 북핵 동결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유지하면서도 이를 위한 중간 단계로 북핵 동결을 거쳐야 할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핵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현재 20개 정도로 추산되는 북핵이 2020년경에는 50개 안팎으로 늘어날 수 있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도 시간문제다.
이는 북핵 동결 협상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최선에 집착하다가 북핵 질주라는 최악의 결과에 직면하기보다는 북핵 동결이라는 차선을 달성함으로써 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이 성공하려면 사드라는 대못을 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드가 기어코 배치되어 가동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정책에 '전략적 균형 유지'라는 새롭고도 낯선 목표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일 대 중러 사이의 전략적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북한의 전략적 입지는 강화될 소지가 크다.
북핵은 분명 대단히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다. 그래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가급적 이 방정식에 차수를 추가하지 않는 것이다. 사드라는 또 하나의 고차 방정식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사드까지 추가되면 북핵과 사드를 비롯한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의 적대적 동반성장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반드시 막아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모든 고차 방정식은 1차 방정식으로 환원되기 마련이다. 우리 국민과 문제인 정부가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은 바로 1차 방정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북핵의 토양이 되어왔던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작업이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합의 이후 1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은 평화협정 협상을 개시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선순환적으로 도모할 수 있을 때 북핵의 뿌리를 캐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북핵을 영구미제로 남길 수 있는 사드를 빼내고 북핵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평화협정을 집어넣어야 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이게 문재인 정부에게 맡겨진 역사적 소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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