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가 혹하는 약물은 스테로이드…육상 선수는?

[예병일의 '스포츠 뒤집어보기'] 도핑 스캔들의 흑과 백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1.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100미터 달리기 우승자 벤 존슨.
2. 1998년 메이저리그에서 70개 홈런을 기록하면서 로저 메리스의 61개 기록을 깨고 한 시즌 홈런 신기록을 기록한 마크 맥과이어.
3. 메이저리그 통산 762개의 최다 홈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배리 본즈.
4.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100미터 달리기 우승자 저스틴 게이틀린.
5.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여자 400미터 개인혼영 우승자 페트라 슈나이더.


정답은 모두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이유로 매스컴에 등장한 선수들입니다.

▲ 벤 존슨. ⓒ국민체육진흥공단
서울 올림픽 남자 100미터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지난 대회 4관왕 칼 루이스를 누르고 대회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벤 존슨의 영광은 3일 천하로 끝났고, 그걸로 선수생활도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마크 맥콰이어와 배리 본즈는 홈런 기록을 세우기는 했지만 "금지 약물 사용 선수"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니고 있고, 이후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 복용이 만연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선수들이 적발 또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보다는 운이 좋은 저스틴 게이틀린과 페트라 슈나이더는 메달 박탈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게이틀린은 4년간 선수 생활이 중단되었습니다. 훗날 슈나이더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 "당시에 동독 선수에게는 금지 약물이 공공연하게 복용되었고, 나는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내 독일 기록이 정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기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에리스로포이에틴의 명성을 올려 준 1998년 투르드프랑스 대회

얼마 전 마라톤 국가 대표 선수의 금지 약물 복용이 의심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기사를 보니 금지된 조혈제 사용이 의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혈제"라고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입니다. 약자로 'EPO'라고도 하는 이 약물은 적혈구 생성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적혈구가 산소 운반 기능이 있다는 것쯤은 중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운동을 하면 숨이 찬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몸은 운동을 하는 경우 산소 요구량이 증가됩니다. 사람의 몸에 적혈구의 수가 많아진다면 산소 운반 능력이 커지게 되므로 피로감을 덜 느낀 채 운동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는 것은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 환경에 완전히 적응될 수 있도록 적혈구 수가 낮은 지대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즉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적응된 신체는 산소 운반 능력이 뛰어나므로 운동을 하는 경우 다른 경쟁자들보다 잘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에리스로포이에틴이 스포츠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 올림픽 크로스컨트리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핀란드의 이에로 맨티란타에 의해서입니다. 1972년 삿포로 동계 올림픽에서 금지 약물인 앰피타민을 복용하여 적발된 바 있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에리스로포이에틴 생산 능력이 아주 뛰어난 유전질환 환자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후로 많은 운동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에리스로포이에틴을 사용해야겠다는 충동을 받곤 합니다.

에리스로포이에틴은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에리스로포이에틴을 과량 투여하면 갑작스런 심장 마비에 의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적정량을 사용하는 일 외에는 건강을 위해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1990년에 금지 약물로 지정되었지만 임상적으로 적혈구 부족에 의한 빈혈 환자들의 적혈구 기능 보충을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약은 1989년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환자들에게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에포젠(epogen)입니다.

에리스로포이에틴은 1998년 매년 여름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투르드프랑스(Tour de France) 사이클 대회에서 참가 선수들이 무더기로 투여 받은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유명해졌습니다. 이 대회에서 사이클 선수들의 광범위한 에리스로포이에틴 복용이 다시 한 번 금지 약물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그 결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전 세계적으로 도핑에 관여하는 모든 기관을 관리할 수 있는 국제기구의 창설을 추진하여 1999년 11월 10일,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닌 금지 약물 복용

마크 맥콰이어가 70개의 홈런을 기록하던 1998년, 시즌이 중반을 지날 무렵부터 새 기록 수립에 대한 기대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새미 소사가 바짝 그를 뒤쫓음으로써 두 명이 함께 새 기록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고, 또 두 선수 모두 새 기록을 수립하더라도 그 해 홈런왕을 놓칠 수 있어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66개의 새 홈런 기록을 수립한 새미 소사는 홈런왕 타이틀을 마크 맥콰이어에게 넘겨줌으로써 가장 아쉬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마크 맥콰이어는 금지 약물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여 근육을 강화시킨 까닭에 홈런왕 자격이 없으니 자신의 힘으로 경쟁을 벌인 새미 소사가 가장 손해를 본 선수라는 평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새미 소사도 똑같이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01년에 73개의 홈런을 기록함으로써 마크 맥콰이어의 한 시즌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고, 2007년에 756호 홈런을 기록함으로써 행크 아론의 최다 홈런마저 갈아치운 배리 본즈도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이들의 홈런 기록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 가까운 미래에 최다 홈런 기록을 다시 세울 것으로 기대되던 깔끔한 인상의 알렉스 로드리게스마저 스테로이드 복용이 알려지는 등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약물 남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믿을 선수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농구 팀에 입단하러 온 외국 선수들 중 금지 약물 복용이 발각되어 계약이 취소된 경우가 있고, 2007년에 프로 야구 외국 선수 중 최초로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다니엘 리오스(22승 5패, 방어율 2.07)는 일본팀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활약하던 중 금지 약물 복용이 탄로나 선수 생활을 박탈당한 채 퇴출되고 말았습니다.

금지 약물 복용은 우리나라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야구 선수들이 흔히 사용하는 스테로이드는 근육을 키워 주므로 보디빌딩 선수들이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있고, 일부 선두들은 한약을 사용하다 예기치 않게 도핑에 걸리는 수가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국가 대표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임은지가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알려져 자격이 정지되었고, 1995년에는 마라톤을 제외하고 가장 세계 수준에 근접한 바 있는 800미터 달리기 국가 대표 이진일 선수가 전혀 예상치 못한 도핑 검사에서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됨으로써 2년간 선수 생활을 접어야했습니다. 2년간의 칩거 후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1994년에 보여 준 세계 7위권의 기록과는 거리가 있었고, 결국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은퇴를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제치고 종합 2위에 오른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줄곧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중국이 국제 스포츠계에 등장하여 아시안게임을 두 번 치를 때까지는 일본이 항상 1위를 차지했지만 1982년 뉴델리에서 중국에 뒤져 2위로 내려앉은 후 서울(1986년)과 베이징(1990년)에서 연속 3위를 차지한 일본은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1994년 대회에서 2위를 목표로 했으나 금메달 세 개차이로 또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폐막식이 끝나고 한국 선수단이 철수한 후 네 명의 한국 금메달리스트가 약물 도핑 검사에 걸렸다는 이유로 메달을 박탈당하면서 금메달 한 개 차이로 일본에게 2위를 내주어야만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2위를 차지하려는 일본의 음모론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지만 약물 도핑 검사가 갈수록 엄격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우리나라 선수들도 약물 복용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조혈제와 철분 제제

금지 약물 복용에 대하여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올 무렵, 마라톤 국가 대표 감독과 선수는 결코 금지약물을 복용한 적이 없으며, 단지 철분 제제를 사용했을 뿐이라는 해명을 했습니다.

적혈구가 산소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적혈구 내에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을 해야 합니다. 헤모글로빈은 네 개의 헤모글로빈 사슬이 모여 한 덩어리를 이룬 구조를 하고 있으며, 가운데 부분에 철이 결합하고 있다가 피 속으로 들어오는 산소와 결합을 합니다. 피 색깔이 빨갛게 보이는 것은 헤모글로빈의 철이 산소와 결합을 하기 때문이며, 철 대신 다른 금속이 결합하고 있으면 피의 색깔도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토끼 눈은 빨갛지만 오징어 눈은 파랗게 보이는 것은 헤모글로빈에서 산소와 결합하는 물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하여 운반하다가 필요로 하는 조직에 산소를 떨어뜨려 줌으로써 인체의 특정 부위가 죽지 않고 살아 있게 합니다. 인체에 철이 부족한 경우는 헤모글로빈에 결합할 철이 부족하게 되어 헤모글로빈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철 부족에 의해 산소 운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임산부들은 태아에게 철을 보내 주므로 자신이 필요한 철이 부족하여 철 결핍성 빈혈이 잘생깁니다. 이를 진찰한 의사는 철분 제제를 복용하도록 처방을 하며, 철분 제제를 결합하면 어지러운 빈혈 증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철분 제제를 복용하는 것은 금지된 것이 아니므로 마라톤 국가 대표 감독과 선수가 철분 제제를 복용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피 속에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세 가지 종류의 세포와 수많은 단백질을 비롯한 물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상이 있을 때 가장 빨리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인 빈혈은 적혈구에 의한 산소 운반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발생합니다. 빈혈의 원인은 적혈구 생산 감소, 헤모글로빈 생산 감소, 비정상 헤모글로빈 합성, 철 결핍, 출혈 등 아주 다양합니다.

"조혈"이란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피를 만들어 주는 것"이지만 다양한 물질의 혼합물인 피 전체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은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하고, 적혈구 또는 적혈구를 대신할 수 있는 물질이 산소 운반 기능을 정상 수준으로 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경우 흔히 "인공 혈액"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철이 부족하여 적혈구의 산소 운반 기능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철분을 투여하는 경우는 도핑 검사에서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지만 에리스로포이에틴과 같이 적혈구 생산을 촉진하는 물질을 투여하는 경우는 스포츠계에서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제보자가 철분 제제와 에리스로포이에틴의 기능을 혼동한 것인지, 도핑 검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인지, 어떤 음모에 의해 제보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금지 약물 복용이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마라톤 선수들이 빨리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좋은 성적을 거두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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