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니?

[기고] 제자 박용진 전 민노당 대변인에게 띄우는 편지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뉘어 각기 제 갈길을 가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민노당의 혁신재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20일 <프레시안>에 장문의 시를 보내왔다.

진보신당 후보로 이번 총선에서 강북갑에 출마선언을 한 박용진 전 민노당 대변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박용진 전 대변인과 이수호 전 위원장은 사제지간이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한 때 "동지"였던 두 사람이 이제는 각기 반대편에서 진보정당 운동을 끌어가고 있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이 공개 편지에서 현재 두 사람이 처한 현실을 "청천벽력"이라고 했다. "침몰하는 배를 그냥 구경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 무조건 배에 뛰어오르"고 보니 "너는 이미 배를 내린 뒤구나"라고 적었다.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과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총선 이후 어떤 항로를 만나게 될까? 시 형식으로 보내온 이 전 위원장의 공개편지를 그대로 싣는다. <편집자>

오늘은 3월 16일
문래동 당사 창에 와서 부딪히는
오후의 봄볕이 참 따사롭구나
오늘이 일요일인데도
아침부터 회의다 인터뷰다 뭐다하며 시달리다가
오후에는 민심대장정 출정식 겸해서
구로시장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아직도 그런 일들이 몸에 맞지 않아서인지
피곤하기만하다
봄볕에 몸을 맡기고 잠시 눈을 감으니
불현듯 네 모습이 떠오르는구나
참 잘생긴 용진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니?
지금 이 시간 열리고 있는
진보신당 창당대회에 참가하고 있니?
아마 너의 그 멋진 말솜씨로
사회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용진아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니?
네가 떠난 당사에는 내가 들어와 이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너는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났으니
왜 우리가 이렇게 다른 곳에 있어야 되는지를 알 수가 없구나
오늘 거기 진보신당 창당 선언문에서 밝힌
"불안과 절망의 시대가 새로운 정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소통과 성찰, 혁신의 실패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라는 반성이
어찌 어느 한쪽의 일이며
"이명박정부의 폭주와 신자유주의 야당에 맞서
진보진영의 폭넓은 연대전선으로
18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가
어찌 어느 일방의 일이냐를 묻고 싶구나
이런 종류의 내용이
민주노동당의 여러 행사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으니
왜 우리는 같은 말을 다른 곳에서 따로 해야 되는지
정말 기가 막힐 뿐이다

용진아
너를 생각하면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1988년 네가 신일고 2학년일 때
나는 너의 담임이었고
그리고 그 다음 해 내가 전교조 결성으로 해직되었으니
결국 나의 교단생활에서 너는
내가 마지막 담임한 학생이었다
생각해보면 너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특별했었지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특히 학급이나 학교 전체 일에 관심이 많아
학생회 간부 일을 열심히 했지
자신보다는 남과 전체를 위해 애쓰는 너를 보며
앞으로 정치를 하면 참 좋은 일꾼이 되겠구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곤 했단다
그 다음해 너는 고3이어서
입시 준비하느라 다른 일을 곁눈질하기 어려운 때였는데
전교조 문제가 터지고 내가 구속되면서
파면 위기에 몰리자
너는 앞장서서 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는 얘기를 뒤에 전해 듣고
얼마나 미덥고 고마웠든지
내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너는 진로를 걱정하며 대학의 과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둘이 같이 의논해서 사회학과를 택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구나

너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몸을 던지고
1991년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싸우다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네가
나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었지
폭력범으로 몰린 나를 위해
내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얼마나 폭력을 증오했는가를
너는 나도 기억 못하는 사례를 들어가며
증언을 했었지
사실 증언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그때의 그 엄혹한 상황에서
반정부 반체제 인사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는 그 자체가
너무도 힘든 일이었지
그런데도 넌 날 위해 당당하게 증인으로 나왔었다
그것도 학생의 몸으로
용진아
네가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노태우정권 사법부는
아이들의 어떤 체벌도 폭력이라고 거부했던 나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등을 적용하여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으니
그때의 분위기를 알 것 같구나
그렇게 해서 나는 진주교도소로 징역을 살러 떠나고
너는 학생운동을 시작해 총학생회장까지 되었으니
너의 어려움 또한 얼마나 컸겠니
수배는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은 또 감옥행이었으니
너와 나의 운명은 나이와 분야의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 사회를 민주화시켜 바로 세워보려는 일념은 같았구나
그렇게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
비록 사제지간으로 나이 차이도 많았지만
같은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동지가 되었지
그래 너와 내가 그렇게 동지가 되면서
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은근히 널 자랑하고 다녔고
너도 나를 그렇게 봐주는 것 같아
한없이 기뻤단다
그 뒤 나는 나대로 전교조를 중심으로 교육운동을 계속했고
너는 너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전국연합 일꾼으로
본격적인 운동가로 발전했지
너의 그 넉넉함과 뛰어난 역량은
언제나 네가 있는 자리를 빛나게 했고
너를 아끼며 바라보는 우리의 희망이었지
너 같은 후배, 아니 젊은 동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가슴 벅찬 일이었던지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멋진 친구를 잘 키워 지도자로 자라게 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생각했단다

용진아
그런 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너는 참 멋지게 자라주었다
궂은 일 마다 않고 험한 자리만 찾아가는 너였지만
언제나 운동의 원칙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넉넉하게 견지했었지
유일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으로 자리를 옮겨
진보정치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주 당연하고 올바른 선택이었다
제대로 된 젊은 정치지도자의 탄생을 바라보는
나의 기쁨 또한 얼마나 컸겠니
너는 당 활동을 하면서도 가장 모범이었다
네가 태어나 살아왔던 너의 동네에 뿌리를 내리고
조급하지 않고 꾸준히 밭을 일구어가는 너의 모습은
국민을 주인으로 알고 그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세우는
풀뿌리민주주의의 모범을 보는 듯했지
그러면서도 당내에서는
젊은 나이에 대변인까지 맡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니
얼마나 멋진 일이냐
그러면서도 너는 몸을 아끼지 않고
늘 투쟁의 앞장에 섰다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또 감옥을 갔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답답했겠니
그런데도 너는 그 어려움을 넉넉하게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너의 실력이 아니겠니
네가 감옥에 있을 때 너의 지역위원회가 오히려
너를 중심으로 더 단결하며 당원을 늘렸던 일은
너의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던 일이었지

그런데 용진아
너를 비롯한 우리 당원들의 뜨거운 노력으로
지난 총선에서 무려 10석이나 국회의원을 내면서
당은 오히려 속으로 멍들고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파 간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해지고
성과를 당원이나 국민에게 돌리기는커녕
자신의 인기와 명망성을 높이기에 급급했으니
어찌 당이 조용할 리 있겠니
지난 대선 기간에 보여준
당의 여러 정파의 대립이나
지도급 인사들의 행태는
진정한 진보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
그 기간 동안 나는 한 걸음 떨어져서
노무현 세력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독주가 요구하는
보수 대 진보의 정치 구도를 만들기 위해
그래서 우리 민주노동당이 주동이 되는 진보진영이
진짜 야당이 되는 정치현실을 실현시키기 위해
진보대연합 운동을 펼친 건
너도 잘 아는 일이 아니니
우리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처참하게 쪼개지지 않고
더 큰 하나로 뭉쳐만 있었더라면
지금 조성되고 있는 정치정세에 비추어보면
이명박 폭주정권의 확실한 견제세력으로
국민들은 우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너의 당선을 포함해서
20석 이상은 확실히 확보하는 건데
그 모두가 물거품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니
모두가 우리의 부족이요 못난 탓인 것을

그러나 용진아
너는 꼭 성공해야한다
아니 꼭 성공할 수 있다
오늘도 너는 성공하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너는
우리가 우리의 절차에 따라 뽑은 대통령 후보를
최선을 다해 당선시키기 위해
후보 대변인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왠지 흔쾌하지 않았다
언제나 줄서기를 강요하는 그놈의 정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괴로워해야 했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니
선거가 끝나자 말자 너는 바로 너의 지역구로 달려가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을 만나기 시작했지
그렇게 뛰면서 나에게
후원회의 책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에
기쁜 마음으로 수락한 것은
이제 지역으로 돌아가 오로지 주민들을 위한 진정한 정치를 하는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 아니겠니

용진아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이냐
대선 패배의 올바른 평가도 나오기 전
어처구니없는 종북주의 논란이 벌어지더니
결국은 탈당사태로까지 치달아
결국 당이 두 개로 쪼개지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나
침몰하는 배를 그냥 구경하고만 있을 수가 없어
무조건 배에 뛰어오른 것은 그 배의 주인이 바로
나였다는 깨달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만든 배인데
그냥 떠내려가게 내버려둘 수 있겠니
그러면서 정신을 좀 차리고 살펴보니
너는 이미 배를 내린 뒤구나
그러나 너는 아주 어려운 순간에도 내게 연락을 해
너의 결심을 얘기했고
나는 안타까우면서도 그냥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미웠지만 어찌 하겠니
너는 이미 나보다 더 커버린 것을
결국 지금까지 언제나 함께 있던 너와 내가
이렇게 갈라져 따로 있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일이냐
탈당 이후에 너는 새로운 당에서
다시 한 번 총선 후보 선출대회를 하면서
연락은 드려야 될 것 같다며 전화를 걸었을 때
간다고도 못간다고도 못하며 주저하는 나에게
선생님 오시지 않아도 돼요
라고 말하는 너의 그 마음이
나보다도 얼마나 더 아플까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 와서
그래 알았다 행사 잘 치르라며 얼버무리며
얼른 전화를 끊어야 했던 그 일을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니

용진아
우리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자
너와 내가 당분간 좀 떨어져 있지만
결국 그게 어디겠니
미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전선에
비정규직을 없애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전선에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전선에
노동자 농민 등 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전선에
생태 환경 여성 장애인 소수자 등을 보호하고 함께하는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확보하는 전선에
우리가 같이 서 있는 게 아니겠니
그래서 한나라 이명박의 폭주를 막고
민생을 돌보는 일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니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니
그러니 우리 서로 멀리 있다 생각 말고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자꾸나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처지에 있든 무얼 하든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게 너의 곁에 너와 함께 있을 테니
너도 그렇게 하렴

용진아
오늘 내 마음이 너무 아파
횡설수설 말이 길어졌구나
용서해라
그리고 총선 끝나고 좋은 성과 가지고
늘 같이 찾아오는 너희 동기 놈들하고
기분 좋게 한 잔 하자꾸나
애기 엄마도 몹시 힘들겠구나
지금도 잘 하지만 더 잘 해라
어느 사이에 밤이 되었네
이 밤이 지나면 또 반드시 새날은 오리니
우리 그 희망 버리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가자

2008년 3월 16일 늦은 밤
언제나 네 앞에서 부끄러운 물범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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