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가는 나체의 여인'이 괴…물?!

[프레시안 books] 이연식의 <괴물이 된 그림>

사람마다 음식 취향이 제각각이듯, 매혹당하는 단어도 제각각일 것이다. 나는 '여유, 낭만, 무드' 등으로 묘사되는 것에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 반면, '성실, 금욕, 헌신, 절제' 등으로 설명된 것에는 자석처럼 끌린다. '괴물'이란 단어도 마찬가지. 나에게 '괴물, 야수, 요괴, 유령, 초능력'과 같은 말은 엄청나게 매력적이어서, 영화든 만화든 '괴물'과 관련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책을 읽기 전 <괴물이 된 그림>(이연식 지음, 은행나무 펴냄)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을 때, 괴물을 좋아하는 나는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들이 매우 시시했다. 지금까지 많은 예술작품을 보면서도 괴물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해야 맞겠다. 이제와 보니, 예술과 괴물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괴물을 무엇이라 생각해 왔던 걸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괴물을 뭐라고 생각하지?

▲ <괴물이 된 그림>(이연식 지음, 은행나무 펴냄). ⓒ은행나무
우선 저자는 '괴물'에 대해 "우리가 경계해야 할 끔찍스런 상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대상'이 아닌 '상태'? 지금까지 나의 관점에서 괴물은 대상이었음을 인식하며, 일단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 봤다. 저자는 괴물을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본다. 사람은 '괴물이 아닌 존재'이며, 괴물은 '사람다운 사람', '진정한 인간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괴물은 사람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문제가 복잡해졌다. '상태'라는 변수 때문에. 즉 괴물을 사람과 무관한 하나의 대상이라고 설정하면, 괴물을 타자로 두고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 두려운 괴물을 방어할 전략을 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상태에 따라 사람도 괴물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괴물은 더 이상 관찰 대상일 수 없다. 성찰 대상이 된다. 즉 상태에 따라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괴물이 되는 상태'를 반성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상태에 짓눌려 괴물이 된다는 의미이다. 괴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괴물을 만드는 상태'를 알아야 한다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저자는 '사람이자 괴물'인 인간을 통해 '괴물이자 사람'에 접근한다. 괴물적 '상태'를 그린 그림을 소개한다.

책은 하나의 장 안에서도 미술사에 놓인 위치가 다른 다양한 그림들을 함께 등장시킨다. 예를 들어, 제 3장인 '악마의 형상' 중 '악마의 모습'이라는 소제목 아래 1300년대에 그려진 두초의 <산 위에서 악마가 유혹한다>, 1500년대 브뢰헬이 그린 <반란 천사의 추락>, 1800년대 초반 블레이크가 그린 <사탄이 반란 천사들의 의지를 북돋다>, 1800년대 중후반 도레가 작업한 <실낙원>이 나온다. 수백 년의 간격을 둔 시대마다 '악마'를 어떻게 그려왔는지 한 눈에 꿰어진다. 하지만 앞서 저자가 괴물을 '대상'이라기보다는 '상태'로 보고 있음을 되새기지 않으면 "악마가 곧 괴물이라는 의미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머릿속 악마와 괴물은 이미 전혀 다른 두 가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의 관점대로 괴물이 '상태'에 가까운 것임을 감안해도, "악마가 그려진 그 시대적 상태가 괴물이라는 것일까 아님 악마의 상태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것일까?" 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저자는 제 6장 '잃어버린 형상'의 '사진 속에서 잃어버린 형상'이라는 소제목에서도, 터너의 <비, 증기, 속도>-모네의 <생 라자르 역>-제리코의 <엡섬의 경마>-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의 여인>를 따라가며 사진기술이 발달하며 나타났던 회화적 변화를 설명한다. '괴물'을 '상태'로 이해하지 않으면, "이 그림들이 괴물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 터너, <비, 증기, 속도>(1884년, 캔버스에 유채, 91x121.8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마레, <육체 이동에 관한 연속촬영 연구>(1886년)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의 여인>은 이러한 연속촬영 사진의 영향을 받았다. ⓒ은행나무 제공

이처럼 저자가 그림을 통해 '괴물'에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포괄적이다. 가슴에 눈이 그려진 나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묘사한 괴상한 인물, 칸딘스키 작품 속의 용, 고야의 거인 등이 모두 괴물로서 설명된다. 카프카의 <변신>이나, <오딧세이>의 사이렌이나, 뭉크의 <흡혈귀>도 모두 괴물이 된다. 말하자면 예술작품 속 괴물들은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일 만큼 '괴물'에 대한 인상을 강하게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들은 앞서 언급한-악마와 괴물은 무슨 연관이 있으며 사진 기술의 발달과 괴물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질문들과 마찬가지로 '연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저자가 선택한 그림들이 과연 괴물이라 할 수 있을까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이는 '괴물'을 이해해 온 지금까지의 입장을 재고해 보게 한다. 아마도 나의 관점에서 괴물은, 내 바깥에 위치하며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타자'로서의 괴물이었다. 관찰 대상으로서의 괴물이었던 것이다. 괴물은 공포와 착종된 형상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대상적 존재였던 것이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 등장하는 '괴물'이, 이 세상 모든 괴물의 대명사처럼 이미지화 되어 있었던 셈.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괴물을 생각해 보니, 사실 괴물이라는 것이 머릿속 이미지와는 달리 시각적으로 매우 괴기스럽거나 인간과 엄청나게 다른 대상이 아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괴물'의 형상을 추적하듯 많은 그림을 끊임없이 제시하지만, '상태'로서의 괴물이라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기 때문에 형태적인 것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괴물'을 제시한다. 관계 설정이 되어야만 등장하는, '관계 속 괴물'을 마주하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림 속에 단독으로 그려져 있다 하더라도 결국 저자에게 '상태로서의 괴물'은, 인간과의 역학관계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인 것이다. 관계가 없다면 괴물은 괴물이 될 수 없고, '상태'가 변화하면 괴물도 괴물이 아닌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될 수 있는 '괴물'이란 존재는 시시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몸을 경직되게 만드는 오싹함이 있다. '누구도 괴물처럼 보이지 않지만 모두 다 괴물인 세상'에서는, 모두 함께 물리쳐야 하는 적으로서의 괴물이 그리워지고 대처가 쉬워지는 법.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다양한 그림을 통해 '상태'와 '관계'로 직조해 내는 괴물은, 인간의 오랜 역사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늘 인간과 공존해 왔음을 상기시킨다. 수백 년 전 그림 때문에 아니라, 저자가 괴물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그렇다.

이 책은 '네가 알고 있던 괴물은 괴물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괴물은 늘 도처에 널린 대상임을 집어낸다. '괴물'을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해 온 시각의 편협함을 일깨운다. 허나, 아무리 봐도, 움직이지 않는 그림 속 괴물은 전혀 겁나지 않는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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