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그만! 대나무 지옥에 폭탄을 던져라!

[출판 생태계 살리기] 10월 27일, 책을 들고 모여!

출판사는 사장의 가오를 위해 존재하나?

일 여섯 시간, 주 서른 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출판사가 있다. 매력적인 근무 조건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발표가 노동조합이나 직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오너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면? 새로운 시도와 가치를 만드는 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절차적 정의는 정치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출판사는 오너 1인의 '가오'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개인 사업자나 소규모 사업장으로 이루어진 출판업계는 전문적인 경영보다는 오너의 독단적인 결정이나 임원의 실무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을 둔 판단으로 회사가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출판 노동자들이 업계 전반에 절망하게 되는 순간은 여기서 출발한다. 게다가 심지어 그런 사장들도 과거에는 월급을 받는 편집자거나 영업자였다.

책만 좋으면 뭐하나?

업계에서 자주 나오는 강도 높은 비판의 대상은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와 영세 출판사들이다. 이것은 대형 출판사들이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다는 것이 아니다. 소위 메이저 출판사는 월급 등 지원 대우 면에서 다른 식의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영세한 대부분의 출판사 직원들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높은 근무 강도를 수행해야 한다.

좋은 가치를 지닌 책들을 만들고 있음에도 정작 당사자들은 그 괴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책만 번지르르한' 출판사의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좋은 책을 낸다고 알려져 있으나 내고 있는 책과 너무나 다른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또 다시 좌절한다. 입사 하루 만에 취업이 취소된 교양인 사태 때 트위터에서 출판사 출간 도서 리스트가 공개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노동자는 상품에게 소외당한다지만, 출판사에서 많은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들고 팔아야 하는 텍스트에도 소외를 느낀다.

워낙 책을 좋아해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조건을 견디고 일하며 그나마도 지속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잘리거나 불합리한 처우를 받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빌미가 되어 당사자는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파다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업계를 떠나거나 떠날 생각을 한다.

현재 출판 인력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대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SBI 출판 예비 학교 졸업생들의 취업 현실만 봐도 1년 내에 업을 떠나는 이들의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을 출판 인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업을 떠나는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위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판 노동자를 힘들게 만드는 세 가지 문제

출판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첫 번째 문제는 개별 출판사의 불합리한 운영이다. 영세한 사업장, 경영자로서의 마인드가 없는 사업주가 회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직면하는 문제가 많다. 기실 사람을 뽑으면 안 되는 출판사가 사람을 뽑고 생각보다 직원의 생산성이 낮으면 자르는 일을 반복한다.

영세한 출판사가 너무 많다. 출판은 특히 열정 노동을 통한 생산성을 기대한다. (기획만 좋아도 책이 터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는 이야기다) 늘 터지는 책을 낼 수 없는 편집자의 생산성은 항상 회사의 기대보다 언제나 낮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직원은 잘리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 경우는 너무나 쉽게 대체 가능하다. 지망생이 넘쳐나는 현실이 아닌가!)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대체 인력은 연차가 낮거나 신입에 가까운 이들이다. 이들은 싸다. 이것저것 시키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느 업계나 그렇듯 사장 자체가 '사이코'인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업계가 좁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누가 어떤 사유로 회사를 관두었는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면 그 사장은 이력서에 있는 회사에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는 것은 이미 모든 출판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현실이다. 회사에서 좋지 않게 퇴사한 경우라면 경영진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이런 이야기는 업계 안에서 그 사람에게 꼬리표가 된다.

노동조합이 생기면 달라질까? 현재 노동조합이 들어선 출판사들을 보면 솔직히 다른 출판사와 다르게 운영된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정착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종국적으로는 노동조합이 각 사업장에 들어서서 사측과의 협상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아마 이를 위해 다들 노력을 하고 있고 최근의 시도들은 상당히 의미 있게 보인다.

출판업 내의 구성원들은 각기 너무나 다른 요구 사항과 욕망을 가지고 있고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산업별 노동조합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장 문학동네와 교양인 출판사 직원이 직면하는 문제는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각 사업장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본적인 출발이 될 수 있다. 회사 내에 주간 급이나 편집장이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닌 최소한의 협의체나 테이블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출판 노동자의 애환은 그 직업적 특성에서 나온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나무숲 운동'(감히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다)은 '출판사X'로 촉발된 '출판사옆대나무숲' 트위터 계정으로 시작되었다. 대나무숲 운동 초반에는 어느 서점의 직원이 예쁘다는 영업자들의 하소연(?)도 등장했지만 대체로 이 계정을 애용한 것은 출판사 편집자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출판사 직원=편집자'는 아니다. 많은 출판사에서 편집부는 전체 구성원의 반을 넘거나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독 편집자들의 불만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사실상 업계 게시판 역할을 해오고 있는 '북에디터' 사이트의 게시판을 들어가면 편집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익명 게시판에 글이 주로 올라오며 대부분이 업계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어조를 담고 있다. 더러는 사장을 욕하기도 하지만 많은 글들이 출판의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출판 편집자를 위한 유일한 플랫폼'은 지망생들의 문의 글과 늘 반복되는 이야기들로 사실상 폐허가 되어있다. 자조적인 한숨이 나오지만 북에디터는 그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전자책 회사인 북토피아 서버에 매달려 있는 형태이다. 순수한 운영자나 주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그저 버티고 있을 뿐이다. 꼭 출판계와 같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출판사의 구조적 문제들을 떠안게 되는 것은 '편집자'라는 직종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생산성에 대한 책임은 담당 편집자에게 묻는 경우가 많으며 저자 관리도 기획도 편집자의 몫이다. 게다가 편집자는 저자의 요구와 회사의 요구에 늘 치여 산다.

출판 트렌드 자체가 해외 빅 타이틀과 국내 스타 작가에 의존하게 되면서 (사실상 이런 책들만 팔리면서) 편집자는 더더욱 '을' 마인드를 지니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오죽하면 "사장과 저자의 심부름꾼"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저자들은 필자 담당 편집자가 마치 매니저와 같다고 말한다.

한편, 출판계에는 이런 저런 모임이 있다. 일단 사장들 모임이 꽤 있다. 또 출판사 영업자들은 끊임없이 교류를 한다. 온라인 서점 미팅을 들어갈 때 영업자들은 보통 2~3명씩 함께 다니며 동선을 이룬다. 미팅을 대기하는 시간에도 서로 인사를 나누며 담배를 피우고 근황을 묻는다. 술을 좋아하는 영업자들답게 분야를 막론한 술자리들이 자주 열린다. 따라서 영업자 또는 마케터들은 어디에 자리가 나며 조건은 어떤지 어디가 어떤 책들을 준비하는지 업계 전반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편집자는 어떤가? 교류가 없기로 유명하다. 게시판에만 살아 있다. 트위터 계정에서만 말한다. 트위터에는 정말 편집자가 많다. 나오지 않고 모일 일도 없으며 교류하지 않는다. 자조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만나야 한다, 이야기해야 한다,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 떠다닌다. 끼리끼리 교류하는 편집자 네트워크가 있는 경우도 많지만 편집자에게는 저자 스케줄이나 네트워크가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어서 다른 모색을 하기에는 이미 지칠 수 밖는 직업적 현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다면 분명 훨씬 긍정적인 모색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 출판사의 공유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 있을 뿐이다. 어디가 얼마나 착취를 하는지, 어떤 회사의 사장이 사이코인지 어디가 구조적으로 형편없는 경영을 하고 있는지 이것은 반드시 교류가 되어야 한다. 공적인 문제 제기 방식이 당분간 어려울 수밖에 없다면 과도기적으로 느슨한 연대체를 꾸려야 한다. 대숲의 글들을 봐도 이 점은 많은 편집자들이 공감하는 현실이라고 보인다.

세 번째 문제는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사회로 변해가는 현실에서 출판은 뚜렷한 사양 산업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출판업 앞의 두 가지 문제의 원인이 되는 본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봐야할 콘텐츠가 넘쳐나고 공짜로 접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불러낼 수 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출판사는 경영이 어렵고 편집자들은 벼랑 끝으로 몰린다.

▲ <출판 생태계 살리기>(변정수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출판 생태계 살리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의 저자 변정수는 이 부분을 주목한다. 그는 출판이 공공성을 획득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편집자나 출판 노동자 자신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이런 의문을 던져본다. 기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 이 업계의 종사자들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면 그것은 '사장'들이 누구보다 먼저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닐까.

거기에 누구보다 가장 큰 밥그릇이 달린 것은 바로 사장들이다. 게다가 이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이 이것뿐이라면, 출판 노동자들의 투쟁의 목적과 대상은 개별 사업장이 아닌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최우선 당면 과제라면 '사장들'과 편집자들이 연대를 못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낙하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출판문화 살리기를 외쳤던 행사에서 직원들은 '동원'된다.

트위터에서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 해시 태그를 이용한 책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알라딘 인문 MD 박태근의 경우, 책을 팔아야 하는 업자 마인드와 조금 결이 다르다. 그는 끊임없이 타 분야와 전체 도서 시장에 대한 (비교적 사견을 담지 않은) 책 정보를 끊임없이 트위터를 통해 날린다. 그에게 왜 그것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소명'이라 답할지도 모른다.

과거의 블로거들의 자신의 식견을 자랑하기 위해서 책 리뷰를 했다면, 이제는 책 리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블로거들은 철저히 의도를 가지고 있다. 사실상 장사를 하기 위해 하는 이들이 있고 한편에서는 자사 책을 팔기 위해 파워블로거가 되어야 하는 출판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실제로 꽤 괜찮은 취업 우대 조건으로 알려져 있다.) 책을 사랑하는 출판인들은 어쨌든 책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며 사람들이 책을 읽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대숲에서 나와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

욕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글을 써서 출판업계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실, 정말 출판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지난 13일에 열린 <출판 생태계 살리기> 읽기 모임에는 스무 명에 가까운 편집자들이 참석했다. 좋은 이야기를 들으러 오기보다는 쓴 말들을 하기 위해 모인 모임이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왔다는 사실에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2차 모임은 바로 이 글이 업데이트되는 다음 날, 10월 27일 토요일이다. 해당 도서 읽기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책은 맥락일 뿐이다. 책을 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혹은 저자에게 동의할 수 없는 지적에 대해 따져 물어도 좋을 것이다. (나 역시 따져 묻고 싶은 것이 많다.)

나는 여기서 이런 출판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느슨한 연대를 제안하고 싶다. 물론 차라리 노동조합에 힘을 보태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나본 편집자나 출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자연스럽게 생긴다면 적극 함께할 이들이지만 피차 빤한 업계에서 개별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꾸리기보다는 대숲의 방식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대나무 숲이 털렸다. 매일같이 새 글이 올라왔을까 기대해보지만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올해는 너무나 많은 출판 노동의 이슈가 탄생했다가 사라졌다. 나는 사실상 이 책읽기 모임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모임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이만한 기회도 다시는 없을 것 같다. 그냥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나는 대숲이 현실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마미야 가린의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김미정 옮김, 미지북스 펴냄)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단을 바꾸어 글을 마무리한다. 꼭 뵙고 싶다. 출판 노동자 여러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살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저 살아가는 것. 그것이 위협받고 있는 업계에서 누가 제대로 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살게 해 달라. 가능하면 부당해고 같은 것은 당하지 않고, 계약직이 되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고,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업계를 떠나지 않고, 그리고 가능하면 행복하게."

ⓒ프레시안

추신.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으셔도 좋으니 참석이 어려우신 분들은 rumeeek@gmail.com로 메일을 주셔도 좋겠다. 꼭 뵙고 싶은 X님과 대숲 계정 생성자 분께 덕분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마 그건 열정 노동으로 굴러가는 많은 업계 노동자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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