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거리 만든 김정은의 의도는?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은하과학자거리, 과학 중시 정책 계승하려는 김정은 작품

지난 11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은 평양시 교외에 '은하과학자거리'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하였다. 1000여 세대가 입주할 아파트 21개 동과 12년 무상의무교육 제도를 뒷받침할 유치원-어린이집(은하탁아소)부터 초등학교(소학교), 중학교(초급중학교), 고등학교(고급중학교)가 함께 새롭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은하원이라고 하는 주민편의시설들(남한으로 치면 일종의 스포츠센터라 할 수 있다.)도 10여 개 동이 함께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8만7000 제곱미터(㎡) 넓이의 잔디밭과 16개 장소에 총면적 2만 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아동공원 및 소공원들도 함께 만들어졌다. 작은 소도시가 만들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학자도시 건설을 북한 언론에서는 과학기술 중시 정책을 부각시키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대규모 건설공사를 2월부터 8월까지 단 7개월 만에 완공하였음을 언급하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즉 건설부재 마련부터 마감까지 직접 지도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 경제 발전에 핵심인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 발전을 책임지고 실행할 과학자, 기술자들의 생활을 꼼꼼하게 보살피고 최고의 대우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 지난 1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과학자, 기술자들이 새집들이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실제 김정은은 은하과학자거리가 건설되는 동안 2차례 이상 현지지도를 했고 속도전의 가장 큰 부작용인 품질의 문제를 계속 강조하면서 속도뿐만 아니라 수준도 수준급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그는 준공식 사흘 전인 9월 8일에 마무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또 다시 현지지도를 하였고 거리, 건물, 실내 인테리어 등에 모두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실제 조선중앙TV의 뉴스 영상을 보면 집 내부 인테리어가 오늘날 남한의 모델하우스 수준은 될 듯하다. 외관도 그냥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최첨단 설비로 개선된 대동강타일공장에서 만든 타일로 마무리하였다고 하니 외부도 최고 수준을 보장한 듯하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올해 안에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을 위해 과학자살림집을 완공하고 내년에는 김책공업대학 교원을 위한 과학자살림집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또한 평성에 있는 과학원과 연평호에 과학자들을 위한 살림집과 휴양소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일관된 정책의 집행으로 소개한 것이다. 김책공업대학 과학자 살림집은 아직 착공하지 않았지만 김일성종합대학 과학자 살림집은 김일성종합대학과 금수산기념궁전 근처인 룡흥네거리에 44층과 36층 두 동짜리 아파트로 건설되고 있다. 이를 김정은은 8월에 현지지도하였고 10월까지 완공할 것을 주문하였던 것이다.

사실 과학기술 중시정책은 김일성이 통치하던 1940년대부터 일관되게 추진되던 정책이다. 보통 북한하면 이데올로기/사상을 중시한다고 하여 과학기술을 천시한 것처럼 알고 있는데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과학기술을 상당히 우대하였다. 심지어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고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과학기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과거를 묻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아니 잘못을 하였더라도 쉽게 용서받았다.

김일성이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믿음을 거두어들이고 과학기술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처지게 된 계기는 1960년대 후반에 발생한 두 번째 종파사건, 소위 '갑산파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종파사건 연루자 중에서 과학자, 기술자들의 사상문제를 담당했던 당 교육과학부장이 3인자로 거론되었다. 종파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 의해 과학자, 기술자들의 사상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러한 의심은 1980년대 초가 되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과학기술 중시정책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김정일에 의해서였다. 그는 과학자, 기술자들을 홀대했던 과거를 반성한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다녔고 이들을 우대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였다. 김일성은 과학기술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을 적극 우대하면서 잘 활용하였던 지도자였다면 김정일은 과학기술 내용도 상당히 잘 알고 있으면서 그들을 리드했던 지도자였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핵, 미사일, IT, 첨단 공작기계 등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대부분의 시도들이 김정일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2000년대 들어서 CNC로 집약되어 드러났고 이는 결국 생산 자동화 혹은 무인 생산 시스템으로 이어지고 있다. 뒤떨어진 생산 설비 수준을 일거에 바꾸고 국가 경제 발전 속도를 높이기 위해 김정일은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사상의 반열로 격상시키고 강성대국 건설의 핵심 기둥으로 거론하였다.

급하게 후계자이자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은 김정일의 정책을 철저히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등장이 CNC와 연결되었던 것도 최근 과학기술 우대정책을 직접 챙기는 것도 모두 김정일 정책의 계승성 때문이다. 이번 은하과학자거리도 이러한 흐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미 북한에는 북한 최고의 과학기술 정책 집행 및 연구기관인 과학원(국가과학원)이 들어선 '평성과학도시'와 화학공업 관련 교육, 연구, 생산 시설이 집약된 '함흥화학공업도시'가 마련되어 있다. 1960년부터 김일성에 의해 만들어진 말 그대로 '도시'이다. 이들 과학도시가 1970년대 들어서 약간 낙후되기 시작하였는데 김정일이 1980년대 들어 다시 개선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은 이러한 과학도시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구집단인 '전기, 자동화 분원'을 만들었고 평양 등지에 과학자, 기술자들이 쓸 수 있는 숙박시설 등을 별도로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결국 '은하과학자 거리'는 '과학도시'나 '연구분원'보다 한 단계 아래 차원인 '주거환경개선' 수준이었다.

한편 이번에 완공된 은하과학자거리의 정확한 위치가 공개되지 않아 설이 분분한데 아마도 평양시 북쪽 지역인 서성구역이나 룡성구역, 은정구역 일듯하다. 북한 언론에서 평양시 교외라고 소개되었으니 적어도 1000명 이상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곳, 그리고 교통이 편리한 곳 특히 자강도 희천 지역과 교통이 편리한 곳에 은하과학자거리가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은정구역은 원래 평성시였다. 이곳에 조성된 과학원도시에 대한 지원을 좀 더 보장하기 위해 평성시 일부가 평양시로 1993년에 편입된 곳이 은정구역이다. 그리고 이곳보다 좀 더 평양에 가까운 곳이 룡성구역이다. 이곳에는 국방과학기술 연구소인 '제2자연과학원'이 들어서 있다. 이 두 지역은 평양시 북쪽에 있는 높은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보다 평양에 더 가까운 곳이며 산기슭 지역이 서성구역이다. 그리고 이곳에 평양-희천 고속도로가 닿아있다. 따라서 새로운 주거지역을 마련했다면 아마도 원래 과학자 시설이 있던 은정구역, 룡성구역보다 서성구역일 가능성이 좀 더 크다.

* 강호제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 과학기술사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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