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태국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 그를 <프레시안> 지면에서 만났다. 한참 태국인들과 의사소통 방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그의 글, '원탁의 태국인 '을 봤다. 안 그래도 말이 자주 바뀌는 태국인,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달라서 한참 고생하던 차에 심적으로 대단한(?) 동맹군이라도 얻은 양 나는 신이 나서 팀원들에게 그 글을 낭독했던게 생각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의 글을 열독하곤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를 꼭 찾아가겠노라 다짐하곤, 지난 18일 화성으로 내 발걸음을 옮겼다.
화성은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만 2만4000여 명, 불법체류자를 합치면 가늠이 안되는 외국인들이 이 고장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옆 동네 안산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며 기관들이 제법 있는데 이 곳 화성은 여간 찾아보기 힘들다고 얼핏 들었는데,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저녁쯤에는 제법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발안읍내에서 볼 수 있었다.
저멀리 보이는 만국기, 주변에 몇몇 모텔과 오버랩되는 화성외국인노동센터. 그 공간이 왜이리도 아이러니하기만 한지. 외국인 노동자에겐 경찰, 아버지, 친구… 뭐랄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타국의 공간,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에 한윤수 목사를 만나러 난 그렇게 찾아갔다.
1명의 센터장, 4명의 직원, 봉사자들, 그리고 국가별로 스크랩되있는 상담일지, 각국 언어사전, 노동법 관련 서적 등 조그마한 사무실엔 빼곡하게 사람들과 자료들이 즐비했다. 자리에 앉은 뒤 한윤수 목사에게 처음 들은 말은 이랬다.
"화성은 말이죠. 보건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치료해주는 정도의 안면이 있는 간호사에게 노동자들이 돈을 받아달라고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할 자원도 부족하고, 봉사자는 더더욱 없죠. 목사들도 들어오지 않고, 공무원들도 농담삼아 귀향살이 한다는데가 바로 화성이에요."
| ▲ <오랑캐꽃>의 한윤수 목사. ⓒ고두환 |
"태국에 다녀왔다고 했죠? 여기에 태국인이 5000명으로 가장 많아요. 그런데 태국인들이 제일 답답해. 권리의식도 책임의식도 가장 없어. 뭐가 다 약해 빠졌어. 자기 스스로를 구할 힘이라는게 있어야 되는데 말이지."
말인 즉슨, 임금이 체불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사장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공장을 도망치는 등 제대로 권리행사를 못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제대로 된 조건으로 체불임금이나 퇴직금을 받아내기는커녕, 도와주기 위해 꾸며오라는 문서는 가져오지 않으면서 태국으로 돌아가면 밀린 돈을 받아달라며 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삼색기'에 등장한 '수진'같은 태국 노동자만 있으면 속 시원할 것이라며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화성외국인노동센터는 2007년 6월 세워졌다. 말 그대로 외국인을 도와주러 생긴 이 곳이 왜 탄생했는지를 한윤수 목사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내가 예전에 청년사라는 출판사를 했어요. 그 출판사에서 전두환 정권 시절에 노동자 수기를 엮어서 낸적이 있었죠. 고생 엄청했지. 그때는 그걸 꼭 해야겠더라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더 이상 욕심도 없고, 이걸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사회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데 왜 외국인 노동자였나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간단한 이유였다. 화성외국인노동센터는 재정 상태가 그야말로 열악했다. 국가지원은 두 사람 몫의 최저임금을 매달 지원해주는 184만 원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 지인들의 후원금과 한윤수 목사의 개인 사재가 출연되어서 센터는 근근히 운영을 해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걸 운영하기 시작하니 집을 팔고, 전세금을 빼고, 지금은 임대아파트에 살잖아(웃음). 우리 마누라 소원이 매달 월급을 갔다주는거라니까!"
그러면서 임대아파트에 대한 장점만을 조목조목 듣고 있노라니 이런 낙천성이 이런 일을 가능하지 않게 했나 생각해봤다.
- 목사님이시니까, 목회는 어떻게 하세요?
"목회는 따로 안해요. 이렇게 활동하는게 목횐데 뭘. 사람을 섬기는 것 그게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죠."
그러는 도중, 센터에 면접을 보러 온 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다행히 센터와 가까운 곳에 살고 이런 활동에 제법 의지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는 주일을 결단코 사수(?)해야 된다는 의지를 비쳤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우린 주일만큼은 양보 못해요. 평일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해야되서 우리를 못 찾아와요. 주말에 우리를 가장 많이 찾아오지. 그래서 주일은 어쩔 수 없어요."
주일은 사수해야 된다는 청년과 주일은 일해야 한다는 목사의 만남, 이 아이러니한 현장에 나는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 ▲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의 상담 모습. 이날 상담은 센터의 직원, 통역 자원봉사자와 함께 진행됐는데, 상담 후 회사에 찾아가 밀린 퇴직금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고두환 |
"외국인 노동자들이 버텨줄 때. 임금도 다 받아내야겠다고 사장님들한테 떳떳하게 권리주장하고, 대충하고 넘어가자고 하면 단호하게 버티면서 대립각을 세워줄 때 정말 보람느끼지요. 그래야 우리도 힘을 얻고 돈 받아줄 수 있거든."
- 가장 생각나는 외국인 노동자는요?
"캄보디아 랭유린이지! (☞ 관련 기사: 랭유린의 눈물) 내 글에서 봐서 알겠지만 똑뿌러지고 당찬 사람이에요. 돈을 조금 더 받아주지 못해서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잘 살고 있다고 연락이 오고 그러니 다행이네요."
-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들, 근본적인 해결책이 뭘까요?"
"난 그렇게까지 어렵게는 모르고. 우리 모두는 세계 시민이죠. 다 같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문명은 이미 같아졌다고 보고 문화는 곧 같아질거라고 생각하는데 지배층이라 생각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걸 버려야죠. 동남아 국가들이 우리나라 경제 따라오는데 얼마나 걸릴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독이나 다른 나라가서 일하면서 무시당하던 시절은 벌써 잊은건가? 다 똑같은 사람이죠. 그렇죠?"
다 알고 있는 얘기인데, 새로운 사실을 듣는 듯 하나하나 마음에 와서 박히기 시작했다. 사람은 그렇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받을 때 못견딜 만큼 찔리곤 한다. 그런 느낌이 한윤수 목사와의 대화 내내 느껴지곤 했다.
- 마지막으로요, 정권이 바뀌니 어떠세요?"
"요샌 불법체류자를 무조건 잡아가요. 물론 불법체류가 좋은 것은 아니지. 하지만 너도나도 다 잡아가면 그 노동자 돈도 못받고 본국으로 보내지게 되요. 우리한테 오면 다만 50%라도 받아줄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받고 가게 해야지. 고향 가서 어떻게 살고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고향 가면 맞아죽는다니까."
자나깨나 외국인 노동자들을 걱정하는 듯한 말투. 그렇게 한윤수 목사와의 서투른 인터뷰는 끝이났다. 대전에서 온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근처 식당에서 생태찌개를 권하던 한윤수 목사, 당연한 일을 하는 듯, 그렇게 묵묵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에서 <오랑캐 꽃>의 숨은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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