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아마도 바쁘게 살면서도 왜 바빠야 하는지 모르고, 쫒기면서도 왜 쫓겨야 하는지 모르는 우리들의 아이러니컬한 자화상이 책 속에 각인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슬로우>가 속도의 강박 속에 허덕이는 우리들 일상의 고삐를 뒤로 잡아끄는 신선한 주문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슬로우, 슬로우, 슬로우! 한번쯤은 그렇게 주문을 외며, 숨 돌릴 틈 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되짚어보는 것은 어떨까.
승진 아니면 퇴출(up or out!) 성장 아니면 이직(grow or go!)이 우리 직업 세계의 법칙이 되고, "빠른 자가 느린 자를 잡아먹는" 속도전이 오늘의 세태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그러한 현실이 요구하는 성장과 가속도의 압박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전력 질주해왔다.
| ▲ <슬로우>(플로리안 오피츠 지음, 박병화 옮김, 로도스 펴냄). ⓒ로도스 |
책 속에서는 시간에 대해 조언하거나 시간과 싸우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시간 관리를 주제로 세미나를 여는 자이베르트,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 전문의 슈프렝거,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6개월간 끊고 지내고 있는 독일 기자 뤼레, 시간 연구자 가이슬러의 목소리가 1부를 장식하고 있다. 이들은 현대의 시간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해법을 모색한다.
특히 뤼레는 인터뷰를 통해서 디지털 방식의 소통 구조가 정신을 분산하고, 일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며, 결국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끊고 6개월간 실험적으로 아날로그식 소통 구조에 의지해서 지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방대한 정보에 인터넷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터넷은 단순히 자아를 분산시키고 시간을 허망하게 버리게 하는 도구일 따름이다.
휴대전화 역시 전화를 넘어서 이메일 체킹 기능까지 포함하면서 나는 점점 더 많은 타자들의 호출 속에 노출된다. '나'는 단지 타자들의 노예이고, 흥미롭지만 의미 없는 정보들 속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디지털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공물"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간은 더 이상 '나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어떤 자동화된 시스템의 시간이다.
더욱 큰 아이러니는 시간의 주권을 상실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기실현을 한다고 믿고 있는 사실이다. 2부는 이러한 역설적인 시스템에 동조하고, 그것을 촉진하는 인물과 <로이터>의 금융 정보 시스템을 취재하고 있다. 유능하기로 이름난 컨설팅 회사 사장 마이-포호틀러는 속도와 효율성을 설교하고 자신도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며 살고 있다. 그러나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삶의 모든 단계가 경제와 효율성의 논리에 종속되는 세계"(104쪽)는 "누구를 위한 세계인가." 시간이 없어 이동 중에 인터뷰해야 했던 이 유능한 컨설턴트와의 인터뷰 끝에 저자의 독백이 길게 울린다.
또 런던에 위치한 <로이터> 유럽 본부에 대한 현장 인터뷰는 속도를 강요하는 시스템의 배후를 드러내는 듯하다. 통신사로 알려진 이 회사의 수익의 95퍼센트는 금융 정보의 매출에서 확보된다. 사람들은 투자를 위해 정보를 필요로 하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도, 거래량이 많으면 큰돈을 벌 수 있으므로, 남보다 먼저 정보를 확보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투자하고자 한다.
매달 200만 원 정도의 가입비를 내는 투자자들은 전 세계 주식, 부동산 등의 재화에 대한 정보를 접한다. 결국 이들에게 시간은 돈이다. 사고파는 발 빠른 움직임 속에 소위 전 세계 화폐와 주가 그리고 땅값이 덩달아 춤을 춰야하는 것이다. 빠른 자가 느린 자를 잡아먹는, 1퍼센트에게 승리를 99퍼센트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그 현란하고 빠른 자본주의의 춤사위는 런던에서 끝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장된다.
"<로이터> 직원들은 이러한 시간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달리 표현한다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파괴하고 세계적인 시간의 동일화, 즉 영원한 현재를 실현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118쪽)
이 현재의 주인은 누구인가. 알 수 없지만 대다수인 우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수의 이득을 위한 타율적 가속도의 시스템이 전 지구를 장악해가고,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시간의 가속도에 제동을 거는 모든 장치들을 무장 해제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무하는 속도의 정체이며, 우리가 바빠지는 이유라니 새삼 당황스럽고, 되집어 손보지 않으면 안 될 문제인 듯하다.
마지막 3부에서는 그러한 타율적 시스템이 강요하는 가속화에 저항하거나, 그러한 세계 체제의 변방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서 지적되듯이 "가까운 곳의 샘물을 마시면 올라가지 않지만, 샘물이 오염되어 물을 사 마시면 올라가는 국민총생산"이란 얼마나 기만적이며, 사람들의 진정한 행복과 무관한가. 각종 수치로 성장과 효율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속화를 요구하는 시대의 정언명령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예들이 지구촌 곳곳에 있다는 사실은 안도감을 준다.
숲을 대량으로 매입해서 비개발을 전제로 해당 국가에 기증하는 재벌의 이야기,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을 고민하는 히말라야 산중의 부탄 이야기, 스위스 산골에서 자연의 시간을 따라 사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만적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하게 된다.
다만 그 가운데 하나로 현대 사회의 시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기본 소득'은 과연 충분한 대안일까 하는 문제는 쟁점으로 남을 듯하다. 남아프리카의 한 마을 오치베로에서 1000여 명의 주민을 상대로 실험적으로 실행되는 이런 기본 소득 제도는 일정한 액수를 주민들에게 차등 없이 지급하는 것이다.
눈먼 성장을 위한 가속도를 제어하고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한 이 제도는 "사회 보조금이라는 그물 침대에서 낮잠을 잘 것"(242쪽)이라는 기우에도 불구하고 현재 잘 진행되고 있고 전 세계로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히말라야 오지의 부탄, 알프스와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의 병증들에 대한 이러한 해법은 미래 세계의 신선한 샘물이 될 것이다.
시간과 행복의 문제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숙고하는 <모모>에서부터 라다크를 통해서 개발지상주의적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반추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오래된 미래>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주제를 가진 책들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시간의 문제를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서 포착하고, 이를 사회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확장해서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시간을 쓴다기보다는 시간을 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시간이란 현실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쪼개고 나눈다고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지혜를 통해서 풍부해지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알프스 산골 농부의 지혜를 빌려보자.
"치즈는 말이죠.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과정 하나하나 마다 적당한 시간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모양을 뜨고 수개월에 걸쳐 매일같이 뒤집어 줘야 하죠. 그런 뒤에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숙성시켜야 합니다." (176쪽)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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