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하와이로!" 그 뒤에 숨은 추악한 욕망은…

[기고] 구럼비를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논리학에 반대해 귀납적 논리학을 내세운 프랜시스 베이컨은 단순한 근세 철학자가 아니다. 그는 강한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지만 실각도 경험했다. 또 재기를 위해서 그의 재능과 학문을 온전히 내바쳐야 하기도 했다.

베이컨이 생존했던 당시의 정치권력은 공유지를 수탈했고 공유지에서 쫓겨난 민중들을 떠돌이로 만들어 선원, 하인, 성노동자, 신대륙 버지니아의 식민 농장을 위한 노동자 등이 되게 하였다. 그러한 권력에 베이컨이 헌납한 학문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의 학문의 배경에는 권력과 공모해야만 했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음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역사적이지 않고 17세기적 시대 맥락에서 베이컨의 학문에 접근하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를 성찰하기 위해서 그 연원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해 가는 일은 오히려 실천적인 자세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베이컨은 정치적 실각 뒤 재기를 위해 '어떤 성전을 다루는 공론'이라는 논문을 집필했는데, 거기서 그는 파멸해야 마땅한 일곱 경우를 든 다음 이렇게 말한다.

"비록 훨씬 엄청난 내용으로 부각되어야 하겠지만, 그대로도 그런 것이 거인들과 괴물들 그리고 외방의 압제자들을 절단 내고 정복하는 것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영예롭고, 심지어 거룩하게 영광스럽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모든 민족들과 세기에 걸쳐 일치됨을 분명히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만 이 때 그 해방자는 세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으로 강림한다." (<히드라>(피터스 라인보우·마커스 레디커 지음, 정남영·손지태 옮김, 갈무리 펴냄), 68쪽)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수탈과 식민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한나라당의 박근혜가 총선 전 제주 강정 마을에 건설하려 하는 해군 기지에 대한 의견 표명에서 하와이의 예를 들었다. 언론에 의하면, "하와이 재정 수입 중 관광이 24퍼센트, 해군 기지로 인한 수익이 2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해군 기지가) 하와이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주만에 있는 해군 기지로 인해서 하와이가 경제적 도약을 이루었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카일 카지히로라는 하와이의 시민 단체 활동가는, 주권 국가였던 하와이는 미국의 침략으로 식민화된 섬이며, 원주민을 내쫓고 건설된 군사 시설로 인해 환경적으로 심하게 오염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으로 하여금) 하와이를 주요 표적으로 삼게 했다고 주장하면서 박근혜에게 해군 기지 앞바다에서 수영 한번 해 볼 거냐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카일 카지히로의 말대로라면 박근혜는 (주권 국가는 아니지만) 제주도에서 하와이처럼 원주민을 내쫓고, 섬을 오염시키고, 끝내 전쟁의 불구덩이에 밀어 넣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꼴이 된다. 물론 진주만에 들어 선 해군 기지 때문에 원주민들은 난민이 되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훌라춤을 추는 무희들이 혹 그 원주민들의 후손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정 마을의 해군 기지 건설은 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 예술인들, 작가들, 야당 정치인들, 일반 시민들의 줄기찬 반대에도 강행되고 있다. 지금도 강정 마을을 상징하는 구럼비 바위는 깨어지고 있다. 당장은 지구가 오랫동안 제 몸을 뒤틀어 인간에게 선물한 대자연을 파괴하는 천인공노할 시간이지만, 해군 기지가 들어선 이후에는 베이컨 시절 같은 주민의 난민화가 가속될 테고, 정말 상상만으로 그치기를 바라는 비극적인 시간이 도래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이 그렇게도 지적했던 중국과 미국의 마찰 가능성은 중국으로 하여금 제주도를 주요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고 누가 호언할 수 있겠는가. 정욱식과 같은 평화운동가를 비롯해서 미국의 석학 놈 촘스키와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이미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평화가 군사력을 통해서 지켜진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군부의 기득권과 토건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는 언제나 거짓을 일삼아왔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가는 절대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게 어쩌면 국가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예를 든 프랜시스 베이컨은 '버지니아 회사'의 투자자였는데, 이 회사는 아메리카 식민 농장을 건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17세기 당시 영국에서는 공유지에서 쫓아낸 민중을 아일랜드나 아메리카의 식민 농장을 위한 인력으로 사용하였으며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난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빈곤과 노역, 그리고 탈주, 반역의 연속이었다.

산업 문명이 오기 전의 자본주의 초기에는 부를 증식시킬 수단이 그리 마땅치 않았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치권력은 민중을 끊임없이 대지에서 쫓아내 산업 노동자로 밀어 넣었다. 이것을 수탈과 착취의 맞물림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산업 문명의 도래와 고향에서 내쫓긴 민중의 급속한 증가는 내밀하게 상호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 관계가 원활치 못했다면 가장 큰 위기를 맞는 것은 바로 당대 영국의 지배 계급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급박성이 산업 문명을 꽃피운 무의식적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이건 단순히 시인의 상상력이니 여기까지만 해두자.) 아무튼 베이컨의 목적은 정치적 출세였고, 그는 그것을 위해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국가의 속성을 겨냥했을 수도 있다.

강정 마을에 짓고야 말겠다는 해군 기지에 대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거짓말 퍼레이드는 이제는 떠올리기에도 넌덜머리가 나지만, 가만히 이전의 시간을 복기해 보면 그간에 벌인 토건 사업들이 늘 이 모양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멀리 갈 것 있을까.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 사업이라는 새만금 사업은 지금 어떻게 되었던가? 4대강을 살린다는 희한한 논리를 앞세운 4대강 사업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이 지독한 거짓말들이 어떻게 민중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지 참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강정 마을 해군 기지 사업 또한 얼마나 많은 거짓과 기만을 자행해 왔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 국가의 거짓말을 막을 방도가 지금 당장은 없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거짓말을 비판하고 폭로하는 도덕적 투쟁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국가의 오래된 거짓말은, 국가라는 추상적인 기관이 발하는 언어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무의식이 뱉어놓은 것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집합체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진보를 표방하는 어느 야당에서도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강정 마을에 대한 관심이 총선 이후로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는 게 서귀포에 사는 지인이 알려준 소식이다. 여기에는 강정 마을 자체가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고, 내왕하기가 그리 편치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강정 마을에 들어서는 해군 기지를 반대한다던 정치인들의 습관화된 언행도 한몫 단단히 했음도 분명하다.

정치가 의회와 정당과 조직에만 있다는 이 근거 없는 환영에서 우리는 언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의회와 정당과 조직에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권력이다. 그것을 부나비처럼 좇는 저 모습들을 보라. 저 부나비의 몸짓 속에서 지금 구럼비는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강정 마을 주민들의 삶터는 시시각각 파괴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관료의 말처럼, 지금 당장 괜찮으니 상관없다는 말인가. 17세기 영국의 예에서 보듯이 공유지에서의 민중의 축출은 수백 년을 면면히 흘러오면서 그치지 않는 수탈과 착취, 전쟁과 파괴, 이산과 난민, 죽음과 절규를 낳았다. 그리고 또한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저 구럼비가 단순한 바위덩어리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구럼비는 이제 대한민국의 21세기적 수탈의 한 상징이 되었다. 수탈의 방조는 또 다른 수탈을, 그리고 착취를 재생산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점점 더 다가오는 어떤 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멸로 향하는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도와 노래와 투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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