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이 황금빛으로 빛났던 재즈의 시대 |
N : 흠, S씨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이하 <벤자민>)의 원작 소설이나 [위대한 개츠비]는 읽어보셨겠죠?
S : 물론이죠. 영문과 학생을 우습게 보지 마시라능. 피츠제럴드의 단편들은 참 좋죠.
N : 이크, 죄송. 근데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니까 원작과 영화가 억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S : 그러게요. 기본 설정만 빼고는 거의 다 바꾼 것 같아요.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N : 피츠제럴드 하니까 말인데 '재즈 시대'란 말도 이 사람이 만든 말이잖아요? <벤자민>도 재즈 시대라 불렸던 미국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S : 애초에 이 단편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의 제목부터가 <재즈 시대 이야기들>이잖아요. 요즘은 영화 때문에 <벤자민>이 표제작으로 부상한 것 같지만.
N : 재즈 시대는 미국이 1차 세계 대전 때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낭비하던 허영의 시대였죠. 피츠제럴드야말로 그 시대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미국 작가 중 하나인 것 같아요.
S : <리츠 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보세요. 다이아몬드 산 위에 초호화 저택을 지어 놓고 남김없이 다 때려 부수잖아요. 그 허망한 결말까지 완벽하게 재즈 시대의 본질을 까발리는 판타지예요. <위대한 개츠비>로 대표되는 인물 군상들도 그렇죠. 요샛말로 하면 된장남이랑 된장녀밖에 안 나오는 소설들 아니냐구요.
N :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를 묘사한 한 대목이 전 아직도 기억나요. '데이지는 농담을 한 뒤에 자기가 한 말이 매우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여자였다'. 여주인공들을 언제나 어딘가 얄팍하고 경박하게 그려놓고는 신랄하게 놀려대는 감이 있어요.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그런 여자들만 쫓아다니며 좋아한 것 같아요.
S : 그런 여자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잖아요.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나 <벤자민>의 힐더가드나 그 본질은 비슷하죠. 영화에서 케이트 블란쳇의 이름이 데이지라는 건 흥미로웠어요. 데이지는 개츠비만큼이나 상징적인 이름이니까요. 물론 영화의 데이지는 원작의 데이지나 힐더가드를 벗어나 더 멀리까지 가지만, 그래서 그 이름이 더 재미있는 반어법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9
| ▲ 노인의 몸을 한 어린 벤자민과 아이의 몸을 가진 어린 데이지의 만남 |
N : 그럼 이제 영화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원작과 다른 지점들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감상을 이야기해 보죠.
S : 도대체 이 짧고 시니컬한 단편에서 뭘 뽑아서 영화를 만들려고 하나 했더니만, 완전 환골탈태를 시켜 놨군요. 앞서 늙은이로 태어나서 점차 어려지는 설정 정도만 따 왔다고 하긴 했지만 그 설정조차 변형되어 있어요. 영화의 벤자민은 노인으로 태어나지만 정신은 그냥 아이잖아요. 그리고 젊어지면서 정신적으로는 점차 성숙해져 가죠. 그 정신과 신체의 갭에서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거고요. 원작의 벤자민은 그런 갈등 자체가 없죠. 캐릭터 자체가 거대한 블랙 유머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예요.
N : 아까 이야기했던 데이지도 그래요. 20대의 데이지는 정말로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의 현신 같았어요. 별 의미도 없는 지식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내면서 얄팍한 지성을 과시하는 모습이나 춤을 추면서 동료들의 추파를 받아들이는 장면 등을 보면 얄밉기까지 할 정도로 피츠제럴드의 여주인공을 빼다 박았죠.
S :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인간미 있고 존중받을 만한 인물이 되고요. 핀처가 데이지의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은 대단해요.
N : 저는 벤자민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데이지의 고통이 더 와 닿고 공감도 많이 되더군요. 벤자민은 판타지적인 인물이지만 데이지는 우리와 같은 시간축을 살아가는 여성 캐릭터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여성 캐릭터 하니까 말인데, 퀴니와 엘리자베스 애벗도 참 좋았어요. 이 영화의 여성들은 자신의 한계를 계속해서 극복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데이지가 댄서로서 겪는 시련이나 엘리자베스의 후일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죠.
S : 조연들이 참 효과적으로 쓰여진 영화 같아요. 벤자민의 나이 든 할머니 친구나 선장님처럼 잠시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가 주어지죠. 연기들도 훌륭했고.
N : 벤자민이 양로원에 버려졌다는 설정은 어떻게 봤어요? 이것도 원작과의 큰 차이 중 하나인데.
S : 부르주아 집안에서 모자란 것 없이 자라는 원작의 벤자민과 달리, 영화의 벤자민은 흑인 부부가 운영하는 양로원에서 유년기를 보내죠. 노인 얼굴을 한 아이가 노인들과 함께 지내는 아이러니적인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벤자민의 성장 과정에 입체성을 부여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N : 양로원이란 게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잖아요. 결국 죽음을 기다리는 곳인 셈인데, 벤자민은 점차 젊어지는 반면 주변 사람들은 늙고 죽어가는 데에서 삶과 죽음의 교차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동양적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서구권에서 죽음은 삶과 적대적인 관계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벤자민>에서 삶과 죽음은 가깝고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S :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더 큰 틀에서 보면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 종전일부터 시작해서 뉴올리언즈에 몰아친 카트리나를 예고하면서 끝나잖아요. 무수한 죽음을 동반한 재난과 재난 사이에 존재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순간의 반짝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끊임없이 영원을 이야기하죠.
N : <벤자민>의 세계는 결국 죽음과 삶, 찰나와 영원, 판타지와 리얼이 교차하는 세계가 되는 거죠.
데이빗 핀쳐의 시간은 도약한다
| ▲ 러시아에서 만나 우정과 사랑을 나눈 엘리자베스와 벤자민 |
N : 그런데 핀쳐 형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죠? <파이트 클럽>의 엄청난 팬이긴 했지만 <조디악>부터 갑자기 엄청난 거장이 되어버렸어요.
S : 전 <조디악>을 건너뛰고 <벤자민>을 봤던 터라 영화 크레딧 올라갈 때 기함했죠. 아니 이 사람 대체 뭐야!? 하고. 그래서 저번 주에 얼른 <조디악>을 챙겨봤어요. 훌륭한 영화더군요.
N : 사실 처음에 이 영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저히 상상도 안 되더군요. 피츠제럴드 단편을 핀쳐가 영화화한다고? 대체 어떻게? 그 결과물을 보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핀쳐는 피츠제럴드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S : 주인공들을 다루는 방식부터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피츠제럴드의 주인공들은 철이 없고 퇴행적인 반면, 핀쳐의 주인공들은 게속 성장하고 극복하죠. 예전 작품들과 달리 인간에 대한 시선이 상당히 긍정적이에요. 벤자민의 아이러니한 삶 자체도 슬프다기보다 행복한 것처럼 느껴지고요.
N : 사실 행복한 거 맞죠. 전 한편으로는 벤자민의 아이러니마저 부러웠어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체력은 달리고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기잖아요. 젊을 때는 뭘 몰라서 쓸데없는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근데 벤자민은 충분히 정신적으로 성숙한 뒤에 자기 맘대로 여행도 실컷 다닐 수 있고 얼마나 좋아.
S : 그러게요. 오토바이도 타고 인도도 가고…. 그 장면은 너무 브래드 피트 간지가 나서 조금 웃겼지만. 아무튼 죽는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보호를 받다가 그 품에서 죽는 호사를 누리고 말이죠.
케이트 마님을 찬양한다
| ▲ 20대부터 노년까지, 데이지를 완벽하게 표현해낸 케이트 블랜칫 |
N : 자, 이제 잠깐 우리의 '캐마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브래드 피트도 나쁘진 않았지만 역시 케이트 블란쳇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네요.
S : 신앙간증 타임인가요. 좋아요. 20대 철없는 소녀부터 노년까지 어쩌면 그렇게 멋지게 소화하시는지! 솔직히 20대를 연기하는 블란쳇은 조금 걱정이 되었거든요. 카리스마 있는 미인이긴 하지만 골격이 크고 광대뼈가 나온 얼굴이라 앳된 인상은 아니잖아요.
N : 그렇죠. 그런데 웬걸, 단번에 억양까지도 완벽한 피츠제럴드 스타일의 여주인공이 되시더군요. 중년일 때도 반짝반짝 빛이 났고, 노년일 때도 무척 자연스러웠고요. 어렸을 때 잠깐 발레를 배운 것뿐이라는데 춤추는 모습도 정말 예쁘지 않았어요? 체격도 큰 편인데도 발레리나를 연기하는 데에 어색함이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건 블란쳇의 표정이예요. 얼마나 다채로운지.
S : 전 목소리요. 그 낮게 깔리면서 울리는 듯한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아요. 이건 뭐 종교 체험도 아니고.
N : 하하하. 어쩔 수 없죠. 우린 얄짤없는 마님 신도니까요.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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