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해 10월 에이펙 계기 정상회담 당시 합의했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트럼프 정부의 관세를 불법이라고 규정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지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 등 정상회담 이후 공개된 '팩트시트'(설명 자료)에 담겨있던 안보 사안에 대한 후속 협의도 조속히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핵추진 잠수함 등 안보 사안을 협의할 미국 협상팀의 방한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데 대해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있었다"며 "통상하고 투자 때문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 조금 있긴 하지만 미측과 긴밀히 협의하는 가운데 방한단 일정을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이 관세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트럼프 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 조치가 위법하다는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관세 문제에서의 혼란이 안보 협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정부는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 주요국 동향 등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동 사안이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향후 대응 계획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원자력·핵잠·조선 등 조인트 팩트시트의 핵심 분야 안보협력 분야도 긴밀하게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안보 사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지금까지 그런 문제는 있지 않았고 예정대로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보 사안 협의가 "굉장히 기술적인 문제고 여러 부처가 걸려 있다"라며 "미국 국방부(전쟁부), 에너지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입장을 조율하고 세세한 부분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안보 사안 협의를 위한 미 협상팀의 방한이 늦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핵잠이나 원자력 문제 등을 다 모아서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서 방한하려 한다"면서 "원래 2월 중(에 방한하기로) 했는데 혹시 3월로 늦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정도를 이야기했다. 더 늦어지면 우리가 중간에도 다녀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라고 답했다.
지난 9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통해 "2월에 각 부처를 망라한 팀이 (한국에) 오는 것에 대해 확인을 받았다"고 했는데 왜 일정이 미뤄진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한미 외교장관회담) 이후 미측에서 우리에게 연락해 팀을 꾸리는데 어려움이 있어 좀 늦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이 당국자도 미국 내 혼란스러운 상황이 협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팩트시트의 안보 분야는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다만 미국의 정치 상황이 예측하기 어렵고 이란 문제라든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정상회담 등이 있어서 진도가 안나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현재 상황이 "팩트시트 이행에 문제가 있다고 비춰지지 않을까 싶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미리 각급에서 국무부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라며 "국무부에서도 고위급 인사가 방한할 예정이고 우리도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 등의 미국 방문 및 소통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9.19 군사 합의의 복원 문제와 관련해 이 당국자는 "9.19 복원에 대해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처음부터 밝혀왔고 그 과정에서 미측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라면서도 "(9.19 합의를 통한 비행금지구역 재설정 등에 대해) 미국이 동의한 것은 아니고 아직 협의 진행 중"이라고 말해 미측이 복원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앞서 1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한 민간인이 날린 무인기기 북한에 침투한 사안에 대해 정부 차원의 유감을 표명하면서 재발방지 대책으로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해 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복원 과정에 미측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19일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유관 부처와 미측과 협의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포함해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 2024년 6월 윤석열 정부가 합의 효력을 정지할 때는 미측과 협의하는 절차에 대해 설명한 바 없어, 효력 정지는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고 복원은 미측과 협의하는 것이 적절한 절차인지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2024년 6월 3일 국가안보실은 김태효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 주재로 열린 NSC 실무조정회의 이후 "남북 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4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 '설명'하는 절차는 있었으나 이 문제를 '협의'했다는 발표는 없었다. 4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취한 정당하고 합법적인 조치를 미·일·중·러에 설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설명'은 전날인 3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져, 효력 정지 여부를 미국 등과 협의했다기보다는, 이미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린 상태에서 통보하는 형식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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