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건설, 국방부가 시키면 '그대로 하라'?

정부 '일방통보'식 통첩에 제주도 '주도권' 상실

김장수 국방장관이 13일 제주도를 방문하는 등 국방부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의 반발 역시 거세지고 있다. 특히 13일 김 장관의 방문 때는 반대 측 주민들이 김 장관의 방문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방부는 서귀포시 남원읍 일대에 12만 평 규모의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어 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제주 지역 밖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은 <제주의 소리>의 양해를 얻어 김 장관의 제주 방문 전후 사정에 관한 기사를 전재한다. <편집자>

'참여정부' 국방부 장관이 결국 제주해군기지를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사실상 최후 통첩을 했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13일 제주를 찾아 "도민의 지원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했지만 내용은 "국방장관으로서 해군기지 취소는 있을 수 없다. 어디든지 해야 한다"며 사실상 강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이날 정부와 국방부로부터 '국가 정책사업'이라는 사실이 보다 명확히 드러나면서 도민 여론과 관계없이 추진하겠다는 대목이 곳곳에서 확인돼 그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보에도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나아가 제주도정 역시 건설예정지로서의 '지방정부 주도권'을 거의 상실한 채 중앙정부와 국방부에게 마냥 끌려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기에 반대시위에 따른 '폭력 연행'으로 사태가 불거지면서 '공식 책임론'도 거세질 전망이다.
▲ 13일 "해군기지 철회하라"는 구호를 뒤로 한 채 경호를 받으며 제주도 청사로 들어가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 ⓒ제주의 소리

최후 통첩식 국방부 발표'국방부가 하라면 한다?'

13일 오후 김장수 국방부 장관은 "제주해군기지는 국가안보와 국가 이익 보호를 위해 반드시 건설해야 하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며 "국방장관으로서 해군기지 취소는 있을 수 없다. 어디든지 건설해야 한다"며 정부의 공식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제주도까지 오는 것도 힘들고, 도청에 도착해서 몇 계단 올라오는 것이 더 힘들다"며 "그래서 지사가 힘들 것 같다"고 반대시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일련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나아가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국방부가 정해야 하지 않느냐"며 최근 여론조사 방법을 들고 나온 도지사의 입지를 무색케 했다.

이날 국방부 측은 시작부터 "시간이 없다"며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감하는 바람에 공식회견 이후에도 간헐적인 질문이 잇따랐다. '여론조사 무용론'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도 그 때 나온 것이다.

당연히 20여 분의 짧은 기자회견으로 그간 제기된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날 김태환 도지사는 입 한번 벙긋하지 않았다. 모든 입장 발표는 국방부였고, 국가였고, 정부였다. 국방부가 첫 방문이라고 하지만 마치 '이제 마무리를 짓겠다'는 식의 일방 통보인 듯한 인상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장관과 김 지사는 공식 회견 후 10여 분간 티타임을 가졌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무려 1시간 늦게 시작한 김장수 국방부장관 기자회견. 그는 기자회견을 20여 분간 짧게 마친 후 김지사와 10여 분 티타임을 가졌다.ⓒ제주의 소리

과연 '빅딜'의 실체는?'공군탐색부대=알뜨르비행장' 일부 활용?
호텔, 체력단련장 등 해군 복지부대시설에 '골프장'까지 포함


이날 기자회견은 국방부가 '어떻게든 제주해군기지는 건설해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동안 숱하게 흘러나왔던 '빅딜'의 실체 역시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군부대 주변에 흔히 진행하는 사업으로서 ▲ 해군측의 복지사업 일환인 부대시설 중심으로 7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부대 복지책 ▲ 알뜨르비행장 활용 가능성 정도가 고작이었다.

특히 그 내용을 보면 해군기지 주변지역에 호텔과 골프장, 체력단련장 등 복합 휴양시설 건립을 언급한 수준이어서 결국 건설업자만 배불리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알뜨르비행장에 대한 환원문제도 '사용가능' 수준일 뿐 '무상임대는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해 사실상 국방부의 원칙적인 제안 수준에 머물렀다.

더욱이 국방부는 알뜨르비행장을 언급하며 이 곳에 '공군 탐색부대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것이 사실상 '빅딜'에 포함되는 내용이라면 매우 위험천만한 '빅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소재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이미 대통령 재가까지 받은 국방중기계획 상의 공군부대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도 확인되지 않은 조건에서 국방부장관이 '탐색구조부대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라며 "제주도 당국과 군이 주고받기 식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은 계산된 여론 호도책에 다름 아니다"고 경계의 메시지를 보냈다.

따라서 제주특별자치도가 처음부터 '국가사업'임을 강조해 오던 정부 측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국방부 장관이 도착하기 불과 30분 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지역주민과 반대단체들이 쫒겨간 그자리에 도지사는 국방부 장관을 영접하기 위해 섰다. ⓒ제주의 소리

군사특위도 '있으나 마나' 수수방관…일부의원 '사퇴' 속출로 '무용론' 제기

오는 6월말까지 8개월간 한시적으로 구성된 제주도의회 군사기지 관련 특별위원회도 이날 국방부의 공식발표로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기구로 전락했다.

이전부터 군사기지 특위의 위상에 대해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최근 김 지사를 비롯한 제주도정의 일방적인 로드맵 공개가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일방적으로 흐르면서 비판의 중심에 서 왔다.

군사특위는 13일 오후 "도가 로드맵 발표를 일방적으로 강행한 것은 특위는 물론 도민의 대의기관인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전체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라며 "도지사가 입장을 재정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공식 유감을 표명했지만, 마지못해 움직인 '때늦은 대처'라는 지적이 많다

더욱이 최근 해군기지에 대해 '신중'과 '반대' 입장을 견지해 온 일부 특위 의원들이 '사퇴'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사실상 안팎에서 '특위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 특위 위원은 "제주도 집행부가 일방적으로 중앙정부와 국방부, 해군 측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가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이미 제 역할을 상실한 것"이라며 "소모적이고 생산성조차 없다면 '특위 해산'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해군기지 반대시위 참가자들. 4월 13일은 또 한번 제주사에 큰 생채기를 남긴 날이다. ⓒ프레시안

군사기지 발표로 무참히 짓밟힌 '4.13'…인권유린' 현장으로 기록 '오점'

결국 이러한 문제는 '과잉 진압' 논란을 부르며 장관의 진입을 막기 위한 반대단체 등에 극심한 상채기만을 남겼다.

이날 국방부 장관의 제주도 청사 방문에 차질이 생기자, 도는 결국 두 차례에 걸쳐 '강제해산'을 요청했고 결국 경찰 공권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경찰당국은 시위에 참가한 제주도의회 의원들은 물론 성직자들까지 강제 연행하면서 제주경찰사에 '무력'을 넘어선 '폭력 연행'이라는 또 하나의 '오점'을 남겼다.

따라서 국방부장관과 도지사의 면담을 항의하기 위해 도청을 찾았던 지역주민들과 해군기지 반대대책위 소속회원들은 이날 무리한 진압으로 인해 도정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차후 심각한 갈등 표출이 우려된다.

결국 정부의 '힘'과 '압박'에 끌려온 사업특별자치도 '리더십' 한계 드러나

이날 장관 예우를 위해 '강제해산'을 경찰 측에 요구한 도지사는 공식적인 장관 기자회견이 끝나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서둘러 두바이로 떠났다. 중동달러를 유치하겠다는 당초의 일정 때문이었다.

김 지사는 떠나기 직전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국방부 입장 발표에 즈음하여'란 발표문을 통해 "도민 여러분은 국방부의 발표를 기초로 면밀히 판단, 제주미래 발전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 줄 것을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평화의 섬 이미지, 지역경제, 도민합의 등 3가지 원칙에 입각해 후회하지 않는 정책적 판단을 해 나갈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방부 장관과 도지사 만남에 대한 공식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전개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인권유린으로 끝났다"며 "대법원 최종 판결을 2~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앞으로 시민단체와 제주도정은 서로 '불신'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차후 관계를 우려했다.

어쨌든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가 지역 최대 현안으로 직면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도민의 입장에서 중앙정부 측에 맞서 얼마만큼 주도적으로 사업을 끌어 왔느냐에 대해서도 철저한 '자기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김태환 도지사 역시 경찰의 시위대에 대한 폭력진압 사태까지 초래하는 등 리더십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자업자득'의 결과라는 지적 또한 면키 어렵게 됐다.

그리고 4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 청사 앞은 공무원들의 비호 아래 '인권이 유린된 현장'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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