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길

[신기주의 이야기 속으로] 영화 속의 흑인 대통령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당선됐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에선 짐작했던 일이다. 대중문화는 당선 뿐만 아니라 오바마가 걷게 될 미래까지도 예견하고 있다.
"오바마가 정말 될까요?" 타블로에게 물었다. 타블로가 대꾸했다. "되도 걱정이예요." "무슨 말씀인가요?" "대통령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암살이라도 당하게 될지 모르죠." 타블로가 옳았다. 생각이 짧았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보다 중요한 게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가였다. 그는 변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가 외치는 변화란 무엇일까. 그 변화가 태평양 너머 이 땅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변화라는 단어의 의미를 우린 아직 모른다. 시카고의 흑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다. 월가의 금융위기에 실물의 메인 스트리트가 냉소적이었던 건 잘난 것들의 돈장난 탓에 사고가 났다고 여겨서였다. 워싱턴 정치에 미국 서민들이 냉소적인 것 역시 어차피 정치란 정치 엘리트들끼리의 파워 게임이라고 여겨서다. 그런데 오바마는 달랐다. 일리노이에서의 대선 출마 연설에서 그는 외쳤다. "나는 워싱턴 정치를 모른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만큼은 경험했다." 그리고 승리 연설에서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인들은 다시 한 번 아메리칸 드림이 이 땅에 살아있다는 걸 증명했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시아의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미국 시카고에서 정치적 둥지를 튼 코스모폴리탄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 됐다. 미국의 서민들에게 오바마는 정치 엘리트의 상징이 아니라 진짜 자신들의 지도자 감이었다. 적어도 오바마는 그런 인물로 보였다. 이번 미국 대선은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정치와 경제에서 소외됐던 서민들이 앞장선 결과였다.
딥 임팩트
그러나 이제부터다. 오바마가 일할 워싱턴은 여전히 백인과 정치 엘리트들의 집합소다. 그 안에서 오바마는 손발이 묶인 채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1980년 카터처럼 말이다. 정말 암살이라도 당할지도 모른다. 1964년 케네디처럼 말이다. 미국은 이미 이런 실패를 경험했다. 그 때의 쓰라린 경험은 대중의 의식 안에 깊이 투영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 드라마가 진작부터 흑인 대통령을 상상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딥 임팩트>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흑인 대통령을 꿈꿨던 첫 번째 사례다. 모건 프리먼이 대통령 톰 벡 역을 맡았다는 소식만으로 할리우드가 들썩였다. <딥 임팩트>가 개봉한 1998년엔 흑인 대통령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다. 모건 프리먼은 운석 충돌이라는 지구 멸망의 위기에서 지도력을 발휘한다. 폐허가 된 백악관 앞에서 모건 프리먼은 연설을 한다. 용기와 전진을 말한다. 뤽 베송의 <제5원소>도 미국의 흑인 대통령을 상상한 영화다. 하지만 <제5원소>의 흑인 대통령은 우매하기 짝이 없다. 지구 멸망의 위기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할리우드 영화에선 흑인 대통령은 어떤 상징에 머물렀다. 논쟁적인 설정 정도였다. 미국 드라마에선 얘기가 달랐다. 대통령의 피부색은 인종 차별이 허물어졌다는 의미 이상이다. 피부색이야말로 미국 정치가 한 발자국 진보했다는 상징이었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치르는 백인들 중심의 워싱턴 정치를 탈피했다는 뜻이다. 드라마 <웨스트 윙>은 피부색을 진보의 상징으로 썼다. <웨스트 윙>은 주인공이었던 제트 바틀렛의 뒤를 이어 마지막 시즌에서 유색 인종인 라틴계 산토스 하원의원을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민주당 대통령이 연임을 하는, 바야흐로 민주당 시대를 그린다. 흔히 <웨스트 윙>의 마지막 상상을 두고 오바마 당선을 예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산토스 의원은 오바마와는 좀 다르다. 산토스는 미국 토박이다. 산토스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던 건 경제가 아니라 환경 문제였다. 전임 대통령인 바틀렛이야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전문가로 그려진다. 무엇보다 산토스의 아내는 창백한 백인이다. 산토스가 백인표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려면 백인의 표가 필요하다. <웨스트 윙>은 완벽한 흑인 대통령을 꿈꾸진 못했던 셈이다.
24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에서 흑인 대통령은 좌절하기 일쑤다. 미국 드라마 <24>에서 대통령 데이비드 팔머는 존경 받아 마땅하다. 그는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와 갖가지 테러의 위협에 맞선다. 부시는 테러에 신속하게 굴복했다. 그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미국이 스스로 짓밟는 순간 미국은 테러에 굴복한 꼴이었다. <24>의 데이비드 팔머는 굴복하지 않는다. 네바다에선 핵폭탄이 터진다. 핵미사일이 LA를 겨냥한다. 워싱턴의 백인 파워 엘리트들은 당장 적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계엄을 선포하고 피의 보복을 해야 한다고 팔머 대통령을 압박한다. 데이비드 팔머 내각 안엔 대통령을 빼면 흑인이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끝내 팔머는 내각의 탄핵 소추를 당해 감금당한다. 팔머 대통령의 선거 참모였고 비서실장인 자조차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팔머를 배신한다. 그들에겐 그들의 길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정한 애국자라고 여긴다. 팔머는 미국을 억누르는 공고한 지배 이데올로기 앞에서 절망한다. 하지만 팔머 대통령이 믿을 건 진실 뿐이다. 자유와 평화와 민주주의의 가치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단 진실 말이다. 결국 팔머는 승리한다. 미국은 전쟁을 피한다. 옳은 길을 간다. 올바른 지도자 덕분이었다. 하지만 흑인 대통령 데이비드 팔머는 암살당한다. 강한 미국을 외치는 애국자들의 손에 의해서였다. <24>에선 데이비드 팔머의 동생 웨인 팔머도 역시 대통령이 된다. 물론 흑인이다. 하지만 역시 웨인 팔머를 압박하는 건 백인 파워 엘리트들이다. 웨인 팔머의 부통령은 전쟁과 외교 전문가다. 오마바의 바이든 부통령처럼 말이다. 그는 웨인 팔머가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기엔 너무 나약하다고 여긴다. 웨인 팔머를 밀어내고 군통수권을 독점하려고 든다. 역시 부통령은 애국을 들먹인다. 강한 미국을 위해선 때론 자국민도 속여야 하고 명분 없는 전쟁도 감수해야 한다고 우긴다. 미국에 살고있는 아랍계를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인 팔머는 암살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끝내 사고 후유증으로 쓰러진다. 흑인은 아니지만 <웨스트 윙>의 제트 바틀렛 대통령 역시 데이비드 팔머와 같은 이유로 끝내 손에 피를 묻혀야 했다. <웨스트 윙>은 2001년 9.11 테러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뒤틀린 드라마다. 부시 행정부가 집권하면서 마치 부시 행정부의 쉐도우 내각 같은 역할을 했다. 제트 바틀렛은 부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9.11의 처참한 광경은 드라마 속 대통령의 성격도 바꿔놓았다. 바틀렛은 신념을 버리고 적국에 대한 보복 공격과 암살을 명령한다. 그는 북한 혹은 이란이나 이라크를 염두에 둔 가상 국가의 국방장관을 암살하란 명령을 내린다. 이 불법적인 무력 사용 탓에 미국은 드라마 안에서조차 세계의 미움을 산다. 바틀렛은 고뇌한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도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게 워싱턴 정치다. 바틀렛은 남은 임기 동안 내내 의회의 권력 남용 조사를 받게 된다. 미국 대중문화는 오래 전부터 흑인 대통령을 꿈꿔왔다. 그건 한때 케네디가 상징했던 진보의 꿈을 다시 꾸는 것이었다. 현실에서 실존했던 부풀었던 꿈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대중의 잠재의식에 남았고 투영됐고 상상했고 결국 오바마를 통해 현실이 됐다. 위대한 역사는 다시 위대한 역사를 만든다. 대중문화는 그 징검다리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동시에 케네디의 암살과 함께 끝났던 좌절도 함께 상상했다. 상상 속 흑인 대통령은 결코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한다. 그러나 좌절할지라도 멈추진 않는다. 미국의 정치에 거는 미국인들의 꿈은 그렇게 대중문화게 투영된다. <웨스트 윙>의 마지막 장면은 산토스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이다. 취임식이 끝난 다음 바틀렛 전임 대통령은 산토스 대통령에게 말한다. "너무 기죽지 말게. 모두가 케네디를 뛰어넘는 취임 연설을 꿈꾸지만 절망하지. 나 역시 그랬다네. 하지만 이제부터 차차 잘 해나가면 되지 않겠나." 바로 오늘, 드라마 속 대통령 바틀렛이 현실의 대통령 오바마에게 들려주는 충고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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