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에서도 아버지께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셨던 작은 다락방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던 어느 여름날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상당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버지께서 좀 더 큰 도시에서 공부하기 위해 고향집을 떠나신 이후로 사촌 오빠들의 차지가 된 지 오래였던 그 방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자취를 간직하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다락방 안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 놓던 그 날,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무척이나 설레어 했던 기억이 난다.
벽을 가득 메우고 있던 낯선 여인들의 사진과 공부하는 틈틈이 그것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기에 적합해 보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던 작은 책걸상, 방 안 한 구석에 얌전히 놓여 있던 꽤 무거워 보이는 역기 등, 사촌 오빠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보내셨을 일상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어린 나에게 그 방은 아버지의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이었던 셈이다.
| ▲ <방의 역사>(미셸 페로 지음, 이영림·이은주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
시대를 호령했던 군주를 비롯해 오랜 기간 동안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러 왔던 어린이, 여성, 가난한 노동자, 그리고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았던 병자와 은둔자, 나아가 이곳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던 여행가 및 부랑자들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방이라는 공간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삶의 흔적들을 정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나아가 그 흔적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만들어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개인적 의미 역시 매우 재미있고 알기 쉽게 풀어놓고 있다.
특히 역사적 기록물과 문학 텍스트, 그리고 유명한 작가를 비롯해 평범한 일반인이 남긴 개인적 기록물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문헌 자료와 아름다운 그림 들을 조화롭게 엮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노련한 구성력 덕분에,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글을 읽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그림을 감상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다양한 삶에 대해 상상하는 즐거움 역시 맛볼 수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은 시대와 문명을 아우르는 상당히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남들로부터, 그리고 일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고독을 음미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욕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여건을 갖추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우선 모든 개인이 각자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정착하기 전까지, 자기만의 방은 욕망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 중산층이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녀들이 따로 지낼 수 있는 방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나, 1929년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이소연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펴냄)을 발표한 이후 한참 동안까지도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여성들의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그런 의미에서 자신만을 위한 방의 탄생은 개인에 대한 근대적 인식이 정립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이 들려주고 있는 방의 역사란 무엇보다도 개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진행된 방이라는 공간의 재탄생 과정, 즉 공적인 장소로부터 개인만을 위한 내밀한 장소로 이 공간이 새롭게 태어나게 된 과정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근대적 인식이 확립되었다고 해도, 물질적 여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여전히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만의 방을 갖기까지 왕과 일반 민중이 겪은 너무나도 다른 경험의 내용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정착하기 전인 17세기 절대왕정기까지만 해도 왕의 침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한 데 어우러져 영위되었던 당시 궁정생활의 운영 원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에 해당했다. 공적인 업무는 물론이거니와 사생활까지도 자신의 엄격한 통제 아래 두고자 했던 국왕의 욕망이 투영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궁 안의 모든 공간을 통틀어 왕의 침실은 가장 엄격한 공적 규범이 지배하는, 내밀한 사생활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 ▲ <방의 역사> 중 왕의 침실을 담은 그림(56~57쪽). ⓒ글항아리 제공 |
동시에 왕의 침실이 지녔던 이러한 특징은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을 더욱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생활의 달콤함을 제하고는 왕에게는 부족한 게 없었다"는 루이 14세의 역사 편찬관 라브뤼예르의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69쪽), 공적 생활을 지배하는 엄격한 규칙들에 지친 왕은 보다 자유로운 사생활을 갈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러한 욕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권력과 물질적 기반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덕분에 왕은 지극히 사적이면서 은밀한 만남을 가능케 할 자신만의 은신처들을 마련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누구보다도 일찍이 자기만의 방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자로 역사에 기록되기에 이른다.
일반 민중들이 개인적인 방을 갖게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작가는 특히 6장 '여인들의 방'과 8장 '노동자의 방'에서 자기만의 방을 갖기까지 유럽 민중들이 겪어야만 했던 여러 시련들을 매우 공들여 서술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노동운동 전문가로서 작가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프랑스 농촌 및 도시에서는 여전히 다세대가 기거하는 동시에 다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공동의 방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도시 노동자들의 방은 공동생활이 야기한 공간 부족 및 불결한 위생 상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당시 일반 민중들의 주거 환경이 지닌 문제점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작은 뒤척임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좁은 방 안에 네 명의 노동자들이 한 데 뒤섞여 잠들어 있는 장면을 담고 있는 헨리 무어의 '회색빛의 네 명의 잠든 사람'(418쪽)은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했던 주거 환경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거친 톤으로 표현된 노동자들의 형상과 불편한 잠자리였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입을 벌린 채 단잠에 빠져 있는 한 인물의 모습에서 강도 높은 노동으로 점철된 그들의 고단한 일상 역시 그려 볼 수 있다.
| ▲ 헨리 무어의 '회색빛의 네 명의 잠든 사람'(1941) ⓒ글항아리 제공 |
따라서 일반 민중들에게 있어서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노동력을 쇄신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내밀한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민중들은 이를 스스로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동화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표시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왕과 달리 물질적으로 빈곤했고 사회적 존중도 받지 못했던 일반 민중들은 이러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더 치열한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마침내 자기 방과 그 방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 19세기 프랑스의 한 노동자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방을 얻는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고통의 무게를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열쇠는 굉장한 것이다. 내가 열쇠를 갖고 집세 영수증을 받았던 날, 나는 문들이 저절로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면도를 잘하고, 눈을 크게 뜨고, 얼굴에는 생기가 있고, 내 옷은 깨끗했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471쪽)
또한 유럽 민중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로 인해 한국 민중들이 겪어야만 했던 슬픈 과거를,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까지도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부터 쫓겨나 사지로 내몰리고 있는 이들의 고통스러운 현실 역시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을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이야기로만은 읽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이렇게 한 개인의 삶을 특징짓는 다양한 조건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방은 실존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이 녹아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페로는 공간이 수행하고 있는 실존적이면서 형이상학적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을 담고 있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이 1974년에 발표한 <공간의 종류(Espèces d'espaces)>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구절을 빌려 방의 존재가 지닌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되살아난 방의 공간은 가장 덧없고, 가장 하찮은 추억들을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생생하게 만들고, 다시 가져오고, 활기를 불어넣는 것으로 충분하다."(630쪽)
잠시 머물다 떠난 여행자이든 안정된 보금자리를 찾아 온 가족이든, 미래를 향한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어린이든 성큼 다가 온 죽음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병자이든, 힘든 하루의 노동으로 인해 고단해진 몸을 편히 뉘일 수 있는 안식처를 찾길 원했던 노동자이든 창조적 정신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고요한 작업실을 원했던 작가이든 간에, 그곳을 거쳐 간 모두가 "방의 무용담에 등장하는 배우"가 되어 자신만의 실존적 흔적을 새겨 놓게 되는 공간인 방(17쪽). 그렇기에 우리는 방에 대한 이야기를, 그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냈던 모든 개인들의 구체적인 실존에 대한 생생한 증언으로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방의 역사>는 우리가 저마다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법한 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앨범이자, 삶의 다양한 형태들이 만들어 낸 다채로운 문화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기행문과도 같은 책이다.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이 지닌 의미가 과연 무엇일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역시 제공하는 의미 있는 책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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