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핵발전소, '정상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후쿠시마 교훈 못 얻은 한국, 핵발전소 수명 연장 위험 선택하다

'안종주의 건강사회'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참사 4주년과 세월호 참사 1주년을 계기로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으로 거듭납니다.

우리 사회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서 생명을 앗아가고 위협하는 교통사고, 산업재해, 화재 등 재해와 재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을 보장할 제도와 시스템은 혁신은커녕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지배하는 물신 숭배 사회에서 효율성과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외치는 '빨리 빨리'와 '대충 대충'의 구호 앞에 생명의 가치는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습니다. 무늬만 복지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밥과 꿈을 모두 잃은 사람들은 때론 범죄를, 때론 자살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쉴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위험은 도처에 깔렸는데 소통은 복지부동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소통 없이 외치는 안전 사회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헛구호입니다. '위험과 소통'에서는 우리 사회 위험의 현주소와 안전을 위한 소통의 중요성, 그리고 안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죽비를 힘껏 내려칠 것입니다. 필자.

후쿠시마 4주년, 지금 한국 사회는 핵발전소 수명 연장 문제로 갈등 폭발 직전

벌써 4년이 됐다. 11일이면 쓰나미의 습격에 대비하지 못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해 지구촌에서 최악의 핵 참사가 벌어진지 만 4년이 된다. 이 참사는 전 세계인들에게 핵과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첨단과학 시대라 할지라도 과학의 한계는 분명한 실체로 있으며, 이는 과학이 인간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일깨워준 것이다.

후쿠시마 핵 참사는 세상을 둘로 나누었다. 교훈을 얻은 자와 국가, 교훈을 얻지 못한 자와 국가로. 당신은 여기서 어디에 속하는가? 대한민국은 여기서 어디에 속하는가? 우리 사회에서도 후쿠시마 참사의 교훈을 강조하며 핵발전소의 안전에 문제를 제기하고 핵의 위협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원전(정확하게는 핵 발전) 안전 신화'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지도층과 원전 마피아들의 뇌리에서는 이 신화가 그 어떤 합리적 요구나 주장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쪼개져 종종 극한 대립을 보이듯이, 핵발전소 건설·운영과 관련해서도 친핵과 반핵(또는 탈핵)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최근 본격적인 대립을 벌이기 시작했다. 만약 이른 시일 안에 양 진영이 머리를 맞대고 소통해 합리적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며 급기야는 폭력 사태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 월성 핵발전소. ⓒ프레시안(김윤나영)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둘러싸고 폭동까지 벌어진 아픈 역사적 경험에서 다시 배울 때

우리 사회는 과거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핵폐기장 또는 방폐장) 건설과 관련해 여러 차례 사회적 갈등과 폭력 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방폐장 부지 선정은 1986년 이후 충남 안면도, 인천 굴업도, 전남 영광, 경북 울진 등 전국을 돌며 9차례나 추진됐지만 모두 실패했다. 특히 이 가운데 안면도(1990년), 인천 굴업도(1994년), 전북 부안(2003년) 등에서는 지역주민 간 대립은 물론 폭력과 폭동에 가까운 저항을 벌여 사회적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결과였다. 밀실에서 주민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뤄진 방폐장 부지 선정에 지역사회 전체가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치른 끝에 노무현 정부 들어 유치 찬성 지역 주민투표라는 투명하고도 공개적인 민주적 절차를 거쳐 겨우 방폐장 건설지를 경주로 낙점할 수 있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 얻은 상처투성이의 성과였다. 그나마 이는 소통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핵발전소 신규 건설과 설계수명이 지난 핵발전소 연장 가동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주민들의 요구에 귀를 막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 전체회의를 열어 자정을 넘긴 27일 새벽 1시에 표결로 2022년까지 월성1호기의 설계수명을 연장해 운영하기로 확정했다. 고리 1호에 이어 두 번째이며 가압중수로 방식의 핵발전소로는 처음이다. 이 가압중수로(CANDU, 캔두) 방식의 핵발전소 원조 개발국인 캐나다에서는 수명을 연장해 안전하게 가동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는 판단 끝에 수명연장을 최근 포기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접한 시민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이번 수명 연장 결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분노를 품게 마련이다. 2008년 미국산 수입 쇠고기와 관련한, 이른바 '광우병 파동'의 교훈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무시한 것이다. 대만과 일본에서는 광우병 발생 위험이 낮은 30개월 미만 소를 수입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명박 정부는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키로 미국과 전격 합의했다. 당시 시민이 분노한 데는 광우병 소 수입으로 인한 치명적 인간광우병 발생 위험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이나 대만 국민보다 더 못한 하등 국민이냐'는 자괴감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핵발전소 위험은 불공평한 위험, 주민들은 더욱 위험 크게 느끼게 마련

▲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에 반대하던 경주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위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미래 세대에까지 전가될 수 있는 위험이거나, 재앙 수준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원치 않는 비자발적 위험, 전문가 간 의견 대립이 벌어지는 위험, 과거 역사적 경험을 한 위험 등일수록 일반 대중들은 그 위험 정도를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위험 사회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 핵발전소의 위험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방사능 누출 등이 일어나면 인근 주민들이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불공평한 위험으로 꼽힌다. 이런 모든 것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위험이 핵발전소나 핵폐기물처분장과 같은 것이다.

핵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위험보다도 강하다. 핵발전소에 대한 대중의 위험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하더라도 결코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발생하면 재앙 수준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에서 발생한 노심용융은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면, 1986년 옛 소련(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핵발전소 폭발은 죽음의 장송곡이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세계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던 선진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이웃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4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우리 사회에 또렷이 남아 있다.

이는 특히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에게서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연장 가동이 결정된 월성 1호기 주변 경주 주민들에게는 핵의 위험이 매우 현실적인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엔진 설계 수명이 다한 자동차가 가득 도로 위를 마구 달린다면?

노후 원전, 즉 설계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를 낡은 자동차에 비유해 그 위험성을 이야기해보자. 만약 벤츠의 안전 운행 엔진 수명이 50만 킬로미터라고 하자. 아마 처음 10만 킬로미터까지는 고장이 거의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운행거리가 늘어날수록 이런저런 잔 고장이 나 가끔 자동차 수리소에 들러야 할 것이다. 나중에 40만 킬로미터 정도 되면 점점 큰 고장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50만 킬로미터가 됐다고 하자. 아직 생명이 위협받을 만한 사고가 나지 않았으므로 60만 킬로미터나 70만 킬로미터까지 더 타고 다니면 자동차 구입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계속 타고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

만약 설계 수명이 다한 자동차를 운행할 경우 엔진 정지 등 치명적 고장이 발생해 타인에게까지도 위해를 가할 수 있다면? 정부는 자동차의 운행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사회적 불안을 줄이기 위해 운행을 중단하는 것이 좋을까? 만약 도로 위 곳곳에 언제 멈출지 모르고,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으며 핸들도 오작동을 할 가능성이 높은 자동차가 가득하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도로를 건너거나 자동차를 몰고 다닐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 핵발전소로 돌아와서 낡은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 1호기는 수명연장을 해 현재 가동 중이다. 그런데 오래된 핵발전소일수록 고장이 잦다는 것이 이미 실제 통계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 등을 근거로 지역주민과 일부 전문가, 그리고 환경단체 등이 가동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근거에 기반을 한(evidence-based) 요구와 주장인 것이다.

낡은 핵발전소의 위험과 관련해 일본의 전문가인 고토 마사시 박사는 최근 우리나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원전이 오래되면 압력용기의 금속이 중성자에 계속 노출돼 약화됨으로써 일정 온도에서 깨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다른 부분에서도 재료가 부식되며 피로 현상과 균열 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30~40년의 수명으로 설계된 원전 가동을 함부로 연장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상 사고(normal accident)'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판단이 '정상사고(正常思考)'

이런 전문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낡은 시설과 기계, 제품일수록 고장이 잦고 심각한 고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더군다나 핵발전소와 같이 수많은 부품과 장치로 이루어진 거대복합시설은 어느 하나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엄청난 실수나 사고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핵발전소와 관련해 언제든지 '정상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하는 것이 '정상사고(正常思考)'이다. 수명을 얼마든지 연장해 가동할 수 있다는 생각과 결정은 비정상사고이며 비정상행위다.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연장 가동 중단 요구가 맞부딪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찌 보면 정상사고와 비정상사고의 대립이 벌어지는 불통의 장(場)이다. 이를 소통으로 바꾸어야만 대한민국은 위험사회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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