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대책 없는 기후 변화 대응…실패한다"

[기고] 이명박 정부, 기후 변화 대응 의지가 안 보인다

지난 8월 29일 정부는 기후변화대책기본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한국이 2012년 이후의 포스트쿄토 체계에 어떤 식으로든 참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늦었지만 정부가 이제라도 기후 변화에 따른 대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률 제정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환영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입법예고 직전에 결정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정부의 기후 변화 대책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에너지수요를 과다예측하고 이에 따라서 에너지 공급을 계속 늘려가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원자력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계획까지 포함시키고 있어서 이번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결정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수요를 줄이며 사회를 이에 맞춰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 기후 변화 대책의 기본적인 방향이라는 점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기후 변화 대책보다 앞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결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 접근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에너지 수요를 줄일 의지가 없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먼저 정해졌으니, 이제 논의하게 될 기후변화대책법은 그만큼 무력화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문득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저탄소 녹색 성장'의 실체를 이해할 듯하다. 녹색과 성장을 갖다 붙인 것도 요상하지만, 무엇보다도 '저탄소'의 함정이 섬뜩하다. '저탄소'라는 말은 기후 변화의 원인을 에너지 과소비를 일으키는 사회체계의 구조적 결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탄소'라는 조작 가능한(결국 거래 가능한) 물리적 존재를 지목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사회 체계를 변화시키는 일없이 '탄소'만 줄이면 되는 것이다. 그 기술적 대안은 위험천만하며 그 자체로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인 원자력과 '공상 과학'에 불과하다는 비아냥 거리가 되고 있는 탄소 저장 기술이다. 또한 탄소를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탄소 거래'라는 시장 메커니즘의 창출이고. 따라서 이명박의 녹색에는 '저에너지'가 아니라 '저탄소'가 짝을 이룬다.
  
  사실 이번에 입법예고된 법안은 기후 변화에 직면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부재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미약한 가운데서 나온 법안은 관료들의 빈곤한 상상력과 이명박 정권이 제시하고 있는 시장주의적 녹색 이념이 앙상하게 결합된 결과물이다. 온실가스에 대한 통계를 구축하고 기후변화대책위원회를 만들며 기후변화기금을 설치하는 것이 관료들의 빈곤한 상상력을 대표한다면, 탄소거래 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조항들은 이명박의 시장주의적 녹색이념을 대표한다.
  
  한편, 탄소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이 법안의 관련 조항은 기후 변화가 왜 발생했으며 이를 완화하고 적응해가는 과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부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 7월에 방콕에 모인 국제회의에서 참가한 많은 NGO 대표자와 연구자들은 탄소 거래라는 시장 메커니즘의 사용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으며 또한 정의롭지도 못하다고 비판했다.
  
  통상의 '기후 변화' 국제회의가 아니라,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라는 이름을 붙인 이 회의에서는 여러 발표자들은 유럽 등에서 운영한 탄소 거래 시장은 실패했으며 온실가스 감축에 별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 시장 메커니즘 자체가 기후 변화의 책임 있는 선진국들에게 지금까지의 누려온 온실가스 배출량은 권리로서 승인하는 반면에 제3세계 빈국들의 발전권을 제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꼭 국제적인 차원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국적인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감소하는 방식으로 탄소 거래 시장을 도입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또한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해서 확인된 바 없다. 기후 변화에 대한 의제 설정에 있어서 효율성 측면만이 부각될 뿐, 사회적 형평성과 사회적 정의 측면은 외면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다시피, 기후 변화에 대한 영향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더 큰 영향을 가져야 줄 것이다. 한여름의 폭서가 증가하면 이에 대비하기 힘든 저소득 노인인구의 사망률이 증가하며, 야외에서 작업해야 하는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지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에너지 소비도 적고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 역시 상대적으로 작지만 그 피해는 그들에게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변화를 완화시키고 적응하기 위한 계획에서 이러한 불평등과 부정의가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법안은 전혀 알려주는 바가 없다. 예를 들어서 이 법안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후변화기금은 '기후 정의'의 원칙, 즉 에너지소비 정도에 따른 기후 변화 책임의 정도에 따라서 재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누진적인 탄소세 도입의 문제와 연동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다. 또한 기금의 사용에 있어서도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의 원칙이 제시되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지 못하다.
  
  사실 이런 외면은 기후 변화 대책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에도 나타난다. 법안은 기후변화대책위원회를 구성하면서 그 위원으로 관련 부처 장관 이외에 민간위원은 포함시키고 있지만, 그 자격을 '기후 변화 분야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위원회는 기후변화 및 그 대책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 대표를 참여시켜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법안은 위원회 구성을 관료와 전문가로 제한하는 비민주적 거버넌스를 선택하고 있다.
  
  기후 변화 거버넌스에 참여해야 할 대표적인 이해당사자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다. 기후 변화와 그 대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고용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노조(ETUC)는 유럽위원회의 위탁을 받아서 2007년 초에 <기후변화와 고용>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공개하였다. 유럽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기후 변화 대책의 영향으로, 유럽에서 철강산업에서 5만 개의 일자리가 줄고 석유산업에서도 2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전산업에서는 고용인원의 20%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와 같은 고용에 대한 영향은 유럽에서만 나타날 일이 아니며, 당연히 한국에서도 발생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구조와 낮은 에너지 효율로 인하여 에너지 소비량이 과다하기 때문에, 정직한 정책 결정자라면 기후 변화 대책으로 불가피하게 에너지 가격 조정이나 조세 정책 등 여러 가지 수단을 가지고 산업 구조 개편을 검토하는 것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에 따라서 광범위한 산업 영역에서 고용의 변화가 유발될 것이라는 점인데, 그에 따른 피해와 비용 부담이 일방적으로 노동자와 그들의 지역 공동체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의한 일일뿐더러, 에너지 저소비의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기후 변화 대책을 추진하는데 노동자의 협조를 얻을 수 없고 오히려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기후 변화와 그 대책으로 인해서 고용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재생 에너지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은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는 고용 감소의 범위와 양상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고용 변화의 심각성이 의제화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이번 법안에서 이 문제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또한 앞으로 작성하게 될 기후변화대응종합대책에서도 누락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1월 발전노동조합은 <기후변화와 노동계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주요 환경단체의 기후변화 활동가들이 참여한 '비운의 보고서'는 노동조합이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해야 할 시급성을 지적하면서, 그 대안 중에 하나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미국과 캐나다 노조에 의해서 확립되어 여러 나라 노조와 국제기구들에 의해서 수용되고 있는 개념인데,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될 고용 변화 등에서 노동자의 참여하에 정의롭게 형평성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정부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으며, 환경단체와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주목받고 있지 못하다. 노동배제적인 정책으로 일관해온 한국 정부의 일관된 태도를 비춰본다면 정부의 무지는 어찌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변화를 촉구해야 할 환경단체와 노동조합의 외면이 오히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기후 변화 대책은 효율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정의로워야 한다는 원칙을 환경단체가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외면이 안타깝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쏟아지는 반동적인 정책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당면 과제를 처리하기에 바쁘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는 시간이 우리의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 변화 대책에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 지금부터 준비하고 개입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취약한 노동자 집단을 보호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잘못할 경우 어쩌면 기후 변화 대책에 저항하는 '반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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