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입시경쟁' 그 자체다"

[반론] 교육 망치는 입시경쟁, 학생들의 각성이 절실하다

지난 14일, <프레시안>은 "교육정책 변경, 왜 학생들 목소리는 듣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김장운 학생이 쓴 글이다.
  
  이 글에 대해 반론이 들어왔다. 역시 곧 고3이 되는 학생의 글이다. 반론을 쓴 장은진 학생은 앞서의 글이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정책의 변경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이에 앞서 현재의 입시 경쟁이 낳는 폐해에 대한 학생들의 각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각성에서 출발하는 교육정책의 새로운 방향은 현재의 입시 경쟁 구도를 내버려 둔 채,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교육을 불가능하게 하는 입시 경쟁 자체를 없애는 쪽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언론은 청소년들을 교육정책의 적용대상으로만 취급하곤 했다. 그래서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의 즉자적인 반응을 상투적인 방식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두 학생의 토론은 다르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프레시안>은 이런 토론이 이명박 당선인의 교육정책에 대한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의견이 두루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보다 많은 학생들이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진지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반론을 쓴 장은진 학생의 글 전문이다. 이 글에 대한 의견은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의 이메일(mendrami@pressian.com)로 보내면 된다. <편집자>
  
  "교육정책 변경, 왜 학생들 목소리는 듣지 않나"(예비 고3학생이 본 이명박 교육정책)"라는 독자 기고를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학생입니다. 같은 예비 고3학생으로서 앞서의 기고 내용에 일부는 동의하지만, 일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먼저 기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학생이 교육정책을 개혁하는 데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학생을 배제시킨다는 것은, 학생들을 교육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사실도 타당하고요.
  
  하지만, 문제는 대한민국 학생들 스스로가 입시제도에 대한 인식수준이 매우 천박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학생이지만,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시각은 굉장히 이중적입니다.
  
  스스로 '학벌사회의 피해자'이고, '입시제도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기고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는 가운데 아이들은 사교육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또 어떤 교육제도가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어하지요.
  
  그런데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이 피해자라고 여기면서 정작 비난하는 건, 끊임없이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서열화하려는 입시제도 자체가 아닙니다.
  
  학생들을 헷갈리게 하는 정부의 입시정책 바꾸기 입니다. 서열화하려면 일관성 있게 제대로 하지 왜 이렇게 오락가락 하느냐, 이겁니다.
  
  요컨대 무시무시한 입시경쟁을 지속하게끔 하는 제도 때문에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락가락하는 입시제도 때문에 자신이 대학 가서 성공하는 데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앞서의 기고에서도 이런 걱정이 살짝 엿보입니다.
  
  하지만, 입시에 대한 비판의 본질은 그 입시 제도가 여러 번 바뀌어서 자신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은 '입시'라는 제도 속에서, 참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기고자가 말하는 것처럼 교육정책에 학생을 주체로 참여시킨다고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교육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의 수준이 천박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학생들은 "학교가 날 이렇게 만들었다"라며 불평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선생님이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를 갖고 교사에 대해 판단합니다. 명백한 모순인 셈입니다.
  
  최근 논란이 된 수능 등급제에 대한 학생들의 비난만 봐도 그렇습니다.
  
  등급제를 폐지시키자는 소리는 보수 진영에서도 나왔습니다만, 정작 가장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학생들 내부에서였습니다.
  
  저 역시 친구들이 끊임없이 등급제를 비판하면서 차라리 예전의 점수제가 좋다고 말하는 것을 아주 자주 들었습니다.
  
  등급제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1989년생 학생들이 나서서 등급제 반대시위를 연 적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당시 집회에 대해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두십니다. 하지만 저는 '굉장히 부정적인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집회를 열었던 의도가 '왜 괜히 등급제를 도입해서 줄을 잘 세우고 있던 기존 입시제도에 혼란을 주느냐. 왜 내가 입시제도에 적응하는 데 헷갈리게 하느냐'라는 식의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입시제도 자체의 폐해가 아니라, 입시제도 속에서 뒤쳐질까하는 불안감에서 나온 비판인 셈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잘못된 것은 단지 기고자의 주장처럼 학생들을 정책 수립 과정에서 배제하고, 입시제도를 또 한 번 바꿔 입시제도에 적응하는 데, 즉 내가 대학가는 데 헷갈리게 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무차별한 공격자'가 되라고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완전히 시장화돼 학생들을 줄세우기하는 입시제도가 더욱 공고히 되고, '교육'은 더이상 '교육'이 아닌 산업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도 입시제도의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폭력적이고 무서운 입시제도 속에서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사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성적도 어느 정도 잘 나오는 편이고 점수로 모든 걸 판단하는 입시제도 속에서는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좋은 점수를 받아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시기를 행복하게 보내면서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쟁과 빠름의 가치가 아닌, 양보와 타협의 미덕을 배우고 싶었고 그러한 미덕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고 연대해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입시제도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의 고등학생으로서 양보와 타협이라는 건 사치에 불과합니다.
  
  저 나름대로는 스스로의 시간을 만들어 폭력적인 입시제도에 타협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굉장히 힘이 듭니다.
  
  이제 고3이 되어야 할텐데,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끊임없이 회의하고 돌아봅니다. 내가 과연 그렇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언지, 이 폭력적인 입시제도에 타협하는 것이 맞는 건지, 그러면서 선생님들과의 충돌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런 입시 경쟁의 허구성을 깨닫고 있다는 점에서는 제가 비록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함정에 빠져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친구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단지 대학 입시를 잘 치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하고, 그런 시각에서 교육정책을 바라보는 친구들이 진정한 행복과 연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더불어 사는 사회의 아름다움을 함께 배워갈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물론 이런 답답함이 드는 게 학생들의 잘못 때문은 아니라고 봅니다.
  
  교육을 교육이 아닌 산업으로 보는 가치관, 시장 논리를 무턱대고 도입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거대한 사회 흐름 속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다른 가치를 접하고 향유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저 나름대로의 시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이것은 제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의 혜택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역시, 입시 자체의 허구적인 가치가 아니라, 오락가락하는 입시정책 '바꾸기'만을 비난하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 교육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으려면 학생들의 수준 역시 보다 높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진보 진영이 지적해야 할 것 역시 단순히 입시정책이 또 한 번 바뀜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고자의 의도가 현재 교육정책이 적용되는 대상인 고3 학생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입시제도의 맹점에 빠져있는 한국 학생의 한계가 드러난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도입하려는 입시 제도는 우리 학생들에게 완전한 경쟁자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폭력적이고 무서운 입시제도 속에서 저는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나마, 저는 초ㆍ중학생 시절에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놀고 싶을때 영화도 볼 시간이라도 있었습니다다. 그러나 저보다 어린 친구들은 '완전한 자율'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도입됐을 때, 시장화된 교육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해내느라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고교 평준화가 폐지되면 초ㆍ중학교 때부터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고'라는 가치를 배워야 하고 경쟁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단순히 점수라는 척도에 어긋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해야 할 것입니다. 곧 도래할 이런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주시길 바랍니다.
  
  그간의 교육정책이 '모두 줄세우기' 식의 서열화된 입시제도를 무너뜨리는 데 실패했습니다만, 조금씩 더디게라도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교육정책대로라면, 고등학생이 아닌 어린 친구들마저 모두 이처럼 피말리는 경쟁에 참여해야하고, 입시 제도를 무너뜨릴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차단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프레시안>이 지금보다 더 예리한 시각으로 교육문제에 대한 접근을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