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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일제 강점기 한국 영화사'가 '식민지기 조선 영화'로 연구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은 2004년 이후 조선 영화의 실체인 필름들이 연이어 발굴, 공개된 상황에서 촉발된 바가 크다. 즉 이전의 일제 시기 한국 영화사 연구가 조선 영화 텍스트를 연구할 필름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과 감독을 중심으로 한 영화(film)의 역사에 몰두하는 아이러니한 연구 경향을 보였다면, 무성 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년) 등 극영화만 아홉 편 이상 발굴된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조선 영화의 전체상, 시네마(cinema)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전자는 우선 정리부터 해야 한다는 한국 영화사학자들의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고, 후자는 실제 영상을 보게 되니 할 얘기도 더 많아진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식민지 영화 연구 붐이 일고, 연구 지형에 간학문적(間學問的) 활력이 추동된 것 역시 필름 발굴의 후속 성과임은 분명하다.

▲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김승구 지음, 책과함께 펴냄). ⓒ책과함께
김승구의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책과함께 펴냄)도 이러한 새로운 연구 경향의 흐름 속에 배치된다. 저자 역시 '프롤로그'를 통해 "이제 영화 연구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영화사라는 지극히 한정된 영역에서 벗어날 때(11쪽)"라며 당당히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2009년에 처음 기획했다는 '지은이의 말'에서 읽어낼 수 있듯이, 이 책은 이미 관련 연구가 꽤 진행되었기에 다소 늦게 도착한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고, 그럼에도 여전히 식민지 조선 영화/문화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저술의 가치를 동감하게 만드는 두 결을 아우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 영화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과 인문학 독자들을 모두 만나고 싶다고 희망한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일별했을 때의 느낌은, 본격적인 연구서라기보다 대중 독자까지 포섭하려는 교양서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반면 내용을 무겁지 않게 풀어냈다고 해서,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까지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학제의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의 학술 논문들을 저본으로 삼았을 것이므로, 당연히 논지의 전개나 세부 주제들에 있어 연구자들의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 있다.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이 책이 영화 관객 즉 수용자 연구를 표방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갑다. 식민지 조선 영화 연구자인 나도 닥친 연구들을 진행하다 보면 늘 미루어 놓게 되는 것이 바로 조선 영화의 극장 공간, 영화 관객 같은 영화 문화에 대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서구 근대의 총아인 영화 매체에 식민지 조선인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이들은 어떤 계급의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었을까. 또 상영 공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을까. 무성 영화가 단 한 번도 무성 영화인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변사석은 어디였고, 악단은 어디에 몇 명이나 앉아 있었을까. 더 나아가 영화표 값은 얼마였고, 이는 지금으로 치면 어느 정도의 지출에 해당할까 등등 구체와 실체에 대한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이러한 영화 문화 전반에 관한 연구 주제들은 거시적인 주제들에 밀리기 십상이어서, 동시에 문헌상으로 규명되기도 쉽지 않아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궁금증으로만 남겨왔던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이러한 주제들을 미시적인 차원에서 돌파하는 것에 있다. 저자는 당시의 풍경을 전하는 사료들을 찾아내 인용하고,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인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일간지에 극장 음악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독자 글을 통해 악대의 연행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신문 영화 광고를 모아 입장료를 분석하고 당시의 경제 규모와 연결시켜 스스로 던진 질문을 해결한다. 당시 설렁탕 한 그릇이 10전, 공무원과 교사 월급이 30~40원 정도였는데, 관람료를 최저 10전에서, 보통 1원, 최고 3원까지 받았음으로 '서민에겐 비싼 영화 관람료'였다는 분석이다.

또 이런 거다. 기존의 학술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1934년 공포한 '활동사진영화취체규칙'을 영화에 대한 전방위적인 통제가 강화된 측면에서 다루었다. 반면 저자는 영화관의 환기와 채광 조치 같은 공중 보건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는 지정 좌석, 영화관 냉난방 같은 구체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저자 역시 "정확하게 밝혀내기 어렵지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결론 내리기의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영화 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상상력을 통해 부족한 사료의 틈을 메우고 용감하게 서술하는 것이 오히려 미덕임을, 다시 한 번 통감하게 하는 대목들이기도 하다.

한편 일국사적 프레임을 벗어나 비교 영화사적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영화 관객의 탄생' 챕터 등지에서 소개된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영화들에 대한 당시 비평문과 저자의 분석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다.

저자는 앞서 소개한 같은 챕터에서, 1926년 공포된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과 1934년 공포된 '활동사진영화취체규칙'을 정확한 역사적 근거 없이 서술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처럼 최근의 영화사 연구나 저작들을 엄밀히 참고하지 않고 서술하고 있는 부분들이나, 이로 인해 몇몇 보이는 오류들은 이 책의 아쉬운 점일 것이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한국 영화로 꼽히는 나운규의 <아리랑>(18쪽)"이라는 언급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고, "<아리랑>으로 일어난 최초의 조선 영화 붐과 최초의 발성 영화 <춘향전>에서 시작되어 일제 강점 말기에 영화 통제가 시작된 기간까지를 제외하면 대중에게 조선 영화는 낯선 대상이었다(86쪽)"는 구절도, 식민지 조선의 관객이 외국 영화에 경도되어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전자는 그간 영화학계에서 한국 영화 기원의 논쟁이 활발했음을 감안한다면 설명이 더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고, 후자는 과연 저자가 언급한 시기가 균질함에 있어 의미가 있을지, 그 시기를 제외한다고 해서 조선 관객에게 조선 영화가 과연 낯선(uncanny) 대상이었을지, 그보다는 일본 영화, 할리우드 영화와는 또 다른 결의 오락이지 않았을까 싶은 거다.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고전적 일본 영화' 개념을 주장한 <니폰 모던-일본 영화 1920·30년대(Nippon Modern: Japanese Cinema of the 1920s and 1930s)>의 저자 미쓰요 와다-마르시아노(Mitsuyo Wada-Marciano)를 중요하게 언급하면서 각주나 학문적 배경 설명이 전혀 없는 점, 민족주의 리얼리즘이 아닌 대중적 장르 영화로서의 나운규 영화에 대한 재평가, 즉 최근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극을 받으면서도 모방이 아니라 자기 색깔을 찾아가지 못한 점에 나운규 영화의 특징과 한계가 있다(115쪽)"며 간편하게 결론을 내리는 점도 아쉽다.

1927년 교토의 닛카쓰 다이쇼군(日活大将軍) 촬영소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연출한 심훈을 영화비평가로만 본 것, 발성 영화 <춘향전>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사진 캡션으로 "일본인 극장 경영자 하야카와 고슈가 각색·감독한 <춘향전>(131쪽)"이라고 단 것도 오류다.

"기존 한국 영화사 연구는 일제 강점기 조선 영화를 둘러싼 문제, 즉 조선 영화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점들이나 영화 제작과 정책의 측면에 관심이 편중됨으로써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측면, 즉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대중에게 전달되었으며 그들이 영화를 어떻게 수용하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목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86쪽)

이는 저자의 집필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 부분이다. 한편 이 대목에서 이 책의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되새길 수 있다. 바로 저자 본인의 역사적 관점과 정체성을 밝혀줬으면 하는 것이다. 연구자의 역사관을 담아내는데 있어 '일제 강점기'와 '식민지기'라는 용어는 전혀 다른 그릇이다. 식민지 조선의 영화 문화가 얼마나 풍부했는가를 다루는 이 책에서 '일제 강점기'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면, 미리 전제해 주는 게 옳다. 나는 서구 모더니티의 산물, 영화를 식민지 조선이 받아들이는 역동적인 과정에 있어 저자의 "식민지적 후진성(66쪽)"이라는 표현으로만 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식민지 조선에도 '영화 청년'이 있었고, 그들이 어떻게 영화에 다가갔는지, 경성의 극장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언론은 서구 영화를 어떻게 홍보하고 광고했으며, 비평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식민지 조선 영화의 풍경이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책의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이 책이 야심차게 의도한 한 가지 문제는 여전이 풀리지 않는다. 식민지 조선의 극장에 앉아 있었던 영화 관객은 대체 어떤 면면의 사람들이었을까. 과연 식민지기 대중문화를 누린 도시 대중은 얼마나 존재했던 것일까. '일제 강점기'의 민중들을 '시네마 천국'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을까.

"20세기 초반 대중문화의 총화로 군림한 영화가 식민지의 조선 대중을 어떤 방식으로 대중문화의 수용자이자 주체로 형성시켰는지를 중점적으로 탐색(255쪽)"한 이 책의 저자가 "일제 강점기의 경우에 수용자 연구라는 그물망에 걸리는 수용자 대부분이 상당한 학력을 가진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 책이 추구한 방향에서 결정적 한계(257쪽)"라고 고백하는 것에, 독자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제시한 식민지 조선영화의 풍경은 절대 과소하지 않다. 대중 독자들은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의 영화 버전을 만난 것에 반가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사 연구자들은, 이제 이 책이 제시한 길에 고마워하며 따라나설 차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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