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입사 성공한 여대생이 '자살'한 까닭은?

[親Book] 장강명의 <표백>

동갑내기 지인을 몇 년 만에 만났다. 이국에서 몇 년 동안 직업 공부를 하다 돌아온 그는 이방인이 끼어들기 힘든 낯선 문화, 불황으로 인해 더 치열해진 경쟁과 날카로워진 분위기, 15달러짜리 막걸리를 한 병 더 먹기 전에 몇 번을 망설여야 하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더 심하더라. 그가 담요를 끌어당기며 웃었다. 오랜만에 한국 와서 친구들을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다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그렇게 힘들게들 취직했는데 노력했다고 더 좋아진 게 없어. 삼 년을 공부해서 자격증을 땄던 친구는 VIP 고객님께서 좋아하시는 사탕 안 사놨다고 깨지면서도 종일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한대. 걔 학교 다닐 때 진짜 열심이었는데, 공부한 거 써먹지도 못 하고. 그래도 그나마 그거 있으니까 취직한 거지, 뭐. 겨우 직장 들어갔던 친구는 임신을 너무 빨리 하는 바람에 일을 그만두고 억울하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라. 다니던 데 수준으로 재취업은 평생 못 한다고 봐야 하니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규직 자리를 쟁취한 다른 이가 듣고 있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세상에는 말이야, 갑하고 을만 있는 게 아니야. 갑 중에도 상갑, 중갑, 하갑이 있고 을에도 상을, 중을, 하을이 있어서, 상을이 제일 좋은 거야. 상을이면 고개만 숙이면 돈은 들어오거든. 휴일인데도 자꾸 걸려오는 전화에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던 그는 그래도 그 6단계 분류에 따르면 갑군이었다. 하염없이 늘어난 가느다란 가방끈과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산다는 자부심만 끌어안고 사는 작가, 아니 요즈음은 '짜P게티' 요리사인 나는 그렇구나, 대단하다, 하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열심히 해도 어차피 우리 세대는 성공할 수가 없어. 이제 성공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저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거지. 우리는 모두가 동의하는 결론에 도달한 것을 만족스러워한 다음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성공이 무엇인지 '떨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표백>(장강명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장강명의 <표백>(한겨레출판 펴냄)은 바로 이런, '구성원들에게 성공을 지상 과제로 제시하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완성된 구조의 변두리에 우두커니 선 20대. 피 끓는 거대한 역사적 과업은 모두 달성되었고 새로이 발굴할 큰 꿈도 영 떠오르지 않는다.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 보지만 이것도 저것도 솔직히 시시하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만적인 타협처럼 느껴진다. 그냥 사는 것에 대단한 의미도 없어 보이는데 그 대단치도 않은 삶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갈수록 늘어난다. 평균 수명 연장을 대단한 의학적 성과처럼 떠들어대지만, 저 고정된 사회에 내 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것 같지도 않거늘 무작정 오래만 산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까마득하다. 미래가 불투명한 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인다.

<표백>의 세연은 이런 완성된 사회 구조와 등을 맞대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완성된 허무를 파고든다. 반짝이는 혁명거리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세상에서 이제 한 번 죽어 보면 어떨까?

주위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대생 세연은 누구나 부러워할 대기업에 입사가 결정된 다음 갑자기 자살한다.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죽음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세연이 남긴 원고가 인터넷에 하나씩 공개되고, 생전의 세연과 자살을 약속한 이들이 공개적인 '자살 선언'에 동참한다. 학업 고민이니 하는 핑계로 덮을 수 없도록, 이 사회가 제시하는 좁디좁은 성공의 문 표준 버전을 통과한 다음, 누구도 예상치 못할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자살 선언이라니, 대체 이건 또 무슨 집단 히스테리람! 병들었다고? 세연은 답한다. 현대 사회는 전부 다 병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슬퍼한다고? 냉정히 말해 당신은 남들에게 그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공동체에 해가 된다고? 그야 당연하지. 바로 그래서 자살한다니까!

<표백>은 절망의 깊이조차 상실한, 표백된 세대에게 세연의 유령을 통해 묻는다. 한국 사회에 죽음보다 더 빛나는 반동이 남아 있는가. 그보다 더 강력한 혁명거리가 있는가.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면 대체 당신이 굳이 죽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삶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의 작은 삶 안에서 더 작은 답을 깊이 고민하게 된다.

<표백>은 무서운 소설이다. 나는 책장을 덮으며 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닐 때까지 이보다 더 무서운 소설을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토록 무서운 소설이 무색무취인 절망과 좌절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허무에 깊이를 만들고, 작은 답이 초라하지 않은 이유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한 한편, 삶을 변명하는 이에게 그 자체로 답이기도 하다. 책 한 권. 존재란, 원래 이렇게 작지만 강력한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