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전 차장, 원세훈 재판서 이석기 '방패'로 활용

[국정원 개혁] 공소 사실 전면 부인…"젊은 세대 국가관 위해 댓글 작업"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 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종명 전 국가정보원 3차장이, 증언 과정에서 '이석기 사태'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9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이 전 차장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 여부에 대해 묻자 최근 불거진 이석기 사태를 답변으로 내세웠다.

국정원 댓글 사건을 기점으로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른 국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태를 조직 회생의 계기로 삼았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측은 "통합진보당만 13명이고 종북 좌파들이 한 40여 명 여의도에 진출했다"(2012년 4월 20일. 전체 부서장 회의)는 원 전 원장의 발언에 대해 이 전 차장에게 질의했다. "일부 야권 인사도 종북으로 규정한 것 아니냐"는 검찰 측 심문에 이 전 차장은 "이석기 이런 사건도 있었고…. 원 전 원장에게는 저보다 다른 측면의 보고서가 더 있지 않았을까"라고 답했다.

이는 원 전 원장이 이석기 의원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보고서를 봤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언이다. 이는 추후 원 전 원장이 이석기 의원 사건을 재판 과정에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날 한 일간지는 이석기 사건을 이번 재판과 결부시키는 듯한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의 발언을 인용 보도해 법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사 측은 이날 이 전 차장이 증인대에 서기 전 "(이석기 사건을 결부시켜) 원 전 원장 측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에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저는 기사를 보지도 못했고, 일간지 기자에게 전화도 받지 않았다"며 다른 두 명의 변호사들에게 "혹시 전화 받은 분 있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다른 두 명의 변호사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범균 판사는 양 측이 '언론 플레이'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이 전 차장은 증언대에서 이석기 의원의 이름과 '보고서'를 언급한 것이다. 이 전 차장은 다만 "종북 좌파 40여 명"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이 전 차장은 36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다가 지난 2011년 4월 국정원에 영입됐다. 지난달 19일 열린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지금 이 청문회 장면은 국민뿐 아니라 북한 노동당 간부와 전 세계 간첩들도 보고 있다. 국정원 대응 활동에 힘을 실어줄 것을 간절히 호소드린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대북관과 안보관이 잘 드러난다.

그는 이날 열린 공판에서도 여러 차례 안보를 강조했다. 특히 '젊은이'를 여러 차례 강조하며 젊은 세대의 안보 의식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우리 젊은이들이 천안함이 (북한이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 일어났다고 인식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며 "젊은 세대가 올바른 국가관을 가지길 바라면서 (댓글 작업을 포함한 사이버 심리전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났을 때 어느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젊은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증언 내내 "원 전 원장의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다"며 원 전 원장을 감싸던 이 전 차장은 자신의 지시 사항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는 "원장님 업무 스타일이 지시를 별도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제가 추가 지시한 것은 있다"며 "제가 군인 출신이다 보니 천안함, 연평도 시점에서 젊은 사람들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그러한 주문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해 8월 27일 무디스와 피치, S&P 등의 신용 평가 기관은 한국의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지난 2일 열린 2차 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사이버 심리 전담팀이 당시에 온라인상에서 신용 등급 상향에 대한 홍보 활동을 벌였다고 밝힌 바 있다. 2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 역시 "심리 전담팀에서 활동 내역에 관한 보고서가 나갔다면 원 원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인정하겠다"며 원 전 원장의 지시로 홍보 활동이 이뤄졌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전 차장은 "원 원장은 무디스가 북한의 리스크를 너무 과도하게 인식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 리스크가 심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안보 위협을 우려하며 "체제 전복", "정권 전복" 등의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해온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정치에 개입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었다"며 검찰의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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