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명 배우, '좌빨' 변신한 이유?

책 이야기에 앞서 일본 '운동 판'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2012년 12월 일본 진보 진영에서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일본의 좌파들이 선거 전술이라는 이름 하에 공식적으로 한 진영에 결집한 것이다.

반세기간 폭력은 물론 때로는 살인마저 자행된 우치게바(内ゲバ-내부를 뜻하는 우치(内)와 독일어 게발트(Gewalt)의 합성어, 내부 투쟁을 뜻한다)의 역사를 상기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 가운데에 선 무소속 후보의 이름은 '야마모토 타로'다. 그는 '지금은 혼자 당(いまはひとり党)'의 유일한 당원이자 당수를 자처하며 반 원발(反原発-반 원자력 발전) 제 세력의 지지를 업고 출마했다.

후보의 직업은 배우이며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가 반 원발 활동가를 자처하게 된 것은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였다. 연예계에서 거리로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시위에 참가하거나 각 대학에서 열린 강연회에 연사로 초청받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고, 7월에 있었던 사가 현 현청 돌입사건을 이유로 사가 지검에 고발당하는 등 직접 행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가 출마한 지역은 도쿄 제8선거구로 자민당의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5선째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던 곳이다. 이시하라의 아버지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로 중의원 선거가 열리기 한 달 전 사임하기까지 4선 도지사였다. 반 원발 세력 이하 좌파들과 아마추어 정치 신인은 도대체 어떻게 뭉치게 된 것일까? 그리고 이런 곳에 출마하여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일까?

두 물음에 대해 확답은 아니어도 근사치를 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스트리트의 사상>(모리 요시타카 지음, 심정명 옮김, 그린비 펴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스트리트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그것은 점과 점을 잇는 선의 사상이며 다양한 공간의 점을 횡단하는 곳에서 탄생한다. 둘째, 구체적인 행동이나 실천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하나의 사상이다. 셋째, 대부분 익명의 사상이며 복수의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상이다. 넷째,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음악이나 영상, 만화 혹은 댄스 문화 등 비언어적인 실천을 통해 표현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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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리트의 사상>(모리 요시타카 지음, 심정명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저자는 스트리트의 사상이 무엇보다 주류 문화, 특히 소비주의와 대항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책은 1980년대의 일본으로 돌아간다. 현재의 '사운드 카'라는 독특한 시위방식과 80년대 하위문화와의 접점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마흔 살 전후 사람들의 청년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80년대 일본의 중심 사상이었던 뉴 아카데미즘과 인디 문화는 이윽고 버블 경제의 붕괴와 맞물려 시스템의 구조조정에 휘말린다.

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식인, 논단 잡지, 대학이 급진적인 사상을 제도화하는 과정을 그리고, 이 대항으로써 탄생한 다양한 도시 속 운동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급진성이 후퇴하고 이데올로기적인 제약이 느슨해지는 과정 속에서 지금껏 정치와는 무관했던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정치'를 발명하기 시작한 시기라고 진단한다. 특히 1995년 발생한 옴 진리교 사린가스 사건이나 한신·아와지 대지진에 따라 발생한 정치적 실험들을 주목하여 검증한다. 그러면서 페이지는 2000년대로 넘어온다.

마지막으로, 실체를 갖추기 시작한 문화정치 운동이 2008년 리먼 쇼크 이후의 경제 위기 속에서 매스컴과 논단의 주요 소재가 되는 풍경을 묘사하며 이후 '스트리트의 사상'의 전망을 점친다.

저자는 서두에서 '스트리트의 사상'은 기존의 좌파와 구별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저자는 노숙 노동자 천막촌에 놀러온 청년들이 스스로를 사요(サヨ-의역하면 '꼴 좌파' 혹은 '좌빨')라 칭하는 것을 보며 그들에게서 '우리는 좌파다/좌파가 아니다'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본다. 또한 이를 좌파라는 말에 대한 재해석, 그리고 좌파라는 말을 보수화하는 미디어나 논단으로부터 되찾으려는 시도로 해석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좌파가 우치게바와 중앙 정치에서의 패배로 동력을 상실하고 도심부 바깥으로 밀려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관료화된 노동조합의 기업별 노조 운동과 지자체 의석으로 시스템에 관여할 수 있는 폭은 매우 한정적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요 이십 년 전통적인 좌파의 시도가 빠짐없이 실패"한 사이에 텅 빈 도시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사람들은 빈민, 청년, 학생, 프리터들이었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의 사상은 파편과 파편을 잇는 공간적인 거점을 기반으로 조직화를 꾀했고 마침내 일본 우파의 최정점 선거구에서 민주당과 공산당을 큰 표 차로 누르고 2등으로 패배했다. 장장 20년짜리 사업이었다.

선거 활동에 결합한 좌파의 면면은 매우 다양했다. 유세 방식에서부터 동선까지 '스트리트의 사상가'들이 중심이 되어 계획을 짰고 반 원발 시민들은 물론 사민당, 노동조합,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의 각 분파들,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까지 유세에 참가했다. 선거 활동의 주도권은 도시의 공간과 정치를 구석구석 아는 사람들의 몫이었고 전통적인 좌파들은 이 "대중"들 앞에서 서로간의 역사를 떨치고 참가해야만 했다. 무소속 야마모토 타로의 선전과 선거 기간에 보여준 '스트리트'의 퍼포먼스는 반 원발 공약과 더불어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고 그들의 공식적인 정치 세력화를 천명했다.

한국에도 여러 결의 인디 문화가 있고 나름의 정치적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도시 속 빈민, 청년, 여성, 프리터 등이 주체가 되어 거점을 구축하고 활동을 하고 있다. 노동절에 사운드카도 몬다. 그러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지금보다 더한 사상적 암흑기가 있었고 그 시기가 끝남과 동시에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신자유주의가 밀려들었다. 이렇다 할 논의의 시간조차 없이 시스템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따라서 사상적 기반을 변용할 제도화된 아카데미즘조차 성립되지 못했다.

홍대와 명동에서 벌어진 수차례의 철거 투쟁과 더불어 자립음악생산조합으로 대표되는 인디 뮤직의 성장과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슬럿워크, 알바연대 등 단체들의 조직은 성과라고 볼 수 있으나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좌파들이 던지는 비판의 강도도 만만치 않다.

나는 때때로 일본과 한국의 노동조합 및 사회단체에서 한-일 통·번역을 한다. 현안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뒤풀이 등 편한 자리로 돌입하면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일본은 한국의 현장 행동(現場行動)을 부러워하며 한국은 일본의 규모에 의한 협상력을 부러워한다. 서로 주고받는 답도 정해져있다. 일본 측 활동가는 협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매우 적다며 안타까워하고 한국 측 활동가는 아무리 현장 행동을 해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는다며 탄식한다. 어느 쪽이든 결국 머릿수의 문제다. 이 부족한 머릿수를 어디서 채울 것인가. 책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말한다.

"2000년대 스트리트의 반란은 명인기예를 몸에 익힌 포스트모던 프롤레타리아트가 명인기예를 국가나 자본에 종속시키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구사함으로써 일어났다. 기업 이익을 위해 쓰이던 사람, 사물, 정보를 조직하는 노하우는 자본을 비판하는 운동을 조직하는 데 유용되었다.

뮤지션은 레코드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들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곡을 짓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는 기업이나 출판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디자인을 시작했다. 아티스트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모두는 알기 쉬운 예인데, 포스트포디즘 노동은 이러한 것들이 비물질적이고 신체적인 노동이기 때문에 정치적 자원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종종 국가나 자본에 빼앗기곤 하는 자신들의 창조력을 되찾는 시도이자 비물질적인 생산수단을 손수 관리한다는 커다란 변혁을 향해 가는 첫걸음이다."


사운드 카는 시끄럽기만 하고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담기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처음 보는 시끄러운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 중 어떤 이는 흥미를 보인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몇몇은 사운드 카 주변으로 모여든다. 그렇게 거리의 정치는 시작된다.

그 시작점은 사운드 카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고 우스꽝스러운 퍼포먼스나 댄스일 수도 있다. 서로 관심이 가는 매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공통의 요구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모이게 된 매개를 앞세워 행진한다. 집세 비싸다 내려줘! 나 회사에서 잘렸어, 흑! 인간적으로 수도랑 전기랑 가스는 공짜로! 기본소득 줘! 엄마 미안해! 연애하고 싶다! 탈 원발!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정치 세력화가 되니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희망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아니, 소수의 선수들은 그 희망을 계획하고 꾸준히 운동했다. 다 떠나버린 텅 빈 도시 속 작은 삶들을 모아서. '스트리트의 사상'은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연구자의 눈으로 매우 자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사상의 유입과 변용, 거점과 거점간의 연결, 그리고 이를 대중 뒤에 숨어 보이지 않게 주도했던 선수들이 과연 누구인지까지 세세하게.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한국의 누군가는 "긴 겨울이 온다"고 했다. 중의원 선거 며칠 후 이 말을 일본의 활동가에게 전했더니 눈을 감으며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참여했던 선거 활동을 돌이키며 말을 이었다.

"젊을 적에는 서로 죽이지 못해서 화가 났던 인간들을 수 십 년 만에 늙어빠진 채로 만나버렸어. 얼굴은 알겠는데 머리가 굳어서 그 놈 이름이 생각 안 나더라. 그래도 나는 노조 일 계속 할 거야 흐흐. 그런데 아무튼 민주당 바보 새끼들 다 쥐어터지는데 그 8구에서 25퍼센트가 나올 줄은 정말. 이상한 옷 입고 춤추는데도. 이젠 나도 몰라. 으허허."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실없어서 웃었는데 책을 읽은 후 대화를 돌이켜보니 다른 의미로 한 번 더 웃게 됐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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