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 누굴 위한 대책인가

[기고] 세입자 피 한 방울까지 '쪽' 빨아먹는 악마의 전세 대책

미친 집값이 금융 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고 진정 국면으로 전환되자마자 또 다시 전·월세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집값 하락 또는 정체에 따른 기대 손실을 전·월세 값으로 만회하려는 임대 주택 소유자들의 이해관계와 가급적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자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맞물려 전셋집 품귀 현상과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고 있죠. 그 뒤를 월세까지 따라가고 있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임대 소득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 20% 미만의 토지 자산가에게는 참으로 즐거운 일인 반면에, 자기 집 없는 처지에서 셋집을 구해야 하는 최소 40% 이상의 세입자와 그 가족에게는 죽을 맛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비록 이중적 이득을 가진 사람들(가진 집이 있으나 자기 집은 세를 놓고 자신은 전·월세를 사는 사람들, 2012년 기준 전체 가구의 약 4.6%인 82만 가구)은 선택의 여지가 있고, 거주 목적으로만 집을 보유하는 사람들(전체 가구의 약 35% 이상)에게는 내 일 아니라며 관심 밖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한두 사람도 아니고 최소 40% 이상 국민의 주거 생활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전·월세 대란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및 새누리당이 문제를 이해하는 인식과 전·월세 대책이 참으로 기묘합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이들 모두는 대체로 "부동산 거래가 침체됐기 때문에 전·월세 문제가 심각하다"는 유형의 인식을 공유(현오석 경제부총리,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등)하고 있고, 부동산 거래 활성화가 정답이라는 생각(그렇지만 명백히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말합니다. "매매 시장이 과도하게 침체됐기 때문"에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낮아져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을 해야 한다고(2013년 8월 20일). 한 마디로 서민들의 전·월세 고통을 핑계로 부자 중에서 토지 자산가들에 대한 감세 조치까지 취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및 새누리당의 인식과는 달리, 전·월세 대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80년대 중·후반 부동산 시장의 폭발적 팽창 이후 지금까지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든 침체되든 가리지 않고 시시때때로 반복되어 온 현상입니다. 즉, 임대 주택 소유자들이 전·월세 값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시켜 사적 이득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경향이 강화될 때마다 가급적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자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의 상반된 이해관계와 맞물리면서 전·월세 대란이라는 아우성 소리가 터져 나왔고, 세입자들의 주거 조건은 계속해서 악화되어 왔습니다. 이는 굳이 통계까지 끄집어내 입증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우리 주거 시장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현상은 임대 주택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임대인으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맘대로 전·월세 값을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시키거나 재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시장 관계와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합리적인 규제·조절·통제 장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우리의 전·월세 시장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와 같기에, 정상적인 정부라면 마땅히 독일이나 영국 또는 미국 각 주들의 임대차 법제의 모범 사례들을 참고해서 세입자 보호를 위한 합리적 기준을 만들고, 우리만의 독특한 전세 또는 보증부 월세(전세+월세)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들을 실효성 있게 강화하고, 취약 계층의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주거비 보조 등 복지적 요소를 강화하는 동시에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공익적으로 공급(그 핵심이 매입 공공 임대를 포함한 공공 임대 주택과 사회 주택 공급 정책입니다)함으로써 시장 환경 자체를 개선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을 챙기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훌륭한 정치철학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민은 세입자들이 아니라 거래 활성화를 위해 파격적 조치를 갈망하는 다주택자 보유자거나 부동산 업자거나 부동산 시장에 자금을 공급해서 이득을 얻으려는 금융 업자이거나 집을 주거이외에도 투자 수익 목적으로 보유한 계층 등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부동산 대책의 직접적인 수혜 계층이 바로 이들 계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며, 정작 부동산 및 전·월세 시장에서 정부 정책의 수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입자들이나 사회적 취약 계층들은 최선의 경우조차 떡고물 수준의 혜택 정도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글의 핵심 주제인 '목돈 안 드는 행복 주택 전세 자금 대출 제도'('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는 이와 관련된 단적인 사례입니다.

▲ '행복 주택 전세 자금 대출 제도', 과연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인가? ⓒ연합뉴스

돈 안드는? 은행에서 빌리는 건데?

우선 표현만 따지면, 이 제도는 목돈을 은행에서 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 드는"이라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이자 현행법상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을 뿐 국민적 사기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부가 관련해서 내놓은 두 가지 제도 중에서 집주인이 주택 담보 대출을 받고 그 이자를 세입자가 월세 대신 은행에 갚는 제도는 전세 제도라기보다는 월세 제도의 변형된 형태에 가깝다는 사정, 그리고 집주인이 보증부 월세 등을 원하나 전세 보증금 없는 세입자를 위해 등기 설정을 순순히 허용하거나 또 임대차 계약 해지 때 보증금 반환을 지체하면서 얻는 유무형의 이득 등을 순순히 포기해야 성립된다는 사정, 끝으로 제도 실행을 원하는 세입자의 신용 등이 좋아야 한다는 사정 등을 감안할 때, 이 제도는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작동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이 글의 범위 밖입니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란 곧 전세 보증금 채권을 은행에 양도하는 방식으로 돈을 빌리는 전세 보증금 대출 제도를 의미할 수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해서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는 새로운 제도가 아닙니다. 이미 대부 업자(사채업자)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사용해 왔던 수법입니다.

달라진 것은, 대출을 받을 때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 양도 각서와 채권 양도 통지서만 받던 것을 집주인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 스스로 집주인의 동의 조건을 추가한 것, 그리고 집이 경매되거나 전세 보증금이 압류되어도 세입자의 재산으로 보호되던 최우선 변제금(전세 보증금 중에서 최우선 변제금은 압류 금지 채권임)까지 은행 등이 몽땅 회수해 갈 수 있게 합법적으로 보장되었다는 것 등 두 가지 세부적인 사정이 다르며, 끝으로 이 제도에 따른 직접적인 최대 수혜 계층이 우선은 은행·보험사·주택금융공사·대한주택보증주식회사로 한정되었다는 사정이 있을 뿐입니다.

또 전세 보증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고자 하는 수요는 충분히 존재하며, 기존에 주류를 이루었던 전세 자금 대출 방식의 두 가지 핵심적 걸림돌(담보물 확보 문제 및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최우선 변제 제도 때문에 세입자의 최우선 변제금은 회수하기 어려웠다는 사정)이 완전히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은행과 보험사 등에게는 종전에는 없던 새로운 담보 대출 시장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 달라진 것입니다. 비록 집주인과의 분쟁을 피하기 위해 은행 등이 스스로 집주인의 동의를 대출 조건으로 추가하면서 새롭게 발생한 걸림돌이 있기는 하나, 이는 은행 등이 스스로 철회할 수도 있는 대출 조건이라는 점에서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새 대출 시장 확보한 '은행'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에 따라 은행 등은 종전에는 없던 새로운 담보 대출 시장이 활짝 열린 셈이고, 이를 통해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도의 가장 큰 수혜자인 것입니다.

주택 임대 소득을 주 소득원으로 하는 토지 자산가의 입장에서는 제도가 작동되는 경우, 약간의 손실과 큰 이득의 공존합니다. 번거롭게 동의서를 써줘야 한다는 것과 전세 보증금 반환 시점에서 만만한 세입자가 아니라 은행 등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세 보증금 반환 등을 지체하는 방식으로 관행적으로 얻어 왔던 유무형의 부당 이득의 기회가 감소한다는 사정이 토지 자산가들이 제도가 작동할 때 감내해야 할 약간의 손실에 해당합니다. 큰 이득이란 제도가 없을 때에 비해 제도가 작동되는 경우 전셋값 등을 보다 손쉽게 올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자란 자금은 세입자가 대출을 받아 충당할 것이므로! 따라서 은행 등만큼은 아니지만 토지자산가도 이 제도의 큰 수혜자 일 수 있습니다.

물론 제도의 합법적인 최대의 수혜자를 은행과 보험사 등으로 제한했지만, 제2금융권이나 대부 업자(사채업자)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혜자들입니다.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권까지 내어주면서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세입자 중에는 자금 조달의 용도가 모자란 전·월세 값을 벌충하려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계 부채 1000조 시대(2013년 6월말 기준 금융 기관 가계 부채만 980조495억 원이고, 대부 업자 등에 대한 기타 가계부채는 통계조차 없음), 규모도 규모지만 제2금융권과 대부 업자 등에 대한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세입자들도 그만큼 많아졌고, 따라서 이들 세입자들의 경우 종전에는 조달할 수 없는 상환 자금을 전세 보증금까지 탈탈 털어 조달해서 높은 이자까지 다 쳐서 갚아 줄 것이므로 그만큼 고리대 대출 자금에 대한 회수율은 높아지고 이득은 커집니다.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에 따라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권을 은행 등에게 내어 주고 자금을 조달하는 세입자들에게는 작은 이득과 큰 손실이 공존합니다.

작은 이득이란 전세 보증금 반환 청구권을 제공함 없이 대출받는 기존 전세 자금 대출 방식이나 또는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통상 연간 20~30%대의 금리로 제2금융권이나 또는 최소 연간 30%대의 금리로 대부업자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변동 금리 연간 4%대, 이는 연간 4%대 후반의 주택 담보 대출 금리보다도 낮은 편임)을 은행들이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세입자들이 감내해야할 큰 손실은 여럿입니다. 그 자금 조달 원인이 집주인의 전·월세 인상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꼼짝없이 전·월세 인상 부담을 다 떠안게 되는 것이고, 또 그만큼 높게 형성되는 전·월세값 환경을 지속적으로 감내해야 합니다. 또 충분히 원리금 상환을 할 수 있는 소득 능력 등이 있다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연체하는 순간 연간 18%에 달하는 고율의 연체 금리 부담을 꼼짝없이 떠안아야 하고, 그나마 자신의 재산으로 보호되었던 최우선 변제금까지 몽땅 털린 채 보증금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 일반의 입장에서는 손실이 불가피합니다. 세입자가 연체하는 경우 자신의 전세 보증금 전체를 털어 갚을 것이므로,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에 따른 연체율은 낮을 것이지만 원리금을 갚지 못해 모든 것 다 뜯기고 보증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세입자들은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사회복지 압력 및 조세 부담 압력은 커질 것이고 사회는 불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보증금 한 푼 없이 길거리 나앉는 사람들이 대량 발생할 수도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의 핵심적인 부작용, 즉 그나마 법적으로 보호됐던 최우선 변제금까지 몽땅 뜯긴 채 보증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는 사람들이 결국은 대량으로 발생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도의 도입 초기에는 그럴 일이 없고, 제도 성숙기까지도 드문드문 발생할 터이지만, 제도 성숙기 이후에는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한 상당수 세입자 가구가 보증금 한 푼 없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사실 외국에는 없는 전세 제도 또는 보증부 월세 제도(전세금+월세)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보증금 한 푼 없이 세입자와 그 가족들이 살던 집을 떠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충격이자 절망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제가 상담했던 여러 사례 중에서 2011년경 이맘때쯤의 사례가 적당한 듯합니다.

전세 보증금 3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다가구 주택에 살던 박 아무개 씨의 아내 얘기입니다. 출산 후 아내 병원비가 최초 발단이 되어 제2금융권과 대형 대부 업체 빚이 자꾸만 늘어나던 박 씨는 제2금융권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양도 각서를 써주고 덜컥 대출을 받았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다를 뿐, 박근혜 정부의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의 원형입니다.

어쨌든 박 씨는 그 돈으로 빚 독촉이 심했던 제2금융권 채무와 대형 대부 업체 채무 일부를 정리했습니다. 당장 한 숨은 돌린 셈 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갚지 못한 채무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새롭게 빌린 전세자금 대출금 이자도 갚아야 했으므로, 200만 원 수준인 자신의 소득으로는 두 아이와 아내를 부양하면서 정상적으로 빚을 갚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추가 돌려막기가 진행되기 시작했고 전세 자금 대출 분도 연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남편 빚이 늘어났다는 사정은 알았지만, 전세 보증금까지 담보로 제공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던 아내는 전세 계약이 끝날 때쯤 이사 갈 곳을 알아보다가 집주인 아주머니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채권 양도 통지서라는 게 날라 와서 전세 보증금을 빼줄 수 없다"는.

그 아내는 물어물어 '경제 민주화를 위한 민생 연대'를 찾아왔지만, 이사 가는 데 필요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었습니다. "명도 소송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니 집주인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시간을 벌어 월세로 보증금을 까고 그동안 얼마라도 모아서 월세 집을 알아보는 것" 정도의 방법 등을 얘기해 줄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박 씨의 아내, 그건 인간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어려운 사정 알고 찬거리며 아이들 가끔 돌봐주는 일까지 해준 게 얼만데 그럴 수는 없다고. 그나마 자신이 선택 가능한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며 그렇게 고마워했던 박 씨의 아내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 네 식구 길거리에 나앉을 일 생각하니 하늘이 다 무너진 것 같다며 슬피 울던 그 눈물과 울음까지….

그리고 한 달 쯤 후, 저는 박 씨로부터 아내의 자살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전세 보증금 한 푼 없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절망과 모든 것은 자신의 병 때문에 비롯됐다는 자책 등이 겹쳐 사랑하는 두 아이마저 두고 세상을 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거 문제에서 우리 사회의 최후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최우선 변제금, 이마저도 빚을 갚기 위해 몽땅 털어준다면 채권자로서는 더 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절망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는 전세 보증금 한 푼 없이 살던 집을 비워주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는 서민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태어나게 해선 안 될 제도였습니다.

전·월세 대란에 직면한 서민들에게 정말 절실히 필요했던 일은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이 없도록 모든 세입자들에게 합리적인 기간 동안 계약 갱신 청구권을 인정"하고 "현행 주택 임대차 보호법의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를 실효성 있게 연동시키는 일", "최우선 변제금을 현실의 전·월세 보증금 추세를 감안하여 상향 조정하고 편법적인 방식으로 채권자들이 회수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 "경매 시 세입자 우선 매수제를 도입"하고 "전·월세 분쟁에 대응할 수 있는 임대차 분쟁 조정위를 설치하는 일", "국민 주택 기금으로 지원되는 저소득층 전세 자금 대출 제도 및 주택 담보 대출 제도의 개선", "매입 공공 임대의 대량 확보 등 양질의 저렴한 공공 임대 주택과 사회 주택의 공급" 등등이었지 지금의 제도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물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가 작동하게 된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및 새누리당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제도의 법률적 근거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관련 규정 제3조의2(보증금의 회수) 제7항의 신설 조항은 2013년 5월 31일 정부법안으로 제출되고,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2013년 6월 27~28일 국회법제사법위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2013년 7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박영선 의원) 대안으로 의결되어 다음날(7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13년 8월 13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했는데, 법안 심사 과정에 참여했던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 모두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원만히 합의해 줬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을의 눈물을 씻기 위해 '을지로 위원회'까지 가동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과 한 때 당명 앞에 "진보"라는 이름까지 썼던 정의당 의원조차 상당수 서민들을 절망적 상태로까지 몰아 놓을 수도 있는 법안의 위험성을 지혜롭게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의 경우, 알면서도 합의한 준 것이라면 "미필적 고의"의 책임이 있고, 정말 몰라서 아무런 이의 제기 없이 합의해 준 것이라면 이 역시 민생을 지혜로운 헤아리지 못하는 "무능"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는 시행되기 시작했고, 당장은 큰 문제를 야기함 없이 제도가 작동될 터이고, 제도 성숙 이후에도 제도 이용자의 다수에게는 큰 문제가 없을 터이지만, 전세 보증금 한 푼 없이 살던 집을 비우고 거리로 나앉게 되는 상당수의 누군가는 분명 죽음이라는 극단적 절망까지 경험하게 될 터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때쯤이면 최대 수혜 계층인 은행 등의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작동할 터이고, 따라서 전세 제도 자체가 어떤 이유로 축소되거나 대출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지 않는 한 제도 자체를 폐지할 방법은 없게 될 터이고, 결국 민생을 세심하고 지혜롭게 헤아리는 누군가가 이 제도의 치명적인 약점을 새로운 형태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지체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박근혜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님의 모친이신 육영수 여사가 서민들의 애환을 이해했던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정치인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삶을 챙기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한다"는 님의 훌륭한 정치철학이 서민들의 삶의 영역에서만큼은 빈말이 아니라 진실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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