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민심 모르고 설쳐대면…"

[총선현장] 착잡한 태안 민심 "우리 편이 한명쯤은…"

2일 오후 충남 태안 만리포 해수욕장. 바람은 거셌지만 맑은 날씨에 백사장의 모래는 밝게 빛나고 있었고 나들이 나온 중년 남녀 십여 명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있는 모습이 평안해 보였다.

마을 입구 사방팔방에 걸려 펄럭이는 "주민들은 단결하자", "자원봉사자 여러분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삼성은 행복한 눈물!! 태안군민은 검은 피눈물!!" 등의 현수막 문구와 을씨년스러운 주변 상가 풍경이 아니었다면, 유조선 원유 유출 사고 지역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깨끗해 보이는 모래사장도 무언가 수상했다. 중장비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이는 고랑이 밭처름 줄줄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주변 바닷가를 훑어보니 포구 쪽 백사장에서는 굴삭기와 트랙터가 모래를 파헤치고, 덤프트럭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 쪽으로 향했다.

"천 번은 파 엎어야 할끼유"

'공사장'에서는 굴삭기가 모래를 파 뒤집으면 하얀색 방제복을 입은 주민들이 그 옆에서 뜰채로 쉼 없이 회색 거품을 떠내 양동이에 담고 있었다.(사진) "이게 뭐냐?"고 묻자 젊은 주민 한 사람이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을 했다.

"이게 다 기름때 아닙니까. 이렇게 뜰채로 떠서 담아 놓으면 하루면 거품기가 빠지면서 양동이 반만큼 남습니다. 이거 보세요." 회색거품 양동이 맨 끝 쪽의 그가 가리킨 '하루 지난' 양동이에는 진흙덩이처럼 거무스름한 기름때가 채워져 있었다.
▲ 중장비에 의해 백사장에 새겨진 고랑(왼쪽), 바다에서 떠낸 기름 부유물(중간), 방조제 위에 쌓여 있는 방제 폐기물들(오른쪽) ⓒ프레시안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밀물 때 바닷물은 백사장에 기름 찌꺼기를 한 번 토해내고 가는데, 모래 사이로 스며든 기름 찌꺼기는 방제포로는 제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모래를 한 번 헤집은 뒤 그 때 떠오르는 기름 찌꺼기를 일일이 뜰채로 떠내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때 한 60대 아주머니가 뜰채에 모래를 한 줌 퍼와서 기자의 코 밑에 들이밀었다.

"냄새 한 번 맡아봐유. 비린내 하나도 안 나쥬?" 아주머니 말대로 비릿한 바다 내음 대신 주유소에서 맡던 석유 냄새가 코끝을 타고 올라왔다.

"천 번은 파 엎어야 할끼유"라는 아주머니의 말소리에는 분노와 체념이 뒤엉켜 있었다. 처음에는 "천 벌을 받아야 할끼유"라고 들었다가 아주머니가 "천 번은…"을 수차례 반복하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들었다.

대자연 모래와 갯벌은 제 나름대로 수천 년에 걸쳐 정화작업을 하는 것일테지만, 고작 수십 년을 사는 인간들은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모래를 뒤엎어 기름을 닦아 낼 수밖에 없다.

"머리도 안 해요"

원유유출 사고가 난 지 어느 덧 넉 달이 다 되가고 있다. 연말연초만 해도 100만 명이 자원봉사를 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뜨거웠으나, 이제 자원봉사의 발걸음도 뜸하다.

"기자고 공무원이고 백날 오면 뭣허유. 바뀌는 게 아무 것도 없는데. 제발 올라가면 보고 좀 잘 해주슈. 그나마 이제 오지도 않슈."
▲ 만리포에서 방제작업 중인 중장비들. ⓒ프레시안

'보상은 잘 받으셨냐?'고 물었다.

"보상? 내 12월달에 생계지원비 126만 원 받은 거 외에는 땡전 한 푼 구경도 못 했슈. 전기세고 뭐고 지금 전부 빚으로 살고 있슈. 그리고 내가 여기서 파라솔 치고 장사하면 한 철에는 칠팔백은 버는데, 내 주소가 딸네로 돼 있다고 해서 보상 한 푼 못 받는다고 하데유."

피해는 직접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태안 읍내의 한 미용실 주인은 "말해 뭣 합니까. 지금까지는 있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 계속 이런 식이면 정말 못 삽니다. 단골들 파마 풀린 거 다 아는데, 파마를 안 합니다. 수중에 돈이 있어야죠"라며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 보상은 누가 해줍니까"라고 한숨을 지었다. 사고 이후 어업과 관광업이 주를 이루던 태안 지역에 돈 줄이 끊겼고, 그 여파는 전 군민이 느끼고 있었다.

"법과 원칙…좋지만"

사고 이후 태안 주민들은 대선과 총선이라는 두 번의 큰 정치 이벤트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느끼는 '국가'와 '정치'는 무엇일까.

홀로 남면의 한 상점을 지키고 있던 70대 노인은 "내 지금까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았고, 내 평생 억울하다는 생각 한 번 못하고 살았는데 이처럼 억울하고 원통할 데가 없데. 내가 도대체 뭘 잘 못 했나. 삼성 놈들 와서 무릎 꿇고 엎드려 석고대죄를 해도 분이 풀릴까 말까 한데, 잘 못 없다고 발 뺌하다 이제 와서 돈 내놓고 입 닦으려 하데. 내 절대 그 돈 십 원 한 장 받으면 안 된다고 그랬어."
▲ 주민들 분노의 줄기는 "무책임한 삼성과 방관하는 정부"에 모아져 있다. ⓒ프레시안

그의 분은 계속 이어졌다. "이럴 때 잘잘못을 가려 삼성놈들 혼내주고 어려운 백성들 보살피라고 있는 게 나라고 나랏님이 할 일 아닌가. 대선 때는 와서 기름 닦고 사진 찍고 별 짓을 다하더니, 그노무 새끼들이 한 게 뭐가 있나. 특별법인가 나발인가도 여기 주민들 손가락 자르고 몸에 불 붙여 아우성치니까 만든 거 아녀. 그 놈들 우리가 안중에라도 있던가."

분노와 불안이 뒤섞였다. "나같은 사람은 보상이라도 받을란가 몰라. 나야 서울서 돈 버는 아들 있어서 괜찮고, 조금 있으면 저세상 갈 거기 때문에 괜찮은데 마을이 살아야 내가 살지. 우리 마을 사람들 무허가 미인가라고 딱지 붙어서 태반이 보상 못 받는다고 하데. 이게 법과 원칙이여. 법이라는게 사람 먹고 살게 해야 할꺼 아녀."

소주 두 병을 계산하던 한 선주는 "어르신, 말해 뭣합니까. 사고 난 다음에 조업 중단하고 매일 기름 닦고 있는데, 방제작업비 일당 7만 원 준다고 해놓고서 한 푼도 안 줬습니다. 손가락 빨고 삽니다. 그러고서 태안에 관광 가자고 그러대요? 배가 떠야 고기를 잡아 팔죠. 횟집 수조 텅텅 빈지가 언젠데"라고 거들었다.

이날 태안지역 선주연합회 소속 선주 800여 명은 어업허가 및 선적증서 반납을 결의했다. 정부에서 피해기간 중 조업을 하면 보상액에서 조업 이득액이 빠질 수 있고, 수산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4개월 째 조업을 중단시킨 상태다. 하지만 선주들은 "피해 보상에서 조업기간 수익을 뺄 것인지 정부가 국제보험사와 협의도 하지 않았고, 수산물 안전성 조사는 계속 지연시킨 채 시간만 흐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안 사태 남기고 사라진 해수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국토해양부로 재편된 해양수산부의 '실종'도 주민들의 불만만 키웠다. 환경운동연합 서해안기름유출시민대책단 김보삼 국장은 "피해대책 주무부처가 해수부였는데 해수부가 폐지되면서 주민들과의 창구가 사라졌다"며 "국토해양부로 재편된 이후에도 공무원들 자리 바뀌면서 혼란만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신두리의 한 어민은 "이명박이는 도대체 태안이 안중에는 있는거여 없는거여"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 다시 총선이 찾아왔다. 이 지역은 통합민주당 문석호 후보가 3선을 노리고 있다. 문 후보는 사고 발생 이후 국회 서해안 유류오염사고대책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에게 충남 지역의 '선진당 바람'을 타고 변웅전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전략공천 된 김병묵 전 경희대 총장이 나섰다. 평화통일가정당 옹대수 후보도 명함을 내밀고 있다.
▲ '총궐기', '감사', '삼성은 물러가라' 뒤엉킨 현수막의 문구처럼 주민들의 감정도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프레시안

후보들의 이번 사태에 대한 공약은 비슷하다. 피해주민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도록 이끌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겠다는 것. 이들은 지역에서 뛰고 있는 만큼 '미등록 피해어민 지원책', '영세어민·자영업자 간접피해 보상', '보상금 선지급', '가해자 무한책임' 등 민심을 읽어낸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마음은 착잡해 보였다. 만리포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한두 번 당합니까. 다들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 뛰겠다고 그러는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백날 들락날락해봐야 이제는 못 믿습니다"라며 "이번 사고가 자연재해입니까. 엄연한 인재인데도 나 몰라라 하는 삼성 같은 놈들이 있고, 정부는 그 놈들한테 면죄부만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지원 보상책 한 번 속시원히 말 못하는 놈들인데"라고 성을 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래도 지켜봐야죠. 힘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있겠죠"라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복잡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피해 지역별로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고, 보상 범위, 보상 대상, 보상 액수 등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일어날 때 이를 합리적이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조정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가장 약한 부분이 '조정 능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목까지 차오른 분노

자원봉사자 숫자보다 "자원봉사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현수막 숫자가 더 많이 남게 된 태안.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동안에도 주민들의 방제작업은 분주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관광지의 특성상 봄꽃이 모두 지기 전에 바닷가에서 기름기를 말끔히 지워내고 싱싱한 횟감을 건져내지 못 하면 "올 여름 진짜 끝장 난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 속에 끓고 있는 분노는 계속 누적돼 목전까지 치민 듯 보였다. 남면에서 만난 선주는 이렇게 말했다.

"충청도 사람들 느리다고 하는데, 잘 참아서 그런겁니다. 부안 사태요? 안면도 못 봤습니까? 지역 이기주의라고 하는데, 이게 생존권이 걸린 일이면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던 사람들이 진짜 화나면 더 무섭습니다. 부안 군수 돌에 쳐 맞는 거 못 봤습니까? 일단 보상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아마 이런 식이면 서산. 태안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정치인들 민심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대면 그 대가가 뭔지 보게 될 겁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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