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쌀값 보장'이라는 띠를 맨 윤고병(59)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답이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그의 가슴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오죽하면 이 나이에 지방에서 여기까지 오겠느냐"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쌀값 대란으로 농심(農心)이 멍들고 있다.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쌀값이 문제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17일 농민 3만여 명이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13개 단체가 공동 주최한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해 쌀 대란 해결을 촉구했다.
| ▲3만 명의 농민이 쌀값 대란 해결을 촉구하며 농민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
"우리의 죄라곤 열심히 농사를 지은 죄 밖에…"
이날 무대에 선 인사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쌀값 정책을 맹비난했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현재의 쌀 대란이 농민의 책임인가"라고 반문한 뒤 "땀 흘려 농사만 지은 농민을 현 정부는 나 몰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가는 나가라고 한다"며 "하지만 농업은 단순히 하나의 산업으로 보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도숙 의장은 "농가가 지탱하기 위해선 가격 보장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장 농민은 내년에 농사를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단순한 이벤트 행사식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윤요근 농민연합 상임대표도 "쌀이 밥상까지 오르기까지 77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며 "그만큼 애지중지 기르는 쌀이 현재 14만 원대로 떨어졌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농민들은 그동안 누누이 쌀값 대란을 예고하며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며 "하지만 이를 무시하더니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윤요근 상임대표는 "우리의 죄라면 열심히 농사 지은 죄 밖에 없다"며 "농민을 만만하게 보는 이 정권을 우리 힘으로 심판해야 한다"며 향후 강한 투쟁을 예고했다.
| ⓒ프레시안 |
이날 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은 결의문을 통해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쌀값이 생산비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데, 쌀값이 안정되었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의 쌀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북 쌀 지원 중단으로 인한 재고미의 급증에 있다"며 "해마다 40만 톤에 달하는 물량이 대북지원을 통해 시장에서 격리되어 왔지만 2008년부터 중단된 후 약 80여만 톤의 쌀이 재고물량이 되어 창고에 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들은 "쌀 대란 해결의 근본적 방안인 대북 쌀 지원을 즉각 재개하고 최소한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쌀 값 현실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의 여분 쌀 매입결정에도 애 타는 농민들
| ⓒ프레시안 |
정부는 추가 매입해 격리하는 물량을 일정기간 동안 시장에 방출하지 않을 계획이다. 매입량 확대에 따른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정물량의 재고미는 국내 쌀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처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쌀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의 매입 결정 방안에도 불구하고 쌀값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10월 25일 14만3072원에서 11월 5일에는 14만2432원으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의 예상 수확량 초과분 추가격리 방침도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4만3072원은 작년 수확기 평균보다 12.3%나 하락한 가격이기 때문에 농민들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쌀 목표 가격을 17만 원으로 정하고 현지 쌀값과 목표 가격 차이를 85% 보전해 주고 있다.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농민이 실제 손에 갖는 돈은 16만 원 정도다. 정부의 쌀 목표 가격이 5년 째 동결되고 있어 농민단체는 한 가마당 21만 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현재 쌀 목표 가격은 비료 값, 농기계 기름 값, 농약 등 쌀 생산에 들어가는 생산비 상승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2009년 화학 비료 값은 2006년 대비 2배로 치솟았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 ⓒ프레시안 |
경기도 연천에서 올라왔다는 박기순(64) 씨는 "정부가 농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거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배운 게 농사 밖에 없으니 짓기는 짓지만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남 정읍에서 올라온 최만길(55)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년에는 나을까 싶어서 농사를 짓는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수익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답이 없다"고 밝혔다. 최만길 씨는 "이젠 농지를 팔아서 빚 갚고 농촌을 떠난 거 이외엔 다른 길은 없다"며 "이런 식이면 3~5년 사이 농촌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농민 연합에 따르면 2008년 농가 소득이 전년에 비해 4.5퍼센트(%) 감소했다. 농가부채는 7.8퍼센트 증가했다. 도시근로자의 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72.5퍼센트에 불과해 기존 농가부채마저 정상적인 채무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민의 주름살이 더욱 굵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프레시안 |
| ⓒ프레시안 |
| ⓒ프레시안 |
| 농민 쌀값 보장 촉구 도심 기습 시위…15명 연행 이날 서울 도심에서는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농민들의 기습 시위도 이어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200여 명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부터 서울 종각 사거리 일대에서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애초 이들은 시청 인근에서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삼보일배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도로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개 사료만도 못한 쌀값에 항의한다", "대북 쌀 지원 재개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1시간가량 거리 행진을 진행했고, 이에 경찰은 3대 중대를 투입해 농민들을 인도로 밀어냈다. 경찰은 3시 30분께 종로구 교보빌딩 뒤편 인도에서 재차 연행을 시도, 이 과정에서 15명의 농민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은 현재 서울 노원경찰서와 성동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의 잇따른 연행 시도에도 불구하고 농민 80여 명은 청계천 광교 사거리 일대에서 거리 행진을 계속해 나갔으며, 오후 4시께 동아빌딩 골목에서 경찰에 의해 포위됐다. 이들은 오후 5시께 자진 해산하고,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 대회에 합류하기 위해 대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