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당대당 통합 노린다

의원영입 안한다는 이회창총재의 숨은 본심

10월25일의 재보궐선거 승리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감미로운 정계개편의 유혹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1998년 가을 당 총재로 취임한 뒤 여권의 끊임없는 정계개편 공세에 시달렸던 이총재는 이제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 민주당이나 자민련에서 국회의원 한명만 끌고 오면 명실상부하게 '입법권'을 장악하고 정국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총재의 '행복감'은 그러나 선거 사흘 전에 있었던 김용환(충남 보령-서천), 강창희(대전중구) 의원의 입당사건이 없었다면 맛보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두 의원의 합류가 없었다면 의석은 '과반기준 마이너스 3석'인 1백34석(국회 과반의석은 1백37석)으로 이회창 총재를 여전히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심리적 갈증의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갈증의석 상태에서라면 이총재는 지난 28일 있었던, (김대통령이나 했을 법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수의 힘에 의한 정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의원 추가영입으로)과반수를 만들어 정국운영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국회의원의 수의 힘은 이렇게 무서운 법이다.

무소속이었던 김용환, 강창희 의원이 한나라당에 동반입당을 결심한 것은 YS-JP의 두 번째 회동(10월7일)이 있은 직후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오랜 측근이었고 이총재의 서울법대 1년 선배인 김용환 의원은 'JP식 곡예정치'와 'DJ식 2중적 정치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진작부터 강창희 의원에게 함께 입당하자고 권유해 온 터였다.

나름대로 차기주자의 꿈을 키워왔던 5선의 강창희 의원은 "나로선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YS-JP회동 뒤 '정계개편 추진', '신당창당설'이 확산되면서 "도대체 무슨 나라가 이러냐. 전직 대통령이 신당을 만들겠다니. 이런 일은 눈뜨고 볼 수 없다"며 입당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왕 이총재를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도와주겠다"는 말도 했다.

***김용환, 강창희 의원의 입당효과 커**

두 사람의 입당효과는 컸다. 우선 구로을과 동대문을의 재보선 표밭에서 30% 전후를 차지했던 충청권 출신 유권자들의 방황하는 표심을 한나라당 쪽으로 틀어놓는 계기가 됐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이총재는 정당연설회에서 "두 분께 특별히 감사드린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했다. 국회의석 분포에서 절묘한 '과반기준 마이너스 1석'만들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앞에 설명한 바와 같다.

JP가 당 총재로 복귀하면서 소속 의원 15명에게 여느 때보다 특별한 정성을 쏟고 있긴 해도 자민련 의원들이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는 현상은 김-강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이 가져 온 보이지 않는 효과다.

자민련 의원들의 JP에 대한 충성서약이 흔들리는 증거는 아직 없다. 하지만 그들이 김용환 의원의 조언이 크게 먹히고 있는 이총재의 대자민련 정책에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와중에 자민련의 고위 당직자 한명이 이회창 총재, 김용환 의원과 비밀 3자회동을 했다고 이총재의 측근이 귀띔해 관심을 끌었다. 이 고위 당직자는 회동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이총재 측근의 정황설명은 구체적이다.

***김용환 의원,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 주면 안된다”**

김용환 의원은 정치권에서 누구보다 DJP의 허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97년 DJP후보 단일화 협상을 주도했고, 대선과정에서 두 사람을 수시로 접촉하며 선거자금의 이동을 포함한 고급정보를 파악하고 있으며, 대선 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비상경제대책위를 이끈데다가 공동정권 중반까지 JP에게 유일하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측근으로서 자민련 수석부총재를 지냈던 사람이다.

그런 김의원은 DJP공조가 붕괴한 이후 자민련 정책을 고민하던 한나라당 이총재에게 "국회 교섭단체를 만들어 주면 안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련이 국회 교섭단체가 되면 JP는 그 날개를 달고 특유의 정치력으로 대선정국을 예측불가능한 구도로 몰아 갈 수 있다는 게 이유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예나 지금이나 차기 대선전에서 예측가능한 1:1구도를 선호하고 있는 이총재는 당내 일부 중진들이 "JP의 실체를 인정해 주는 대신 그의 도움으로 충청권 민심을 얻고 포용력을 과시하며 3김씨의 중립을 유도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구에 직면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김용환 의원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김의원은 기본적으로 JP가 충청권에서건 중앙정치에서건 실체보다 과도하게 포장돼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공동정권에 대해서도 "DJ, JP는 국민의 불안은 아랑곳 않은 채, 양김의 권력카르텔 속에서 정권의 재창출에만 골몰하고 있다가, 급기야 서로의 영역확보를 위한 힘겨루기에 휘말렸다"고 비판했다.

김의원과 강창희 의원은 당적은 한나라당에 있으나 자민련 의원들로부터 적지 않은 신망을 아직도 얻고 있다. 그건 김의원이 자민련에서 수석부총재를 하고 강의원이 사무총장을 하던 시절에 보여줬던 신뢰감과 리더십 때문이다.

상당수 의원들과 사무처 요원들이 그들의 입당선언(10월19일) 전날까지만 해도 두 의원과 JP의 결합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특히 김의원은 한나라당에 몸을 옮긴 후에 자민련 소속 의원들에 대한 물밑접촉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치밀한 의원접촉은 JP의 울타리치기와 부닥쳐 긴장관계를 낳고 있다.

***한나라당-자민련의 당대당 통합 노려**

김용환 의원을 통해 이회창 총재에게 입력된 자민련 정책의 골격은 무엇일까.

JP에겐 유감스럽게도 '국회교섭단체 만들어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소속 의원들을 하나씩 빼나가 자민련을 자연스럽게 공중분해하는 것일까. 그건 이총재가 공개적으로 "의원 추가영입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했던 발언에 배치된다. 그러면 어떤 게 가능할까.

김의원을 연결고리로 해서 간접대화를 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핵심 전략가들의 말조각을 종합하면 한나라당은 자민련과 적당한 시기에 당대당 통합(합당)을 하려는 것 같다.

의원 빼가기는 JP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려 충청권의 민심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김의원이 자민련 의원을 한명씩 접촉하고 있는 것은 자민련의 공중분해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 소속의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의해 JP를 안고 한나라당에 합류케 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이들은 전하고 있다.

당대당 통합의 결정적 순간이 언제일지에 대해선 설왕설래하고 있다. 내년 초에 합당을 성사시켜 대선구도를 일찌감치 이회창 1극체제로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지방선거(6월13일) 전에만 합당작업을 마무리하면 된다는 얘기까지 다양하다.

바로 당대당 통합이 여의치 않다면 중간과정으로 선거공조 방식을 징검돌로 취할 수도 있다고 한다. 통합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연합공천하는 방식으로 치르고 이를 토대로 합당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한자동맹이냐 YS-JP 신당이냐?**

그러나 한나라당과 김용환 의원 측에서 희망하는 당대당 통합이 가능하려면 YS와 JP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정계의 지각변동'(JP의 표현)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YS와 JP는 재보선 결과에 무심하다. 그렇게 될 줄 이미 알았다는 듯 자신들의 보수대연합 신당창당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YS는 자기가 '직접' 창당 작업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긴 했다.)

YS-JP의 신당창당 작업의 핵심은 한나라당의 분열과 자민련 의원 불리기다. 양측은 차기 대선 주자를 누구로 내세울 것인가에는 합의하지 않았지만 '이회창 반대'라는 노선만은 명확히 해 놨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권의 지각 아래선 YS-JP가 주도하는 정계개편 에너지와 김용환 의원의 구상에 따라 이회창 총재가 노리는 한나라당-자민련 합당추진의 에너지가 용암처럼 흘러 다닐 것으로 보인다. DJ의 마지막 용틀임이 어떻게 표출될지는 여권 내부가 혼미해 윤곽을 그려내기 어렵다.

현재 대선구도의 새판을 짜기 위한 JP와 YS의 협력이 전략적 제휴관계라면, 국회 입법과 예산처리를 둘러싼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협조는 전술적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JP가 이회창 총재와 ‘전술적 정책협조’에서 ‘전략적 대권협력’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지 여부는, 이총재가 밀고 있는 김용환 의원의 치밀한 통합 추진력이 YS의 ‘JP 붙들어 두기’를 압도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용환 의원은 조만간 이총재로부터 그가 겸임하고 있던 당 국가혁신위원장 자리를 물려받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의원은 이총재로부터 이 정도의 대접은 받아야 자민련 의원들을 자기 구상에 따라 설득하고 YS-JP구상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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