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람들은 예의를 목숨처럼 여긴다고들 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정부는 "신사답지 않게 싸우는 부서"를 공식적으로 운영한 적이 있다. 특수작전집행부(SOE: Special Operations Executive) 라는 이름의 이 조직은 암살, 파괴공작, 밀입국, 절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조직에서 배를 통째로 훔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구스타버스 헨리 마치-필립스(Gustavus Henry March-Phillipps, 1908~1942)다.
학교에서는 낙제생, 전쟁터에서는 낙제 없는 남자
마치-필립스는 영국 요크셔의 명문 가톨릭 학교 앰플포스 칼리지에서 9년을 보냈지만 성적도 운동도 특출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무모하다"는 평판을 얻었는데, 이는 훗날 그의 인생전체를 요약하는 단어가 된다. 모범생이 되기를 거부한 이 남자는 왕립포병대 장교로 입대해 1940년 프랑스와 벨기에 전선에서 됭케르크 철수(Dunkirk evacuation, 군사작전명으로는 Operation Dynamo)를 겪었다. 됭케르크 철수는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 해안에서 벌어진 영국군의 대규모 철수작전이다.
1940년 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전격적으로 침공하면서 영국군을 포함한 연합군 약 40만 명이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 해안 지역에 완전히 포위당하는 상황에 몰렸다. 육로로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고, 뒤로는 바다뿐이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을 그대로 두면 전멸하거나 포로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해군함정뿐 아니라 어선, 요트, 여객선 같은 민간선박까지 총동원해 병력을 영국본토로 실어 날랐다. 이때 동원된 크고 작은 배가 약 850척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약 33만 명이 넘는 병력이 구출되었는데, 이는 처음 예상했던 규모를 훨씬 웃도는 성과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장비와 무기는 거의 다 버리고 몸만 빠져나온 셈이라, 군사적으로는 엄청난 패퇴이자 손실이었다. 그럼에도 "병력을 살려서 다시 싸울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영국에서는 이 사건을 실패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승리, 국민적 결속의 계기로 기억한다. 처칠이 이 사건 직후 의회에서 한 연설도 유명하다.
마치-필립스가 이 됭케르크 철수를 겪은 것이 그의 인생 전환점으로 언급되는 이유는, 정규군으로서 큰 패배와 굴욕을 직접 경험한 뒤 "이런 식의 정면 대결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싸움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이후 특수작전집행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됭케르크 철수 경험을 통해 정규군의 답답한 명령체계에 넌더리가 난 마치-필립스는, 콜린 구빈스 준장의 눈에 띄어 특수작전집행부로 자리를 옮긴다. 학교에서 무모하다고 혼나던 성정이, 전쟁터에서는 비로소 쓸모를 인정받은 셈이다.
중립국 항구에서 배를 훔치는 법
1942년 1월, 마치-필립스는 서아프리카의 스페인령 항구 산타 이사벨에서 인생최대의 도둑질을 감행한다. 그곳에 정박해 있던 이탈리아 상선 두체사 다오스타호와 독일 예인선들을 몰래 훔쳐 나이지리아 라고스까지 끌고 온 것이다. 스페인은 당시 중립국이었으므로, 이 배들을 공격하면 국제법위반이 되고, 그냥 두면 나치독일을 포함한 추축국의 보급선 노릇을 하게 되는 진퇴양난이었다. 마치-필립스의 해법은 간단했다. "훔친다. 아무도 몰래." 이 작전은 '우체국장 작전'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었고, 그는 이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절도행각이 처칠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국가공인 도둑질이었다는 사실이다. 법을 어기되, 정당한 권력의 통제와 책임 아래에서 어겼다는 뜻이다.
소규모 습격대와 007의 아버지들
이 성공을 발판으로 마치-필립스는 제62코만도, 일명 소규모습격대(SSRF: Small Scale Raiding Force)를 창설한다. 훗날 특수공군(SAS: Special Air Service)의 전신이 되는 이 부대는 소수정예로 적진 해안을 기습하는 것을 전문으로 했다. 그의 대담무쌍하고 즉흥적인 지휘 스타일은 소설가 이언 플레밍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마치-필립스는 세르비아 이중간첩 두샨 포포프(Dušan Popov, 1912~1981),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과 더불어 007 제임스 본드의 실제 모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영화 속 본드가 상사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결국 임무를 완수하는 캐릭터라면, 실제 마치-필립스는 아예 상사의 눈총 자체를 즐기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임무, 그리고 노르망디의 어느 해변
1942년 4월, 그는 동료 SOE 요원이자 배우였던 마조리 스튜어트와 결혼했다. 결혼 5개월 만인 그해 9월 12일, 그는 프랑스 해안 습격작전인 '아쿠아틴트 작전'을 이끌다 좌초되었다. 어둠 속에서 목표지점을 잘못 찾아 엉뚱한 해변, 훗날 오마하 해변으로 불리게 될 그곳에 상륙한 것이 화근이었다. 독일군의 집중사격 속에 카누가 파손되자 그는 헤엄쳐 탈출을 시도했고, 그 물속에서 서른네 살의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누가, 왜, 어떻게 법을 어겼는가?
마치-필립스의 삶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규칙을 어겼다는 사실자체가 아니라, 누구의 허락을 받고 무엇을 위해 규칙을 어겼는가에 있다. 그는 선출된 정부의 승인아래, 외부의 적과 싸우기 위해, 사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휘체계 안에서 무법자 노릇을 했다. 절도도 기습도 모두 문서로 남았고, 훈장도 사후기록도 모두 공개되었다.
2024년 12월 3일 한국에서 벌어진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는 이와 정반대의 경우였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국 국회를 겨냥했고, 승인의 절차는 왜곡되었으며, 명령의 책임소재는 지금도 법정에서 다투는 중이다. 마치-필립스의 '신사답지 않은 전쟁'이 훗날 훈장과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것이 민주적으로 통제된 예외였기 때문이다. 반면 예외가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목적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영웅담이 아니라 단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지금 한국의 법정이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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