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엄니.
그가 좌우를 조심스레 살피며 다시 어머니를 깨우고, 어머니는 흠칫 놀라 일어났다가 금방 태일을 알아 보고는 안심한다.
-- 그래. 너로구나. 으구, 내 자식.
어머니가 태일의 뺨을 쓰다듬으려 하지만 태일은 다시 주변을 살피더니, '엄니. 밥 못 묵읏제?'하면서 뒤에 숨겼던 것을 내놓는데, 처음엔 잘 보이지 않다가, 검은 수수떡이다.
--이, 이것이 뭣이다냐, 하이고, 이 놈아, 자석. 하이고, 하이고오.
--사람들 깨기 전에 어서 먹어.
어머니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화들짝, 죄지은 사람처럼 질색을 하더니, 그제서야 말문이 터졌다.
--내가, 내가 이걸 어떻게 먹겠니. 흐윽.
아직 울먹임이 압도적인 채로 그녀가 태일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마치 때리듯이.
--이 놈아 자석아. 어구 내 새끼. 킹, 니가 부모 잘못 만나서...
--쓸데없는 소리.
그의 말투가 단호하고, 어머니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그녀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엄니, 입술 부르튼 걸 보니까 아침부터 아무 것도 안 먹었지?
그녀가 감정을 진정시키며, 오히려 그를 달래듯이 말한다.
--아이다... 많이 묵었다. 아이들이 맛있는 것 동냥해오면 나눠주곤 한다... 킁.
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대충 수습하고 그녀가 수수떡을 태일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제 그녀는 온전히 어머니다. 벌레를 물어다 새끼들 주둥이 속으로 넣어주는 어미새 같다.
--그라지 말고 어서 묵어.
아들의 그 말이 거의, 어미새의 발에 채이는 것처럼 들렸다. 어머니는 콧물을 깨끗이 닦아내고 아들의 두 손을 잡으려는데 아들이 멈칫하며 얼굴을 빼자 어머니는 뭔가 짚히면서 아들의 얼굴을 와락 붙들고 서둘러 뜯어본다 온통 시푸르딩딩한 얼굴이다. 아들은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지만 어머니는 아랑곳이 없다.
--이, 이게 우찌된 일고?
--아이다. 그냥 계단에서 넘어졌다.
--계단? 거짓말 말그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불행한, 불의(不義)한 일, 몹쓸 일이 벌어졌음을 확신하고 그를 다그치며 좀더 찬찬히 얼굴을 훑어보고, 아들은 쉽게 체념한다.
--괘않다.
--아이고, 아이고, 누가 내 자석을 이리 쥐팼단 말고. 도대체 누고?
어머니는 급기야 '불지 않는' 아들을 호되게 혼낼, 그러면서 자신은 벌써, 자신의 한탄까지 푸짐하게 섞으며 자지러질 태세고, 아들은 머쓱하다.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그런 얘기가 아니다. 아들은 맞은 것보다 자기 죄가 더 많다는 투다. 뭐지, 왜지? 어머니는, 어머니가, 모종의 죄의식에 감염되기 시작하고, 아들은 '모종'이 명료해지는 것이 두렵다.
--신문 팔다가... 괘않다.
--하이고, 이 몹쓸 놈들. 하이고, 그기 무신 떼돈 버는 거라꼬 . 내 이놈들을...
아들의 헛심이 어머니의 헛심을, 아니면 거꾸로, 아니면 2중적으로 동시에, 아니 헛심이 헛심을 제풀에 무너트리고, 무너진다. 반항해서가 아니다. 그가 참회한다. 마침 내 끔찍한 가난의 죄가, 참회한다. 그가 울먹이면서.
--어무이, 그게 문제가 아니요. 순덕이, 불쌍한 우리 순덕이 빨리 찾아와야제.
말하고, 참회가 참회를, 낳았다. 어머니가 흐느끼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말은 타령처럼 길고 타령은 생애를 닮는다. 그녀가,
--그래, 그래. 내가 미친 년이다. 어떻게든 너거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건데. 죽어도 떨어지면 안 되는 건데. 끄윽. 내가 죽을 년이여, 끄윽
이상하지. 울음은 항상 응축하며 폭발한다. 응축이 폭발이다. 그렇게 참회가 참회를 위로한다.
--엄마, 엄마가 무슨 잘못이 있어. 엄마는 잘못 없어. 울지마요, 엄마.
어머니는 단호하고 냉정하다. 참회 또한 그렇다는 듯이.
--아냐 내가 너희들을 놔두고 가출하는 게 아니었어. 아무리 돈을 벌려고 왔다지마는.
--아냐. 아녜요. 엄마가 안 그랬으면 우린 모두 굶어죽었을 거야.
아들은 물론 위로의 말이었지만 그게 오히려 '아무리 ~지마는'의 뒤끝을 흡사 잘라낸 듯, 어머니의 참회는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서슬 푸르고, 굵은 눈물을 훔치던 아들이 비수를 맞은 듯 흠칫, 놀랐다. 그는 또 일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 우리도 그렇다. 그도, 어머니와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때 그의 나이 16세였다. 어머니는 곧장 삶 속으로 귀환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우리 다 모여 살 수 있어. 조금만 더 있으면,
그렇게 그가 펄쩍 뛰면서 계속 떨어지고,
--아버지하고는 안 된다.
어머니는 그랬다. 그녀가 삶에 내린 뿌리는 이미 완강했다. 물론 자식새끼들 때문이었다.
--판잣집이라도 한 채 장만할 때까지는 안돼.
--술을 끊으시면.
그도, 뿌리를 내렸을까, 정착했을까? 어머니가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어머니답게 가족들을, 모두 감싸 안는데, 마치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듯 하다.
--푸우, 착한 자석. 니도 알제? 아버지 술은 세상 때문에 그런 거야. 아버지가 나빠서 그런 거 아이다. 니도 알제?
--어무이, 어무이가 정말 착하제... 나는, 나는 속만 썩혔지라.
--아이다, 아이다. 니도 알제? 니 때린 거 니가 미워서가 아이다. 알제?
그러나, 시장 더 깜깜해 지면서 암흑. 죽음의, 예감의 암흑. 그리고 소리. 될 수 있는 데로 안도하고 싶은, 애써 편안한 투의 목소리. 여자다. 남자의 여자.
--이 집도 옮겨야 해요.
--뭐, 어차피, 100% 안전한 데는 없으니까... 시골로 갈수록 더 위험해. 도바리 치는 데는 복잡한 서울이 제일 안전하지.
--이렇게 갇혀 있는 건 안 그래요. 동네 사람들이 쑤근대는 것 같구.
--하, 그렇지, 뭐. 뭐, 잡혀도,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 어쩜. 아무리 농담이라두...
소스라쳐 놀란 목소리다. 남자와 여자. 그들은 언제 깨었지? 경악으로만 깨어있을 수 있던 1974년. 그때 남자의 나이 26세. 여자의 나이 22세였다. 밖은 여전히 동요 소리.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께, 새 집 다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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