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빨아들이는 블랙홀 세종시, 누구를 삼키는가

[세종시 르포②] 자산가는 부동산 싹쓸이, 혁신도시도 '흔들'

세종시에서 약 12㎞ 거리인 조치원읍내 자이아파트. GS건설이 지난 2006년 분양했으나 전체 1429세대 중 400여 세대가 여전히 미분양 상태다. 갑작스레 터진 경제위기로 악성 미분양이 속출하기 전이다. 행복도시, 곧 세종시를 노리고 건설사가 지나치게 일찍 분양에 나섰던 탓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나온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지난 15일 오후 찾은 이 아파트 분양사무소는 계약대기자들로 분주했다. 3년이 넘게 미분양 상태였던 아파트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3명의 회사 관계자는 사방에서 밀려오는 전화와 계약대기자들로 인해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일주일 전부터 매매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발표 이후에만 40여 건이 계약됐다. 서울에서 여럿 몰려온다"고 귀띔했다.

마침 신중한 표정으로 계약서에 사인한 김모 씨(57, 대전광역시 서구)는 무슨 이유로 아파트를 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업도시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전세를 끼고 샀다. 투자 목적"이라고 답했다. GS자이공인 관계자 A 씨는 "지방이라 DTI 규제도 안 받는다. 수도권 사람 중에는 한꺼번에 여러 채를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계약한 109㎡(33평형)의 가격은 1억8800만 원(발코니 확장형). 놀랍게도 자이 측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기존 분양가보다 20%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에 불만을 느낀 기존 입주자들은 대책모임을 만들기까지 했다.

수요가 넘치는데도 할인된 가격으로 팔리는 이 아파트의 현주소는 세종시가 가진 정치·경제적 의미를 축약해 보여준다. 분양시장 경기는 여전히 침체지만 인구 3만의 조그만 도시 조치원의 부동산 시장은 마치 블랙홀처럼 돈을 빨아들일 기세다.

부동산 시장만이 아니다. 세종시 예상 부지 인근 도시에 자리 잡은 기업들은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왜곡된 구조는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시절부터 형성됐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기존 의미를 없애버린 이명박 정부 들어 왜곡의 기울기는 더욱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조치원 자이아파트 단지 내 위치한 분양사무소. 상주인력 4명은 몰려드는 전화와 계약자들을 상대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열기는 이미 대전까지

매매시장이 이처럼 불붙는 이유는 전세 품귀 현상 때문이다. 조치원 자이아파트 109㎡의 경우 전셋값은 8000만 원 선이다. 1년 만에 3000만 원가량 올랐다. 주택 여러 채를 사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임대시장을 노려서다. A씨는 "어차피 신도시에 들어올 서울사람들 대부분은 전세로 살지, 집을 사진 않는다"며 "매매시장보다 전세시장 전망이 좋다"고 했다.

열병은 연기군을 넘어서까지 전염되고 있다. 세종시로부터 20분 거리인 대전시 유성구. 대전의 대표적 신흥 부촌인 노은동부터 반석동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다. 약 3만 세대가 들어선 노은동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름은 조치원길이다. 세종시에서 노은동까지, 사실상 공동 생활권역임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정부청사가 몰린 둔산동에서 가장 가까운 노은1지구의 한 중개업소를 찾았다. 이 업소 유모 부장은 "매물이 나오는 족족 팔린다. 작년보다 3000~4000만 원 정도는 다 올랐다"며 "전세는 아예 물량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제 매매시장까지 덩달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 지역 109㎡대 전세가는 2억 원 선. 수도권 신도시인 서판교 수준이다. 유 부장은 "요즘 서울 사람들이 부쩍 몰려들고 있다. 서울 사람들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매맷가가 새로 형성된다"며 "세종시 수정안 여파가 굉장히 강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파트 전세가와 매맷가가 서로 얽히면서 영향을 더욱 키우는 게 세종시 인근의 현 상황이다. 이미 학군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유성구는 지역 교육열에 세종시 투자열풍까지 번지면서 전세·매매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전세 품귀 현상은 아파트 매맷가 상승을 이끌었고, 이 불은 인근 조치원으로 옮겨 붙어 조치원 아파트 매매시장에 돈을 풀고 있다. 조치원에서 일어난 불은 다시 대전, 공주 등 세종시 인접 도시로 더욱 크게 넘어간다. 유 부장은 "제가 아는 분도 조치원 자이아파트 3채를 갖고 있다"며 "충청도에서 돈 깨나 만진다는 사람치고 세종시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다만 분양시장은 여전히 경기침체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노은동 인근 덕명지구의 경우 악성 미분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공급업체들이 세종시 효과만 믿고 너무 높게 분양가를 책정한 게 한 원인이다. 유 부장은 "공급이 2년 정도 지연돼 수요가 몰려야 정상인데, 인근 아파트 매맷가가 높게 형성되면서 분양가도 너무 높았다"고 했다. 노은2지구의 경우 분양가는 3.3㎡당 평균 400만 원대에서 1000만 원 선으로 치솟은 상태다.

대덕테크노밸리도 '흔들'

세종시가 과학·산업도시로 수정되면서 미친 또 하나의 변화는 기업 이전 움직임이다. 지역경제권의 중추 역할을 해야 할 기업군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가장 대표적인 게 참여정부 시절 한화그룹 주도로 만들어진 벤처단지 대덕테크노밸리다. 이곳의 정부 출연기관들은 이미 세종시로 이전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 때문에 대덕테크노밸리를 흔든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연구개발인력교육원과 국가핵융합연구소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전을 검토 중이다. 연구개발인력교육원은 교육원 전체 이전을 검토 중이며 국가핵융합연구소 역시 본원 일부 이전 방침을 세워뒀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단지 한 관계자는 "핵융합연구소는 데모 플랜트(인공태양 개발 관련)를 세종시로 옮길 것으로 안다"며 "연구개발인력교육원은 현재 세 들어 사는 상태라 세종시로 이전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슈퍼컴퓨터센터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도 부서 일부 이전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KAIST는 세종캠퍼스 건립 방안을 발표한 상태다.

정부가 추진하는 오송~세종시~대덕테크노밸리를 잇는 과학벨트 차원으로 보면 세종시와 지근거리인 대덕테크노밸리 입주 연구소의 이전은 큰 의미가 없을 듯 보인다. 그러나 현실화할 경우 대전시는 세수에 타격을 입는다. 연구소 이전이 지역 벤처기업 이전까지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입주 기업에 낮은 분양가와 세제 면제 혜택 등을 제공하고 있다. 대덕테크노밸리 입주 업체 500여 곳이 지난 2007년 올린 매출액 합계는 7000억 원을 넘어섰다.

혁신도시들도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세종시가 표방하는 신재생에너지·IT 등 산업들 상당수가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혁신도시 성격과 겹치기 때문이다. 울산이 대표적이다. 삼성SDI가 당초 계획했던 2차 전지산업 투자액 1조7000억 원을 5000억 원으로 줄이는 대신, 세종시에 1조200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시 입장에서는 한화석유화학의 태양전지 생산공장 유치를 놓친데 이어, 기존 계획했던 투자마저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

울산 혁신도시의 경우 예정 부지 땅값이 3.3㎡당 300만 원대에 달한다. 세종시는 대기업에 원형지 공급 조건으로 같은 부지를 40만 원에 공급키로 했다. 경쟁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다.

▲지역민을 먹여살리는 기계음이 돌아가던 월산공단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있던 공단은 사라져

이 같은 두려움은 충청도 민심까지 갈라놓고 있다. 혁신도시 예정지인 충북 음성·진천이 세종시의 직접 영향권에 들자 행정도시·혁신도시 무산저지 충북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충북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시 수정안은 충북 지역의 기회와 자원, 경쟁력을 모두 빼앗아 충북 발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음성·진천 혁신도시가) 세종시 주변도시로서의 기능분담, 충북지역의 전략산업 육성과 투자유치, 오송역과 신도시 개발 등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던 기대에 막대한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충청북도청 기반건설과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세종시가 만들어진다고 당장 혁신도시가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부에 세종시와 동일한 혜택(세제감면, 부지 제공가격 할인)을 혁신도시에도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답했다.

인근 도시만 불안감을 느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세종시 사업은 연기군의 고용을 창출했던 월산공단을 망가뜨렸다. 최정미(가명, 연기군 남면 고정리, 60) 씨는 "남면에 자리 잡은 월산공단(연기군 남면 월산리)을 정부가 해체시켰다"며 "있던 기업들 다 내쫓아서 일하던 사람들 실업자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기업 준다면 누가 정부 말을 믿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월산공단이 있던 곳은 이미 폐허로 변해 기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월산공단은 이미 참여정부 당시 행정도시 사업이 진행되면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신재생에너지, IT 등 첨단산업을 유치한다는 정부 방침이 당시도 이미 확정됐기 때문이다. 최 씨는 "옆집 아저씨는 퇴직금도 한 푼 못 받고 쫓겨났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누구 희생 위에 세우나

세종시 수정안은 아직 효력을 지니지 않는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강한 '원안 고수' 의견으로 인해 국회 통과를 장담키도 어렵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 후폭풍을 몰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은 경기침체로 인해 투자수요를 찾지 못한 투자대기자금이 일시 호재에 따라 이곳으로 몰렸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참여정부 당시 확인된 바 있다. 세종시가 들어설 연기군의 연간 땅값 상승률은 참여정부 출범 이전인 2002년 2.42%에 불과했지만 출범 후인 2003년에는 11.59%로 급등했다. 그리고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공포된 이듬해는 무려 23.33%까지 치솟았다. 정치권의 호재를 계기로 투자대기자금이 일시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곤 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연기군민들이 93일째(15일 현재) 매일같이 조치원역 광장에 모여 이명박 정부를 성토하는 촛불문화제를 여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15일 저녁 열린 촛불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성토하고 참여정부의 원안 고수를 희망했다.

장인성 행정도시사수연기군대책위 기획실장은 "결국 정부가 기업에 주는 원형지 분양은 기업보고 땅투기 해서 정부 도와달라는 것 아니냐. 주민들이 이를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택시기사는 "원안에도 기업 내려오는 사안이 다 포함돼 있었던 것 잘 안다. 정부가 충청도 사람 어리석다고 속이고 있다"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 청계천 만들 때 생각해보면 결국 수정안이 통과될 것 같다"고 했다. 한 시민은 "이명박 대통령 말을 어떻게 믿나. 다음 대통령이 또 싹 바꿀거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의 추진력에 대한 불안감과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세종시 문제를 정치공학적 도구로 이용만 하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지역민들의 반발을 강하게 낳고 있는 듯 보였다.

▲어쩌면 행정수도 방안이나 세종시 수정안이 미치는 효력은, 단기적으로는 완벽히 같다. 정치적 논란, 지역 부동산 시장 급등, 원주민 퇴출.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원안을 두둔하는 지역민들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들 중에는 바로 그 원안을 추진한 참여정부 당시 직접적 피해를 입은 가구가 적잖기 때문이다. 연기군청 내에서 릴레이 단식을 벌이는 지역민들의 천막을 찾았다. 김순애(가명, 연기군 서면 봉암리, 52) 씨는 "땅값이 올라서 군내 이주하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수십 년 알고 지낸 이들이 다 뿔뿔이 흩어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세종시 대상 지역 토지 수용은 거의 완료된 상태다. 원주민 대부분은 참여정부 당시 토지를 수용당한 후 생계수단을 잃었다. 농사지을 땅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 실장은 "농민 대부분이 1억 원 미만의 보상을 받았다. 이 돈으로 전세를 마련한 후 남은 돈을 까먹는 게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며 "군에서 공공근로 등 공익사업을 활용해 이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원안을 전면 부정하면서 세종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두둔하고, 정부가 지역민을 설득하겠다며 와서는 공격하는 등 모순과 혼란은 극에 달했다. 명분과 실익이 혼재된, 너무나 선명히 눈에 보일 정도로 일부 기업만이 큰 사익을 노리는 땅이 돼 버렸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을 현 정부가 다시 부인해버리는 기묘한 왜곡을 낳고 있다.

혼란의 희생은 국민 전부의 부담이다. 개발 계획 안을 수정할 때마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다. 공무원들의 노동도 모두 세금으로 계산된다. 정부의 대국민 홍보전도 모두 세금이다. 실상 모든 국민이 세종시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국토이용계획이나 도시개발계획은 20년마다 한 번씩 마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떤가. 5년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고 있다. 국가적 낭비다"라고 비판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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