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라이벌 현대와 대우를 이끈 차범근과 조광래**
1990년 시즌이 끝난 후 국내 프로축구의 최대화제는 단연 분데스리가의 갈색폭격기 차범근 선수가 현대의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었다. 당시 37세의 차 감독은 김 호 전 감독의 갑작스런 사퇴로 예정보다 일찍 현대의 사령탑이 됐다. 프로축구계는 유럽축구의 선진기술 접목을 꿈꾸는 차 감독에게 큰 기대를 가졌고 현대는 빠른 공수전환을 선보이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프로축구 흥행에도 큰 몫을 담당했던 차범근 감독의 영향은 1992년 다시 불어닥쳤다. '40대기수'로 불리던 조광래, 허정무, 박성화가 지휘봉을 잡게되면서 프로축구 감독 세대교체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업계 라이벌이었던 현대의 차범근 감독과 '호화군단'으로 정평이 난 대우의 조광래 감독의 경기는 관심의 초점이었다.
이미 1970년대 초반 고려대와 연세대의 핵심멤버로 뛰며 포지션은 다르지만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차범근과 조광래의 라이벌전 2라운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두 감독은 모두 프로무대에서 고된 시련을 겪었다. 차범근 감독은 3년내에 팀을 우승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1993년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고 조광래 감독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현역시절 자로 잰 듯한 패스와 폭넓은 시야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조광래는 1996년 새롭게 창단하는 수원삼성의 수석코치가 됐다.
***긴장감 '팽팽', 수도권 더비의 서막**
창단 첫해 수원삼성은 프로축구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명문구단으로 전진했지만 이후 조광래 코치는 안양LG로 옮겼다. 당시 수원삼성의 김호 감독과 조광래 코치간의 불화설까지 나돌기도 할 정도였다. 조광래 감독은 2000년 안양LG에서 정규시즌 첫 우승을 기쁨을 맛봤다. 득점왕 최용수와 특급용병 안드레 드라간에다 이영표, 최태욱의 등장이 우승의 큰 원동력이었다.
수원삼성과 안양LG의 라이벌전은 김호 감독과 조광래감독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나오는 신경전까지 겹쳤고 원래 안양LG 소속이었던 '날쌘돌이' 서정원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팀에서 돌아온 이후 돌연 수원삼성행을 택해 더욱 가열됐다.
이때부터 두 팀간의 '수도권 더비'는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인근지역에 위치한 두 팀, 팬들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다 서정원의 수원삼성행으로 더비매치가 가져야 할 요소들을 갖추게 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같은 도시에서 공장을 중심으로 생겨난 축구팀들간의 '더비매치'가 한국에서 부활한 셈이다.
*** '고종수 파동' 으로 또다시 감정싸움**
올 시즌을 앞두고 두팀은 또 한번 '고종수 파동'을 겪어야 했다. 일본 J리그 교토퍼플상가에 임대됐던 고종수가 원 소속구단인 수원삼성 대신 안양LG로의 입단가능성을 타진한 게 원인이 돼 두 구단은 또 한번 감정싸움을 했다. 결국 고종수는 차범근 감독의 권유와 FIFA(국제축구연맹)의 유권해석으로 수원삼성에 돌아왔지만 아직 두 구단의 앙금은 남아있다.
두 번이나 김호 감독에게서 프로축구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수원삼성의 차범근 감독과 수원삼성에게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승부욕을 가진 서울FC 조광래 감독의 경쟁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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