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반대가 '동성애 혐오' 아니라고요?

[기자의 눈] 혐오의 도구로 '과학'을 동원하지 말라

새누리당 내 '양심적·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를 듣는 이혜훈 의원이 최근 한 기독교 관련 행사에서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법"이라고 차별금지법을 비난하며, "정부의 차별금지법 입법 배경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있다"고 반기문 총장을 겨냥한 일이 화제가 됐다. (☞관련 기사 : 이혜훈, '동성애 차별 반대' 이유로 반기문 비난)

이 의원은 이 행사 강연에서 자신이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 입장을 밝힌 데 대해 <프레시안>에 이런 요지의 해명을 해왔다.

"한국은 동성애를 처벌 안 하는 동성애 허용 국가 아니냐. 그런데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 감염률 등 팩트를 갖고 하는 문제 제기도 못 하게 하는 법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역차별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동성애 혐오'라고 하는 것은 '과한'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스스로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를 내세우는 이 의원은 아마 분명히 스스로가 하는 주장이 매우 합리적이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고, 이같은 이 의원의 입장이 이른바 '온건 보수'와 중도층에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적당한 근거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걱정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식의 '강성 혐오' 발언보다 외견상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의원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이, 일부 유권자들에게는 스스로 죄책감을 덜 받으면서도 자신의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 증세를 감추거나 정당화해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호모포비아는 병리 현상이다.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 혐오야말로 병증이다.)

김무성 전 대표처럼 "동성애를 찬성하는 후보가 국회의원 당선이 되면 우리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노골적 혐오 발언을 통해 한국의 '혈맹'인 미국의 '나라 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하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해도, 이 정도가 '보수의 양심'인가 싶어 씁쓸하다. (☞관련 기사 : 김무성, '性소수자 혐오' 망언…"동성애, 인륜 파괴")

차별금지법안, 오해와 진실

이 의원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이유로 제시한 것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제안된 차별금지법안 3~4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3조에서 '차별행위'의 범위에 "성별 등을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거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동성애를 비난하는 목사 등에 해당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법안 4조는 "누구든지 제3조에 따른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두 개의 차별금지법안 중 '김한길 안'에서는 국가인권위에서 시정 명령을 하게 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게 했다. '최원식 안'에서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고, 민사집행법에 따라 법원이 즉시 배상 명령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정도다.

널리 퍼진 오해와는 달리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은 단순한 '차별 발언'이 아니라, 고용자 또는 교육기관장이 성별·학력·지역·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해 피해를 입히거나, 차별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그를 이유로 불이익한 조치를 한 경우에 받게 되는 처벌이다.

그나마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입법 전망도 요원하다. 야당에서도 보수 기독교 표 눈치를 보는 판이다. 20대 국회로 화려하게 복귀, 더불어민주당 당권 주자로까지 꼽히고 있는 김진표 의원은 지난 2012년 문재인 대선캠프 종교특위위원장 자격으로 한 회견에서 "앞으로도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기독교 표 급한 민주당 "동성애 허용법 제정 안되게 노력")

어디 김진표 의원 한 사람 뿐일까? 극단적 사례이긴 하지만, 더민주에서 당 요직 중 요직인 조직본부장을 지냈지만 20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고 탈당한 이윤석 전 의원은, 탈당 후 '기독자유당'행을 선택하기도 했다.

ⓒ프레시안(서어리)

'과학적 팩트 제시' 역시 '혐오'다.

이혜훈 의원의 주장처럼 '동성애자의 에이즈 감염률이 높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차별 행위로 규정돼 처벌받는 데까지는 이르려면 우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차별금지법이 입법이 돼야 하고, 입법된다 해도 이같은 발언이 법이 정한 '차별 행위'가 될지 어떨지는 법 시행 후 법원의 구체적 판단을 받아 봐야 한다.

하지만 그게 위법이 될지 어떨지는 차치하더라도, '동성애자는 에이즈 감염률이 높다'는 '과학적 사실'을 제기하는 것이 동성애 혐오(호모포비아)가 아닌 것은 아니다.

"한국은 동성애를 처벌 안 하는 '동성애 허용 국가' 아니냐. 그런데 에이즈 감염률 등 팩트를 갖고 하는 문제 제기도 못 하게 하는 법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역차별이다"

그런데 이 의원의 말을 살짝 비틀어 보자.

"미국은 흑인이라고 처벌하지 않는 '흑인 허용 국가' 아니냐. 그런데 흑인 아이큐(IQ·지능지수)가 백인보다 낮다는 발언도 못하게 하는 건 역차별이다. 이건 흑인 혐오나 인종 차별이 아니다."

이미 인종차별 등 혐오 발언을 실정법으로 처벌하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발언을 할 '용자' 정치인은 없을 게다. 아무리 '흑인 지능이 낮다'는 말이 노벨상까지 수상한 과학자의 입에서 나온 이론이더라도 말이다.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생리과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은 2007년 언론 인터뷰에서 '흑인은 백인보다 지적 능력이 낮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인종 간 지능의 우열 유전자가 앞으로 10년 안에 발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여동생을 미끼로 노벨상을 받아 볼까?) 그보다 앞서 1990년대에는 '아시아인>백인>흑인' 순으로 아이큐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아, 과학적이다.

인종 간의 차이를 부각하는 '과학적' 연구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비뇨기과협회 보고서와 미국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인 남성은 타 인종에 비해 성기가 작다고 한다. 또 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이 게르만족 등 아리아인에 비해 얼마나 열등한 인종인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그게 이른바 우생학(優生學)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럽에서, 또 미국에서 감히 "유대인이라고 이제는 잡아가 죽이지 않지 않느냐. 이제 이 나라는 '유대인 허용 국가'인데 유대인이 얼마나 하등한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도 못하게 하는 것은 역차별이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겠지만 말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부각된 '여성 혐오' 역시 다양한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된다. 2005년 영국 얼스터대학 교수인 리처드 린과 맨체스터대학의 폴 어윙은 여성보다 남성의 아이큐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그들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렸다. 리처드 린은 '아시아인>백인>흑인'의 아이큐 순서를 발표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폴 어윙은 연구 발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큐가 높은 남녀 비율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체스 챔피언이나 노벨상 수상자 등 높은 지능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남성 수가 훨씬 많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분석까지 했다.

그밖에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운전을 못 한다는 통설은 '김여사'라는 고약한 농담 시리즈의 '과학적' 근거가 됐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돼도, 이런 연구가 더 널리 행해진다면 버스나 택시 운전, 대리운전 등의 직종에서 여성이 '합리적 차별'을 받을 '과학적'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여성인 이 의원에게 묻고 싶다. 한국은 '여성 허용 국가'인데, '여성이 지능이 낮다'거나 '여성은 운전을 못 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역차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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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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