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은 한국의 지식인에게 소위 '우익 소설'로 평가받는다. 팽창일로를 걸었던 메이지 시대를 낙천적으로 그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다른데, 이와 관련해서는 <세계 문학의 구조>에서 자세히 서술한 바 있다. 알고 보면 <언덕 위의 구름>은 매우 우울하고도 어두운 소설이다. 이는 '저자 후기'에서 언급한 유일한 소설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시바에게 큰 영향을 준 소설은 도쿠토미 로카의 <기생목(寄生木)>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제 주인공인 오가사와라 젠베이(1881~1908년)가 남긴 자전적 기록을 도쿠토미가 소설적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오가사와라는 이와테 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수재였던 그는 출세를 위해 도쿄로 올라와 노기 마레스케의 집 서생이 되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임관한 뒤에는 러일 전쟁에도 참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고급 장교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혼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의 출세는 이미 따 놓은 당상이라 하겠다.
자,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확실히 낙천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면에 있다 하겠다. 메이지 시대 가난한 청년이 성공을 하는 확실한 방법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낡은 봉건 제도를 벗어나 근대 국가의 길을 착실하게 걷던 일본이라는 국가는 군인들과 보조를 같이 했다. 즉, 군인들은 자신의 발전을 국가의 발전과 일치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설사 군인이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군인이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 것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즉 오가사와라 젠베이는 전혀 군인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 아니 정확히는 문학적인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실제로 그는 문학에 뜻을 두기도 했다). 하지만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로서는 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치였고 결국 출세를 위해서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이는 소설 속 주인공인 아키야마 형제가 군인이 된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그가 사랑한 여자의 아버지는 군인으로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일 때는 그에게 호의적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냉담하게 대했다. 즉,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군인다운 군인이 되어야 했다.
결국 그는 당시 확대일로의 길을 걷던 시대 분위기(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군인 사회다!)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병을 얻게 되고, 이후 낙향하여 요양을 하다 결국 권총으로 생을 끊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 청소년기에 이 작품을 읽은 시바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성장을 외적 환경(사회나 국가)의 발전과 동일시하는 시기에 그것이 어긋났을 때 생기는 절망적인 장면을 목도했던 것이다.
육체가 성장해가던 14, 15세 때에 <기생목>과 같은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이나 자신이 속한 국가라는 환경에서 전도유망함을 느낄 때 비로소 소년기 정신의 중심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이 작품은 당시 나에게 절망을 가르쳐주었다.
<언덕 위의 구름>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건 그렇고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고자 한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덕 위의 구름>에 대한 것도 <기생목>에 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무관한 것이라면, 아예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문학사에서 살아남는 작가와 사라지는 작가
아마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언덕 위의 구름>에 그런 면이 있었는가?" 또는 "<기생목>이라는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한데…." 하는 사람(아마 일본어 해독이 가능한 사람일 것이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보면 알겠지만, 일본에서도 <기생목>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도쿠토미 로카 전집은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도쿠토미 로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의 대표작 <불여귀>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작품은 당대의 베스트셀러로서 이미 1912년 조중환에 의해 축자역에 가까운 형태로 번역된 바 있으며, 그 이전에 이미 여주인공의 이름인 '나미코'라는 타이틀로 영어로도 번역되기도 했다. (<불여귀>는 최초로 서구어로 번역된 일본 근대 문학이었다.)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거의 한 장을 할애해 이 작품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낯선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에는 무관심하다고 하더라도 정치나 역사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그를 일본의 우익 언론인이자 저술가였던 도쿠토미 소호의 동생이나 대역사건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인물로서 기억할 것이다. 어쨌든 여러 모로 그는 역사적인 인물이자 논란의 혼란의 한복판에 섰던 작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일본 문학사에서 도쿠토미 로카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다. <기생목>도 이른바 <일본 근대 문학 전집>에는 들어있지 않으며, 앞서 말한 <불여귀>와 수필집 <자연과 인생> 정도만 간간히 복간될 뿐이다. 그렇다면 100년 전 문제적 작가였던 그는 왜 지금에 와서는 변변한 전집 하나 갖지 못한 작가가 된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변까지 하는 것은 시바 료타로 자신이다.
보통 역사는 양식의 변화로 파악된다. 회화사나 문학사도 그러한데, 전기·후기 인상파에서 포비즘으로 가고, 큐비즘에서 추상화가 되었다가 마침내 비형상으로 간다는 발전의 계열 속에서만 화가들이 파악되는 것처럼, 메이지 이후 일본 문학사도 다분히 그러한, 로카의 경우 어느 위치에 놓여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던지 좌석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 같다.
작가들은 무엇을 위하여 쓸까?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할 것이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살 수 없어서, 돈이 필요해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 말하고 잘 하는 게 없어서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문학사에 남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가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문학사에 남기 위해서.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작가라고 해서 모두가 문학사에 남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어떤 작가는 남고 어떤 작가가 망각된다. 도쿠토미 로카가 그러한 것처럼.
프랑코 모레티는 고전이란 비평가나 문학 교수가 아닌 시장이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옳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고전 목록과 문학사가 '항상'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우리는 시장이나 독자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 작가라 할지라도 문학사에서 홀대를 받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앞서 인용한 시바의 말이 실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시바는 사후에 문학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와 더불어 시바 료타로는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문학사는 두 작가를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대중 작가 정도로 언급한 것으로 끝낸다. 사실상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그들이 문학적 양식의 변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학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양식의 변혁에 관심이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으로 말이다. 사실 이는 그대로 순문학(본격 문학 또는 문단 문학)과 대중 문학(장르 문학)이라는 구분으로 이어진다.
이야기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최근 한국 소설을 일별하다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야기' 운운한다고 해서 그때의 '이야기'가 똑같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다. 한쪽은 '이야기'라는 것 자체(즉, 이야기의 본질)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라면, 다른 한쪽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예컨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경우 전자의 대표적인 예라면, 소위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소설은 후자를 대표한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갖게 되는 의문은 이런 것이다. 소위 이야기에 대한 성찰, 또는 형식 실험이 오늘날 얼마나 유효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의 성찰은 과연 성찰이라고 표현에 어울리는 성찰을 하고 있으며,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의 형식 실험은 과연 얼마나 형식 실험이라고 할 만한 실험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제임스 조이스나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 이후 엄밀한 의미에서 소위 이야기에 대한 성찰이나 형식 실험이 어떤 새로움 즉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외국에서는 아무리 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라면, 나름대로 가치를 부여받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문학의 빈곤을 뜻한 것일 뿐, 그것이 문학적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소위 순문학을 하는 사람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민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학적이지(예술적이지) 않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널리 읽힐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물론 여기에는 명백한 전도가 숨어있다. 솔직히 자신의 작품이 많이 팔리는 것을 싫어하는 작가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이야기를 만들 능력이 없을 뿐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상식적인 이야기 본질론'과 '다소 복잡한 형식 실험'은 자신의 재능 없음을 예술성(문학성)이라는 커튼으로서 가리는 제스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의심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문학사는 그런 이들에게 호의적이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소설가 장정일과 소설가 김탁환 중 문학사에 남게 되는 작가는 누구일까? 당연히 장정일이다. 왜냐하면 장정일은 나름대로 '한국 문학사라는 이야기'의 진행을 가능하게 하는 '발전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문학사에 남게 되는 작가냐 아니냐가 아니다. 왜냐하면 소위 '문학사'는 '모든 문학의 역사'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그것은 매우 '특수한 문학(근대 문학)'만을 분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문학사에 등재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의 문학적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 역으로 문학사에 등재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문학적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도 아니다. 후자와 관련해서 우리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은 모든 문학사는 네이션=스테이트적 분절을 통해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문학사란 문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라기보다는 도리어 문학사의 필요성에 의해 그곳에 들어갈 문학이 발견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개별 문학사에는 부정할 수 없는 불균형이 존재하는데, 이때의 불균형을 문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금기 대상이 된다. 왜냐면 그에 대한 의심은 많은 경우 문학사라는 것 자체를 성립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수만, 수십만 권의 작품 속에서 선별되어 문학사에 들어간 작품과 백 여 권의 작품 속에서 골라져 문학사에 들어간 작품의 수준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봐서는 안 된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영국이나 일본에서 쓰였다면 해당 문학사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테지만, 이런 것을 지적하는 것은 조커를 꺼내는 일과 같다. 문학사에서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이라기보다는 규모에 대한 인식이고, 모든 문학사는 세계적인 맥락에서 똑같이 한 표 씩을 배정받기 때문이다(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즉 모든 문학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문학적 주권'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학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작품은 어떨까? 이들 작품에게 '문학적 주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가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철저히 시장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들은 항상 '팔리느냐 마느냐'라는 도약에 직면해 있다. 독자들은 외면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소위 순문학은 많이 팔리면 '소설적 완성도'를 이야기하며, 외면을 받으면 '시대를 앞서간', '대중의 취향에 저항한' 작품으로서 도리어 그것을 '문학성의 징표'로서 전환시킬 수 있다.
이야기와 소설
근대 문학사는 스토리텔링에 무관심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근대 문학이란 이야기와의 결별을 통해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소설을 비판하는 표현으로서 "그것은 소설이 아니다. 기껏해야 이야기에 불과하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그렇다면 근대 소설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와 결별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다. 다소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이 주장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이야기란 본래 반복 가능성에 기반하고 있다. 즉, 그것은 어떤 경우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이야기 자체도 긴 이야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독자들을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한적 공간으로서의 현실과 그러한 제한이 없는 공간으로서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는 셈이다. 물론 둘 사이에 상호 보충적인 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의 영향 관계란 근대 소설과 현실의 관계처럼 리얼한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소설과 현실은 매우 밀접하게 서로를 구속하고 있다. 흔히 소설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소설을 당대의 사회를 그릴 때만 소설일 수 있다는 의미이라 하겠다. 이런 제한성에 대한 밀착은 이야기와 소설을 구분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다른 말로 그것은 패턴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앞서 우리는 순문학에서 중용한 것은 형식 실험(양식 변혁)이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실험'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리어 사회에 밀착한 서사를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이야기란 일종의 패턴의 반복이고, 소설이란 그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한다. 소설의 현실성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최근의 한국 소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반이야기성을 고수하는 소설로서 김애란, 최제훈 같은 소설이다. 둘째는 이야기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어떤 '새로움'을 획득하려는 소설로서 내 표현을 사용하자면 '유머 소설'이다(이쪽의 선도자는 누가 뭐래도 박민규일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했으니 후자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최근 소설을 읽다보면 캐릭터화 된 인물들의 자주 등장하는데, 인물의 캐릭터화란 다른 말로 그들이 생활하는 사회의 유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대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그가 마주하는 사회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데에서 나온다. 그들은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고 또 사랑하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세상을 저만큼 달아나 있거나 그들을 배신한다. 따라서 그들은 바른 의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로 끝나게 된다.
하지만 유머 소설은 이와 다르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어떤 캐릭터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과 세계의 거리를 정확하게 재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절망이란 실은 조화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할 정도의 거리 감각을 갖고 있는 존재를 진정으로 절망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순문학 작가가 대중 문학을 써도 순문학 작가인 이유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날 그런 구분이 과연 본질적인 것인가?" 확실히 '이론적으로는' 순문학과 대중 문학의 구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장정일처럼 오로지 '잘 쓴 소설'과 '쓰레기'만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그런 구분이 엄밀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영향력 있는 척도'로서 현실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무턱대고 무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잘 쓴 소설'이나 '못 쓴 소설'이라는 구분 자체도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이라는 구분이 존재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구분은 배척해야(대체되어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중첩되어야 하는 것이라 하겠다.
미추의 문제나 선악의 문제를 다룰 때도 우리는 이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것 자체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다룰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이것들이 문제로서 등장하게 만든 것뿐이다. 예컨대 '잘 쓴 소설'과 '쓰레기'라는 구분은 순문학과 대중 문학이라는 구분만큼이나 모호하다. 만약 '잘 쓴 소설'이 단순히 웰 메이드를 뜻한 것이라고 한다면, 장정일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처럼 '쓰레기'만 써온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웰 메이드 이상을 뜻한다고 한다면, 문제는 다시 '순문학과 대중 문학'이라는 구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날 순문학과 대중 문학의 구분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이전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 질문을 해보자. 나는 대중에게 어필하는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대중 문학으로 보지만, 현실적으로 순문학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가 문단 작가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이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순문학의 위축과 관련이 있다. 옛날 같으면 <엄마를 부탁해>와 같은 소설은 순문학 작가의 외도 정도로 치부되었을 테지만, 순문학의 영향력이 감소한 오늘날은 도리어 순문학의 대중성 획득이라는 식으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많은 평자들이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평가를 하는 데 있어서는 많이 팔렸다는 사실(대중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 앞에서 비판의 칼날을 내려놓는 것은 그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확인할 수 있는 순문학(문단 문학)의 대중 소설화 및 그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시대착오적인 '이야기 본질에 대한 성찰'이나 '형식 실험'은 동전의 양면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자가 대중 소설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설은 독자에게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영향을 준다. 첫째는 감정적 몰입을 통해 부과하는 감동이고, 둘째는 지성적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재미이고, 셋째는 이성적 반성을 통해 비로소 갖게 되는 통찰이다. 쿤데라가 말하는 소설의 정의('실험적 인물을 통해 실존의 중대한 주체를 끝까지 탐사하는 산문 형식')는 정확히 세 번째의 것에 해당된다 하겠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정의를 통해 그가 겨냥하는 것이 둘째가 아니라 첫째라는 것이다.
이는 그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독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혀 예측 불가능한 주장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시종 첫 번째 형태를 비판의 표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키치'라는 개념이다.
브로흐에게 있어 키치는 역사적으로 19세기의 감상적 낭만주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 까닭은 독일과 중부 유럽에 있어 19세기는 다른 곳보다 더 낭만주의적이었고 바로 이곳에서 키치가 싹터서 키치라는 단어가 생겨난 곳도 이곳이며 아직까지도 흔히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우리는 키치에서 예술의 주된 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곳에서 진정한 예술과 대립되는 것은 오락이다. 위대한 예술에 대립되는 것은 가벼운 예술, 사소한 예술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결코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소설에 역정을 낸 적이 없다. (<소설의 기술>(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책세상 펴냄), 160쪽)
이 인용은 언뜻 보이는 것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이다. 이전에 나는 한국 문학의 기이한 현상중 하나로서 대중 문학보다 순문학이 더 팔리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중 문학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라 하겠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왜 한국에서는 대중 문학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세계 문학의 구조>에서 근대 문학(장편 소설)이란 보편적인 예술 양식이 아니며, 한국의 근대 문학은 이식 문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작품의 수준 문제를 떠나서 대중 문학의 열약함과 순문학의 압도적 영향력을 그 증거로 삼을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처럼 근대 문학이 융성한 국가들의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과는 달리 그들의 순문학이란 엄청나게 큰 대중 문학의 일각으로서 존재한다. 즉, 프랑스든 영국이든 일반 독자들이 주로 읽는 것은 대중 문학들이고, 그렇게 확장된 출판 산업의 물질적 기반이 없었다면, 소위 예술적 시도 내지 실험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뒤쳐진 나라들, 유럽의 경우 독일이나 중부 유럽의 경우는 대중 문학의 토대가 전혀 없었지만(이는 산업적 토대가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에서(국민 국가 건설)을 위해서 문학이 필요했고, 그래서 근대 문학을 수입했다.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 프리드리히 2세(1740~1786년)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문학에 심취한 인물인데, 그는 <독일 문학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좋은 작품들로 이루어진 좀 더 풍요로운 '카탈로그'를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나는 그 때문에 나는 '국민'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이나 천재가 없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이웃 나라 사람들과 함께 상승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양한 원인 때문에 늦어진 것이다. (…) 그러므로 자신이 부유한 것처럼 보이려는 빈자의 흉내를 그만 두자. 솔직히 우리의 가난을 인정하자.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작업을 통해 '문학'의 보화를 획득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화를 소유함으로써 나라의 영광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 근대 문학이란 특정 조건 하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2) 그런 가난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3) 문학의 발전은 국가의 영광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아직도 가난을 인정하는 데에 매우 인색하고, 부유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벨 문학상을 간절히 원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근대 문학이 발전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문학 시장의 차이이다.
쿤데라는 자생적으로 근대 문학이 발달한 나라의 경우 오락 문학(바꿔 말해, 대중 문학)과 대립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경우는 키치와의 대립 관계에 놓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일까? 자생적 근대 문학은 기본적으로 국가와의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전해갔지만, 이식적 근대 문학은 도리어 국가와의 협력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문학 시장이 거의 발달하지 않는 곳에서 생겨난 근대 문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국가적 가치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에서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자생적 근대 문학에서 대중(오락) 문학과 순문학의 구분은 자못 명확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학은 비교적 존중하는 편이다. 바꿔 말해, 대중 문학가가 순문학가에게 기가 죽거나 하지 않는다. 대중 문학이 순문학보다는 적은 상징 자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보다 훨씬 막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식적 근대 문학에서 키치 문학이란 그 자체로 역사가 존재하는 문학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문학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명확히 한 근대 문학과 근대 국가의 밀월관계는 적어도 '순문학(예술 문학)'만 놓고 본다면, 후진국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의 논리를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문학 대국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자생적 근대 문학과 이식적 근대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후자가 '감동(공감)'에 기반을 두고 서사를 소설의 골격을 삼았다고 한다면, 전자의 경우 도리어 그것(대중 소설이 지향한)에 대한 비판 내지 거부를 골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이 한 에세이에서 영화는 예술일 수 없다고 단정하고 그 이유로 지적한 예술의 한 속성으로서 '차가움'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강연문에서 근대 문학은 끝났고 앞으로의 문학은 오락 문학(대중 문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나로서는 그것이 일본에는 해당될지 모르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일본의 경우 비록 후발 주자였지만 식민지 전쟁과 제국주의를 통해 이식을 내재화 하는 데에 성공하여 문학 시장이 자생적 근대 문학과 유사하게 대중 문학의 영향력이 순문학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확실히 순문학의 영향력 약화는 대중 문학의 영향력 증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른 것 같다. 한국에는 도대체 대중 문학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몇몇 히트작이나 또 그런 작품을 생산하는 인기 작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극히 시류적인 작품이 대부분으로 그것이 어떤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근대 문학(순문학)의 영향력이 사실상 소멸한 오늘날 한국에서 가능한 문학이란 대중 문학이라기보다는 키치 문학이 아닐까 한다. 신경숙의 최근작 두 권(<엄마를 부탁해>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면>)이 그 단적인 예인데, 이 작품을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 내세울 만한 순문학 작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확실히 골계이다.
'김탁환'이라는 문제
▲ <김탁환의 쉐이크>(김탁환 지음, 다산책방 펴냄). ⓒ다산책방 |
자, 이제 본격적으로 과제를 수행하기로 한다. 김탁환은 여러모로 특이한 작가이다. 그는 문학 지망자들이 거칠 수 있는 최고 과정(서울대학교 국문과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한 문학 엘리트임도 불구하고, 문단의 핵심 제도라 할 수 있는 소위 등단 제도와 무관하게 활동하는 소설가이자, 몇 년 전에는 많은 소설가들이 선망하는 교수자리마저 박차고 나와 온전히 창작에 집중하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 김탁환이라는 존재가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그가 문단과 무관하게 활동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하는 문학이 대중 문학이기 때문이다. 즉, 그와 문단과의 소원한 관계는 개인적인 긴장 관계 때문이라기보다는 뭐랄까 '하고자 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에 생긴 갈라짐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짐작컨대 그에게는 '문단에 대한 적대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한국 문학의 아웃사이더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하겠다.
그런데 내가 정말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그가 과감히 대중 소설의 길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위 잘 나간다고 하는 문단 작가들의 예술 소설들보다 독자의 호응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의 책이 전혀 팔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히 많이 팔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김탁환의 쉐이크>라는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보니 그가 발간한 수십 권의 책 중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바로 <김탁환의 쉐이크>였는데, 이것은 확실히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라 하겠다. 이를 테면 게임 소프트웨어 자체는 팔리지 않으면서 캐릭터 공략 해설만 팔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왜 김탁환의 소설은 팔리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이 중요한 것은 순문학이라면 모를까 대중 문학이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중 문학이라는 시장 자체가 부실한 한국적 상황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단발성으로나 성공한 예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며, 김탁환의 경우 그런 흐름을 탈 기회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의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는 얼굴이 없는 대부분의 대중 작가와는 달리 문화적 아이콘의 하나로서 문화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TV 책 프로그램에 적잖게 등장한 바 있다), 적잖은 소설들이 드라마화되거나 영화화되었으며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질 기회도 충분히 있었다.
최근의 예로 영화 <조선 명탐정>은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크게 성공했지만, 정작 원작인 <열녀문의 비밀>의 판매량은 별로 늘지 않았다. 이는 물론 영화와 소설 사이에 존재하는 표현 방식의 차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똑같은 대상을 다룬 소설 사이의 경쟁에서도 김탁환은 소설은 항상 독자의 외면을 받았다. 예컨대 이순신을 다룬 대작 <불멸의 이순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문단 작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 의해 새삼 재조명받았고, 이후 이 작품은 무려 104부작이라는 엄청난 규모로 1년 가까이 반영되었지만, 정작 서점에서 팔리는 것은 <칼의 노래>였다. 김훈의 소설이 100만 부 넘게 팔리는 동안 김탁환의 소설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똑같은 인물을 다룬 두 편의 소설에서 반복된다. 예컨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화제가 된 신경숙의 <리진>과 김탁환의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대결에서 <리진>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은 그다지 팔리지 않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 이유를 나만 궁금해 하는 것은 아닌 것이 김탁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친구? 후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제시했다. "정말 열심히 쓰는데, 재미가 없다."
재미냐 감동이냐, 이것이 문제다
재미가 없다? 저자에게는 다소 가혹할지 모르는 단정이지만, 대중 소설이 독자의 외면을 받는 이유란 오직 하나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재미가 없다."
하지만 김탁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것은 비판이 아닐 수도 있다. 김탁환의 책에는 정말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김탁환의 쉐이크>는 문학 지망생들이 어떻게 소설을 써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하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일종의 창작 지침서이다. 부제는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이다.
따라서 이 책의 가치는 실제로 문학 지망생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에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팔린다는 것은 나름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나로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창작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헤밍웨이의 입장이나 소설을 쓰려면 사창가를 운영해 보는 것이 좋다는 포크너의 주장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러하다. 나는 창작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볼 뿐이다.
내가 이 책에 부정적인 이유는 '스토리텔링'을 250쪽에 걸쳐 이야기하면서 '재미'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등장시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작적인 측면에서 대중 소설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재미이다. 그런데 소위 대중 소설가로 분류되는 이가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크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첫째, '재미'라는 단어를 장르적 습관에 따라 다른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며(일테면 '공포'), 둘째, 스스로를 대중 소설가로 생각하기 않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소설(스토리텔링)의 목적이 재미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이에 대한 그의 답은 자못 명확하다.
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는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는 제 자신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66쪽)
영혼을 흔드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제가 주장하는 'SHAKE'는 작고 부족해 보이지만 결국 한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드는 예술적 공포입니다. (75~76쪽)
그가 생각하기에 소설의 본질(목적)이란 재미가 아니라 감동(영혼을 흔드는 것)을 주는 '예술'이다. 그러면서 소설을 영혼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선을 긋는다. 즉, 그가 생각하기에 소설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Shake와 Move, 영혼을 흔드는 것과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것)로 나뉘는 셈이다.
그런데 이것 많이 보던 구분이 아닐까? 순수 문학이냐 참여 문학이냐는 다소 낡은 구분. 어쨌든 그는 그런 구분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앞서 제시한 기준(감정에 호소하는 문학, 지성에 호소하는 문학, 이성에 호소하는 문학 즉 키치 문학, 대중 문학, 순문학)으로 잰다면? 어찌됐든 확실히 대중 문학과 무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의 생각하는 소설이란 순문학에 가까운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 그도 인정할 것이다.
그럼, 키치 문학인가? 그가 하고 있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시종 대중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아니 애당초 키치 문학이란 하위 장르라기보다는 특정 시기 순문학 진영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소설을 쓰는 두 가지 자세 : 김탁환과 세이초
▲ 소설가 김탁환. ⓒ뉴시스 |
물론 이는 성공한 소수의 대중 소설에도 결여된 것으로서, 나는 이것은 한국 대중 문학의 빈곤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극적 내셔널리즘이나 역사적 페티시즘은 소수의 대중 소설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유행이 지나면 작가와 함께 그냥 망각된다.
김탁환은 책에서 본인을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면서 사실상 소설가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야기꾼이라는 말은 소설가보다는 겸손한 표현으로서 그것은 1차적으로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사람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2차적으로는 대중과 호흡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야기꾼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욕망과 절망 등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소설은 대부분 역사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특별히 역사 소설가로 부르지는 않는다. 왜일까? 그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역사보다는 인물(과 그의 고민)에 치중하기 때문이다(이는 대중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과거의 인물들, 그것도 많은 경우 역사적 위인이나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들만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일까? 이는 작가 자신만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인물들의 고뇌는 오늘날로 치면 사실상 지식인(엘리트)의 고뇌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의 고뇌는 따분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생활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다분히 나르시시즘적이기 때문이다. 착실하게 교육을 받은 문학 전공자나 비평가들은 모를까 일반 대중 독자들은 이런 것을 참지 못한다. 김탁환은 소설가란 독자의 영혼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소설이 자신의 영혼을 흔드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 독자, 그것은 창작자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환상이다.
일반 독자들이 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재미'이다. 어떤 책에 대한 판정은 "그 책 재미있어", "응" 혹은 "아니"로 끝난다. 그렇다면 재미란 무엇일까?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기본적으로 '지성에의 호소'로서 다른 말로 계산 능력의 점검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그것은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는 일종의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소설 속 허구와 현실과의 접점은 많은 경우 불쾌함을 유발하기 마련이고 그런 곳에서 '재미'는 발생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재미는 통제가 가능할 때만 비로소 존재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성(계산 능력)은 이런 통제에 사용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독자에게 있어 지성의 활용이 창작자에 있어서는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김탁환의 쉐이크>에서 실질적인 창작 지침이 등장하는 것은 절반을 훨씬 넘어서이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는 무엇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창작 태도이다. 그리고 취재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방법, 작업실 꾸미기(그는 이 부분에 자신의 작업실의 예로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아마 이런 부분이 어필할 것이다)이다. 적어도 김탁환이 보기에는 이런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과 작업실을 만든다는 것은 제게 동의어입니다." (154쪽)
준비한 자료들과 이야기 설계도를 쌓아놓고 비로소 쓰기에 들어가기를 충고한다. "일단 쓰고 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말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떠오른 것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어느 글에서 한 이야기다. 우연히 미시마 유키오가 남긴 <금각사> 초고를 읽은 그는 대충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렇게 완벽한 설계도를 짜놓고 쓰면 무슨 재미인가."
그는 필요에 따라 정밀한 자료 조사를 하기도 했지만(논픽션의 경우) 소설의 경우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다시 말해, A4 한 장 정도의 설계도만을 달랑 가지고) 곧바로 쓰기에 들어가는 것으로 선호했다.
즉,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막연한 원(原) 이야기를 써가면서 구체화시켜는 것, 마쓰모토 세이치는 이것이야말로 '소설 쓰는 재미'라고 주장한다. 마쓰모토는 한창 때(그래봐야 40대) 무려 11개의 작품을 동시 연재한 바 있는데, 계간지 연재 하나로도 죽네 사네 하는 지금의 한국 작가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그렇게 무리한 작업을 수행한 것일까? 돈이 필요해서? 설마 그는 이미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가 낸 상태여서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다면? 세이초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알고 싶어서다."
나는 세이초의 초인적인 능력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설을 쓰는 것 자체를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엄청난 양의 작업을 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즉, 그는 지도 없이 그저 나침반 하나만을 가지고 이야기의 바다를 유영했던 것이다. 이에 반해 김탁환이 제안하는 방식은 뭐랄까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는 책의 첫머리에서 다른 창작 지침서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이 가르쳐주고 있은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자세'라고 주장한다.
'자세'는 이야기 구상에서 완성까지, 이야기꾼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일관된 마음가짐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행동의 합일입니다. 테크닉들을 부지런히 익혀간다고 자세가 저절로 잡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자세를 정함으로써 각 국면마다 활용할 테크닉들이 정해지지요. (24쪽)
'일관된 마음 가짐과 구체적인 행동의 합일', 그리고 성실한 답사와 자료 정리, 그리고 작업에 효율을 높여주는 작업실 꾸미기(여담이지만, 그의 작업실은 정말 탐이 난다). 이런 일련의 조언들을 읽다보면, 뭐랄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수양 내지 단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사처럼 말이다. 실제로 미시마 유키오는 검도와 보디빌딩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했으며, 오에 겐자부로는 수영을 하면서 문학가로서의 기본자세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세이초는 이런 자세에서 인공성을 발견한다.
"아쿠타가와의 경우는 문장의 조형적인 면 때문에 감정이입이 쉽게 안 된다. 이것은 미시마 유키오에게도 말할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에게도 말할 수 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재재의 인공적인 측면이다."
그는 아쿠타가와가 자살을 한 것도, 미시마 유키오가 우익이 된 것도 오에 겐자부로가 좌익 쪽에서 활동한 것도 그들의 정치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는 실생활의 결여로 인해 소설적 재재를 인위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견해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일단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만약 그대가 소설가를 지망한다면, 미시마 유키오나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이초 같은 소설가가 되기 원하는가?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하면, 순문학가가 되길 원하는가? 대중 소설가가 되길 원하는가?
<김탁환의 쉐이크>의 최대 단점은 '소설 쓰는 작업'을 적절히 이상화하고 있을 뿐, 실질적인 지침을 전혀 주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 쓰는 방식은 그것을 쓴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물론 김탁환 자신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책을 쓴 것일까? 그에 따르면, 자신의 실패담을 알려줌으로써 지망생들의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성공하면 여기까지 오를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보다 적어도 이런 실패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드리고 싶습니다." (31쪽)
그런데 그는 바로 뒷 쪽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실패가 많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많이 실패할수록 더 좋은 작품에 근접했다고 믿으셨으면 합니다." (32쪽)
실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세이초는 1925년 우연히 기무라 기(木村毅)가 쓴 <소설 연구 16강>이라는 책을 읽게 되는데, 이후 고백하길 이 책에서 소설을 쓰는 방법(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다 배웠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책은 창작 지침서와는 무관하다. 그저 여느 개론서처럼 소설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교과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책이 지금의 세이초를 있게 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이초가 아니었다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은 1960년대에 복각판이 나오게 되는데, 그때 세이초가 서문을 쓴다.)
최근 창작 지침서들이 서점가에서 조용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지침서가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소설 쓰기가 어려운 시대라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문학 지망자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문예창작과를 가고 창작 멘토를 구하고 지침서를 찾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는 '소설 쓰기의 어려움' 같은 것은 이야기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창작을 천형으로 여긴다면,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즉, 누군가의 영혼을 흔드는 것을 목적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독자들이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떨까? 물론 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기 바란다면, 그것을 쓰는 자신부터 즐겁게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재미없는 것은 의미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점만 명심한다면, 창작을 시작하는 데 있어 더 이상 배울 것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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