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아래'로 가자. '좌'로 가자"

<기고> 오늘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하여

민주노동당이 혹독한 진통의 시기를 겪고 있다. 단순한 10.26 재선거 패배로 인한 후유증만은 아닌 듯싶다. 원내진출 1년 6개월간 누려 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로 누적돼 온 각종 시행착오의 결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당면한 화두는 "반성과 쇄신". 어떤 식으로건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에게 이 물음을 던졌다. 그는 "서민 대중이 살아가는 '아래'로 내려갈 것"을 촉구했다. 또한 "아래로 가다보면 '좌'로 가게 돼 있다"고 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적 문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주노총을 넘어서 모든 노동 계급과 서민 대중을 대변하는 진정한 진보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편집자>

***민주노동당, '좌'로 갈 것인가 '우'로 갈 것인가?**

망설임이 길었다. 우선 한 가지 생각을 가로막는 대목이 있었다. 재선거 패배, 또는 그에 이르게 된 전 과정에 대해 당원들과 지지자들 앞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고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집행부 총사퇴는 당의 혁신과 진로 모색을 위한 당원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과 토론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있었다. 항상 글을 쓰기 전에 느끼는 두려움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몇 번 포기 의사를 밝히고자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마침내 쓰기는 하되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다만 앞날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평)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은 지금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듯하다. 민주노동당은 분명 위기에 처했다. 제4당의 위치는 굳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지지율에서도 민주당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제3당 프리미엄은 사리진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민주노동당의 이념에 관한 질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좌로 갈 것인가, 아니면 우로 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이다. '아래'는 서민 대중이 살아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한다. 그러므로 현실은 무엇보다도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바로 현재의 한국 사회의 현실로 내려갈 것이다. 현재란, 현재의 한국 사회란 정치적으로 군부독재를 걷어내던 민주화 투쟁의 시대나 경제적으로는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자본주의가 발전의 진통을 거듭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이 아니다. 이미 OECD 가입국이 되었으며 민주화 과도기를 거쳐 정상적 국민국가의 문턱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내려가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한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에 선진국 중에서도 어떤 선진국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특히 통일을 이뤄 한반도적 범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건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1948년에 한반도의 남쪽 절반에 만든 반쪽 짜리 나라, 반쪽이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이 온전하게 보장되지 않아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라, 그래서 정상적이지 못했던 나라를 넘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라는 바다에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치고 있으며 무역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는 그 영향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 크게 받고 있다. 그래서 농민을 비롯한 소자산계급, 중소 상공인들, 자영업자들은 급속하게 몰락하고 있으며 노동자 계급 중에서도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한계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은 서로 큰 차이로 달라져서 양극화되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낡은 과제**

바로 이런 현실로 민주노동당은 내려가야 한다. 아래로 가다보면 '좌'로 가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미 역사는 흘러갔는데 흔히 사람들(우리 민주노동당 당원들을 포함해서)의 생각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특히 그 시대를 강렬한 몸짓으로 살았던 사람일수록 그 시대로부터 잘 벗어나지 못한다. 과거의 관념, 과거의 사고방식을 잘 버리지 못한다. 그 시대가 남긴 잔재들과의 투쟁으로 자신의 남은 정열을 불태우지만 대중으로부터는 멀어져 가는 것이다. 특히 현대 한국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조선일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주노동당에도 있다.

과거의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은 곧 우익이 될 가능성이 많고 보수, 아니면 더 심하게는 반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도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60년 전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세계적 범위의 반파쇼 투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막 마친 1948년이라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건국된 남한이 바로 (최소한 문서상으로는) 진보적 민주주의 나라였던 것이다. 모두가 그 '진보성'에 새삼 놀라는 대한민국 헌법은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며 그것은 토지개혁을 제외하고서는 대부분 문서상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오늘에 와서 현실에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와서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을 역사의 과제로 인식한다는 것은 완전히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역시 발전 단계는 그 단계를 훨씬 넘어 섰다. 그래서 오늘의 문제, 이미 거의 실현된 민주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적 문제를 중심에 둬야 한다. 자유나 민족 자주(해방)의 이념이 아니라 평등과 그 평등 가치를 중심에 둔 새로운 나라 건설(통일)이 오늘의 시대적 과제이고 민주노동당의 과제인 것이다.

여왕 제도가 남아 있다고 해서 영국이 중세봉건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한 시대는 그 잔재를 길게 후세에 남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군부독재가 종식된 것은 아직 20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그 잔재는 여러 분야에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도 그 잔재 중의 하나이고, 이미 사문화되었기 때문에 서민 대중은 그 개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을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다시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올인'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상식으로 갈 것이다. 상식이 곧 진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리가 상식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상식이란 대중의 생활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정당은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들의 집단이 아니고, 민주주의 대의 정치를 위한 제도이다. 정당은 그래서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계층이 실재하고 그 계급 계층과의 관계가 밀접하고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져야만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은 먼저 노동자, 서민의 상식에 다가가야 한다.

***민주노총을 넘어 모든 노동계급-서민 대중 대변해야**

민주노동당 당원 중에는 노동자 서민 대중이 "잘 몰라서 우리는 지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노동자 서민 대중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그런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먼저 대중으로부터 빨리 배워야 한다. 아니 그들의 상식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기의 생각을 빨리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대중의 상식은 이미 북한을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지 못한 사회로 보고 있는데 민주노동당 당원 중에서는 복잡한 논리적 과정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는 '진리'를 믿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체적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판단에서도 대중의 상식에 다가가야 한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은 작년 총선 직전에 통과된 개정 정당법, 신정당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특히 지구당 폐지가 잘못된 것이라 규정하고 반대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반대 투쟁'은 한번도 제대로 전개된 적이 없다. 대중의 상식은 지구당 폐지가 개혁이고 잘된 일이라고 하는데 민주노동당만이 반대를 하니 투쟁이 될 리가 없었다. 마침내 '불복종 운동'도 제안되었지만 실제로 불복종운동을 하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 당력의 소모는 엄청나게 이루어졌다. 잘못된, 사려 깊지 못한, 아니 상식에 반하는 정치적 판단은 이렇게 당에 많은 해를 끼치는 것이다.

노동자 서민은 지역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서민대중이 살아가는 현실은 곧 바로 지역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서민의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지역으로 내려가고, 그리고 민주노총을 넘어서서 민주노총이 포괄하지 못하는 더욱 소외된 중소기업의 노동자, 작은 서비스업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신용불량자의 삶으로 다가갈 것이다. 민주노총과의 차별화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노동 계급과 서민 대중을 대변하는 진정한 진보정당이 될 것이다. 오늘의 진통은 바로 그런 길로 나아가려는 몸부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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