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제주교구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겨달라"

신자 및 시민 1000여 명 참석한 가운데 시국미사 거행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남겨달라."

21일 저녁 천주교 제주교구청이 있는 제주시 중앙성당에 모인 이들의 간절한 염원이었다.

이날 성당에 모인 이들은 천주교 신자들만이 아니었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시민 1000여 명이 모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조만간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성당에서는 노 대통령에게 전하는 공개서한이 발표됐다.

이날 성당에서 치러진 행사는 천주교 제주교구의 시국 미사다. 제주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래서 이날 미사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 '평화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다음은 이날 미사를 참관한 <제주의 소리> 기자들의 기사 전문이다. <편집자>

평화의 울림이 한 시간 동안 내내 장내를 채웠다.

천주교 제주교구(교구장 강우일)가 21일 오후 7시 30분부터 제주교구청에서 마련한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는 2차 평화기도회에 참석한 교인을 비롯한 이들은 진정한 평화의 길이 오기를 갈망했다.

지난 18일 1차 평화기도회에 이어 두번째 열린 이날 평화기도회에는 도내 24개 본당 사제단 40여 명을 비롯해 천주교 신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 등이 찾아 1000여 명이 넘는 자리를 빼곡이 채웠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해군기지 유치 결정은 여론조사 아닌 주민투표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직접 낭독한 강우일 주교는 이날 해군기지가 평화에 반(反)하는 불합리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 방문일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이날 강 주교는 "평화의 섬 제주에 더 이상 군사기지를 증강하는 계획을 수정해 달라"며 "해군기지 유치결정은 도민 전체의 충분한 홍보와 식별 과정을 거친후 민주적인 주민투표 절차를 거쳐 달라"고 대통령에 공식 요구했다.

이 같은 강우일 주교의 대통령에 대한 간곡한 호소문은 수 일 내에 방문 예정인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으로, 혼란으로 치닫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논란에 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 주교는 이날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통해 "최근 제주도 당국은 여론조사라는 방법을 통해 해군기지 유치라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며 "제주도 행정의 책임을 진 도지사가 가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고, 이에 대한 참고 자료로 여론조사를 활용한 것이, 불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제주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이러한 방법이 객관성은 물론, 공정성과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비민주적인 절차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결정은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강하게 외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어 "제주도민 전체와 더 나아가서는 한국 전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결정을 1500명의 여론 조사를 토대로 확정 짓는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강 주교는 "대통령께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던 자격과 근거는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이 땅에 일어났던 미증유의 4.3 사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는 강 주교는 "제주가 참된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선언과 구호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또 "제주도는 동북아의 긴장과 세계의 긴장을 완화하는 평화의 섬이 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며 "제주 땅은 4.3의 희생을 거름으로 삼아서 참된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하며 제주를 군사기지가 아니라 평화의 기지로 키워나갈 때, 우리나라의 참된 평화와 안보를 더욱 탄탄히 굳히는 새로운 전망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군비경쟁은 인류에게 있어서 극심한 역병"이라는 강 주교는 "가난한 이들이 대다수인 오늘의 세상인데도, 각국 정부는 국가 예산의 가장 높은 비율을 국방비에 할애하며 천문학적인 경비를 지출하고 있다"며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자국민은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가장 부유한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돈을 주고 무기를 사들이며,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배불리게 하고 있다"고 군비증강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강 주교는 "새로운 세기는 평화의 세기, 편협한 민족주의의 굴레를 벗고, 여러 민족 간의 형제애를 새롭게 의식하며 함께 성장하고 함께 발전하는 세기로 나아가고 있다"며 "대통령께서는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이 시대의 징표를 지혜로이 식별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세계평화를 갈망하고 제주도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탁을 드린다"는 강 주교는 "'평화의 섬' 제주에 더 이상 군사기지를 증강하는 계획은 수정해 줄 것"과 "해군기지 유치 결정은 제주도민 전체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식별의 과정을 거친 후 민주적인 주민투표 절차를 거치도록 지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3만 명이 죽은 제주 4·3, 반 세기 지나도 정부는 여전히 제주도민을 무시한다"

이에 앞서 김창훈 총대리신부는 강론을 통해 정부와 국방부, 제주도당국과 제주도의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분발과 철회를 촉구했다.

먼저 김 신부는 "해군기지 유치결정을 공정성이 없는 여론조사로 서둘러 결정하면서 도민들의 불화를 우리가 알고 있다"며 "도민들이 속으로 불평만 할 뿐 손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 되고 참평화를 이루라고 명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교회로서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고 평화기도회를 연 이유를 말했다.

이어 "주교는 지난 5월 5일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며'라는 메시지를 발표했고, 사제단은 단식기도회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유치 반대를 요청해 왔다"고 그 간의 흐름을 전했다.
▲ 미사를 집전하는 강우일 주교. 강 주교는 이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하는 공개서한을 낭독했다. ⓒ<제주의 소리>

또 "고향 제주는 역사적으로 고려 때부터 왕실과 권력다툼으로 수많은 선비들이 귀향 와서 한을 남긴 유배의 땅"이라며 "제주민들이 그 후손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3만여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며 "지난 한미FTA 때에도 제주도민의 거센 반대를 무시하고 제주에 큰 경제적 손실을 입히게 해 깊은 시름에 빠지게 했다"는 절절한 목소리도 담았다.

이어 "공정성이 없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방부가 밀어부치기 식으로 결정하게 했다"며 "국방부와 정부는 제주도를 약자로 보고 마음껏 유린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국토방위를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하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점점 큰 돌을 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돌싸움에 비유했다.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평화 지켜야"

이어 "전쟁의 재앙을 거듭당해 왔다. 문화적으로 발전한 지금에와서는 대화와 협력과 신뢰심을 증진시켜야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며 "제주에 해군기지와 공군기지 설치를 반대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날 시국미사에는 신자 및 일반시민 1000여 명이 참석해 '평화의 제주'를 염원했다.ⓒ<제주의 소리>

또 김태환 지사를 직접 겨냥해 "제주도 당국자는 그들의 강요에 굴복하고 말았다"며 "김 지사께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주해군기지 유치결정을 용기있게 철회하도록 촉구한다. 그래야 도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도의회에 대해서는 "도민의 대표로 뽑은 도의회도 군당국과 도당국에 눈치 보이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모든 의견을 일치하고 의연히 나서서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군기지 유치여부를 다시 결정하도록 도당국에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에 대해서는 "무력한 제주도 당국자로 부터 요식행위로 얻어낸 해군기지 유치결정을 기뻐하면서 도민에게 감사광고를 낸 군 당국은 과감하게 그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결단을 촉구했다. 김 신부는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대통령께서는 이러한 비민주적 태도를 질책하고 시정하도록 명령해야 할 것"이라며 "그래야 민주국가의 책임있는 통치를 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끝으로 "우리는 이러한 요구가 관철할 때까지 더 적극적으로 투쟁하겠다"고 다짐하고는 "주님의 참된평화를 고향제주에 내려주실 것을 간절하게 기원한다"고 밝혔다.
제주교구 신부 20여 명, 해군기지 유치결정 철회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21일 미사를 마친 뒤, 천주교제주교구사제단 소속 신부 20여 명은 제주시 중앙성당에서 제주 해군기지 유치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 무기한 단식 기도를 시작한 신부들.ⓒ<제주의 소리>

한편 이날 단식기도 현장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문규현 신부도 함께 했다. "평화의 섬 제주에 군사기지를 반대한다는 뜻을 받들기 위해 내려오게 됐다"고 밝힌 문 신부는 단식 중인 후배 신부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단식 중인 신부들을 향해 문 신부는 "이게 사제의 참 모습이자 본연의 삶의 모습이다"라며 "예수님께선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라 하셨다. 바로 이 사제들이 그 동지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 신부는 "제주 땅에 해군기지며 공군기지며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이 아름다운 땅에 군사기지가 말이 되는가?"라며 "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왜 해군기지가 제주에 필요한가? 무력증강은 또 다른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어리석은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문 신부는 "특히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국방부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제주-광양-평택-인천을 잇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선상에서 추진되는 것"이라며 "미국이 가장 견제하는 국가가 중국인데, 왜 우리가 중국을 겨냥한 방어선인 전진기지를 제주에 지어야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문 신부는 "사제의 소명이 바로 '사랑과 평화'를 지키는 일이 아니냐"라며 "민족에 대한, 나라에 대한, 제주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지키는 일에 우리 사제들이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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