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건물 입구가 다방에서 보인다. 구경꾼과 장사치들이 한데 섞여 웅성댄다. 형사와 경찰들이 나오고, 자진해산한 노동자들 그 뒤를 따라 나온다. 모두 나오자,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노동자들을 모두 연행해가는 형사와 경찰들. 남자는 창쪽에서 떨어진 자리에 여자를 앉히고 진정시키느라 창 밖을 볼 겨를이 없었다. 바깥을 구경하던 손님 하나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엉? 잡아가네?… 남자가 놀라서 ‘에?’하고 미처 반문하기도 전에 여자가 남자를 박차고 창문으로 내달았다. 남자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여자 뒤를 쫓았다. 여자는 곧바로 창문 위에 발을 걸치며 외치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나도 뛰어내릴 거야!…. 남자가 다리 하나를 잡지 않았더라면 여자는 떨어졌을 거였다. 여자는 발을 뽑으려 기를 쓰면서 창밖에 대고 계속 소리치고, 남자가 또 엉겁결에 여자 입을 막았다. 삽시간에 다방이 부산해지고,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여자의 고함 소리를 듣고 저 아래 형사도 사태를, 그리고 둘이 누구인지를 금방 알아챘다. 형사가 서둘러 뭐라 뭐라 지시하고 경찰들이 다방 있는 건물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자, 가자 어서? 자, 빨리…. 남자가 허겁지겁 여자를 독촉했지만 여자는 완강히 창턱을 붙잡고 늘어졌다. 놔, 난, 도저히 못 참아. 죽겠어, 나도…. 쓸데없는 짓. 빨리!…. 쓸데없는 짓? 그럼 우린 쓸데없는 짓 말고 뭘 할 수 있어, 개새끼야!…. 그렇게 발악을 했지만 그 말이 여자의 힘을 빼기는 했다… 무엇이든! 빨리!…. 스스로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르고 남자가 그렇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러나 여자는 바닥에 주질러 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엉엉, 개새끼, 병신같은 새끼야!…. 여자를 질질 끌다시피 다방을 빠져나오는 남자.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구르는 여자. 천지사방 골목길, 아무도 없는. 그러는 동안 남자 음성.
--여보. 가자, 우린 더 가야 해…….
암흑. 헉, 헉, 다급하게 뛰어가는 호흡. 호흡이 계속 이어진다. 평화시장 앞, 실갱이하는 노동자들과 사장--형사들. 흑백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태일. 계단. 줄어들면 평화시장 건물 계단을 오르는 태일. 평화시장 옥상. 석유를 몸에 붓는 태일. 그 옆에 플래카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청계피복 노조 사무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남여 노동자들. 창문에 매달려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는 노동자. 경찰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남자. 떨어지는 것을 말리려는 남자. 벽면에 붙은 전태일 원래 사진, 클로즈업. 호흡소리 말고는 장면이 모두 묵음이고 그런 동안, 남자 음성.
--그러나 그날 이후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 그냥 남의 고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나는 다른 장면을 상상하곤 했다.
경악하며 뭐라 외치는 시장 사람 얼굴. 평화시장건물. 창문에서 뛰어 내리는 노동자. 떨어진 곳으로 몰려들어 웅성대는 시장 사람들. 다시 경악하며 손으로 어디를 가르키는 사람들. 평화시장 건물 청계피복 노조 창문에서 시커멓게 새 나오는 연기. 백차 싸이렌 소리. 달려오는 백차. 그러는 동안 형사 둘의 대화 음성. 대어 낚았어. 저잔 빨갱이야. 증거가 완벽하지. 어이, 1계급 승진이구만!…. 어, 그래, 그래. 고마워. 앓던 이 빠졌군…. 평화시장 건물 입구, 수갑을 차고 끌려나오는 남자. 백차에 실리는 남자의 놀란 얼굴, 클로즈업, 정지.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는 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타라고 다그치는 경찰. 백차에 실리는 남자. 떠나는 백차, 남아있는 남녀 노동자들. 여자. 사람들. 그동안 남자 음성.
--아냐, 이건. 이렇게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이 전태일은 아냐. 그래, 지금부터야, 삶도, 죽음도….
암흑, 백차소리, 잦아들면, 다시 남자 음성.
--그의 죽음이 내게, 살아야 할 삶으로 온다면….
우울한 베토벤 음악 흐르고, 암흑이 변하여 철문. 어둠을 조각한 듯한, 기분 나쁜 빛을 내는 철문. 그 위로 깔리는 태일 음성.
--오늘은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덜컹, 덜컹, 드륵, 드륵, 대며 열리는 거대한 철문. 백차 차창 전면으로 철문이 열리며 드러나는, 아슴푸레한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 형사 둘의 음성. 자, 고생 좀 하시게…. 그래. 이제 고생 임무 교댄가, 하하…. 철문 안으로 들어가는 백차. 다시 덜컹, 덜컹, 드륵, 드륵, 닫히는 철문. 다 닫히면, 남자 음성.
--그래. 더 가야 해. 우린, 더 가야 해.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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