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우주의 비밀,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레너드 서스킨드의 <우주의 풍경>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우주 탄생의 원리를 밝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지난 수천 년 동안 던졌던 이런 질문을 물리학이 밝히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숙제가 인간 역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인 입자 가속기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강입자 충돌기)에서의 실험과 끈 이론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에 의해 아주 조금씩 풀리고 있다.

일반인 중 일부는 우주 탄생은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신화의 영역이라고 강하게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도 우주 탄생의 원리를 지배하는 물리학에는 인간적 요소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연법칙들은 수학적인 관계식에 따라 결정되며, 이러한 법칙은 그 논리적 구조에 의해 '유일하게'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그런데 레너드 서스킨드는 <우주의 풍경>(김낙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가장 수학적인 물리학인 끈 이론에서 제시하는 우주 탄생의 모습이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 원리란 우주를 관찰할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우주는 잘 짜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 <우주의 풍경>(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김낙우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조금이라도 다른 물리 법칙이었다면 인간 또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인간 원리는 물리학자 사이에도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논란을 잘못 이해한 지적설계론자라고 불리는 창조론 옹호자까지 가세해서 논쟁의 폭은 더욱더 넓어졌다. 이 책은 인간 원리가 어떤 것인가 많은 비유를 들어가며 명쾌하게 그리고 단정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인간 원리는 과학자, 철학자, 신학자들의 담론에 오래전부터 등장했다. 그러나 과학자에 의해서 심각하게 처음 논의가 된 것은 노벨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에 의해서였다. 그는 그 당시 우주 상수가 왜 그렇게 작은 값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인간 원리를 통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우주 상수는 소수점 200자리에서 처음으로 0이 아닌 숫자가 나타나는 거의 0에 가까운 값을 가지고 있다. 와인버그가 인간 원리를 동원해서 우주 상수의 값을 설명하려 할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값이 완전히 0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우주 상수를 물리학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력이 우주에 작용하고 있으면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중력 때문에 그 팽창 속도가 감속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 관측된 우주는 그 팽창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가속 팽창을 하고 있었다.

이 발견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우주 상수(또는 암흑 에너지)는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우주 상수는 밀쳐내는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밀치는 우주 상수가 있는 우주를 끈 이론으로 기술하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KKLT의 이론'이라 불리는 것도 나왔다. 4명의 물리학자의 이니셜을 딴 이 이론에선 우주가 아주 다양할 수 있음을 보인다. (이에 대한 아주 쉬운 설명은 물론 책에 들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부소와 폴친스키는 이러한 다양한 우주의 모습이 10의 500제곱 개 정도 있다고 추산하기에 이르른다. 서스킨드는 이토록 많은 가능성 중 우리 우주를 가능케 하는 물리 법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바로 '우주의 풍경'과 '인간 원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주의 풍경이란,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수많은 가능성 하나하나가 다른 물리 법칙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10의 500제곱 정도의 다른 우주가 가능하고 이러한 우주들이 우리 우주를 포함한 '메가버스'의 일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메가버스란, 각각 물리 법칙이 다른 작은 호주머니 우주들로 가득 찬 더 큰 다중 우주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러한 주장을 처음 들으면 믿기 힘들 것이다. 물리학자들 중에도 많은 논란이 있어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서스킨드는 매우 설득력 있게 이 책을 읽은 독자를 자기 진영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는 끈 이론 학자의 대부로서 모든 끈 이론 학자의 선생님이다. 그러나 그의 더 큰 장점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통해 가장 어려운 개념도 이것이구나 하고 무릎을 치고 깨닫게 가르쳐주는 능력이다. 이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굵은 목소리가 담겨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보통의 과학서와는 다른 책이다.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최신의 과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자연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결국 모든 가능성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메가버스에는 그 모든 가능성을 다 활용하고, 그것들을 단순한 수학적 가능성에서 물리적 실재로 변화시킬 자연스런 메커니즘이 존재할 것인가? 이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론 물리학자들이 나를 포함해서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주론 학자들은 우리의 우주는 엄청나게 큰 메가버스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과 동시에 이론 물리학자들은 우리의 보통 자연법칙을 수학적 가능성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풍경의 작은 구석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강등시키는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의 배경에는 끈 이론이 있다. 끈 이론이 과연 실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많은 동료 물리학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서스킨드는 책의 9장에서 지난 100년간 물리 실험 없는 물리학의 가상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끈 이론이 준비해야 할 앞으로의 100년을 염두에 두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장의 말미에, 자신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실험 물리학자들의 창의력의 의한 놀라운 실험 결과들이 있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가 말하는 '신의 얼굴'의 모습인 우주배경복사, 그리고, 현재 서서히 가동을 시작하여 내년(2012년) 초면 경천동지할 데이터를 발표할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 유럽핵연구평의회)의 LHC를 통해 나올 시험에 대한 기대감을 적고 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던 인간이 우주의 귀퉁이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인간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듯이 어쩌면, 우주의 풍경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화들의 마지막 보루마저 없애버릴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나폴레옹이 라플라스에게 왜 그의 천체역학에는 신에 대한 언급이 없는가 물었을 때 "폐하, 저는 그 가설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대답한 말로 책을 시작하고, 다시 책을 맺고 있다.

물리에서의 유일성과 우아함의 신화가 깨어지고 있다고 서스킨드는 쓰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다윈의 진화론보다도 더 중대한 선언일지도 모른다. 모든 물리학자들이 이런 인간 원리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솔한 그의 설명은 모든 학자들이 귀담아 듣고 있다.

서스킨드는 "21세기 말에 이르면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이 현재를 돌아보고, 20세기의 우주 개념이 깜짝 놀랄 만큼 풍부한 풍경을 가득채운 메가버스에 자리를 내준 시대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메가버스 안에 들어있는 하나하나의 우주는 마치 블랙홀의 내부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호주머니 우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호주머니 우주들과의 정보 교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스킨드는 블랙홀에서의 정보 소실을 강력히 주장하던 호킹과의 논쟁에서 결국 그가 틀렸다고 설득하여 이긴 예를 들면서, 다중 우주의 흔적을 어쩌면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고 있다.

간혹 번역서를 읽다보면 무슨 말을 하지는 잘 모르겠는 때가 있다. 번역이 부드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영어로 직역을 해보면 '아, 이런 것이지' 할 때가 있다. 간혹 번역자가 과학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번역할 때도 있어서 쓴웃음을 지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흠 잡을 데 없는 번역이다.

이런 훌륭한 번역을 한 김낙우는 한국의 제2세대 끈 이론 학자의 선두 주자로서, 국제적으로 아주 활발한 끈 이론 연구를 하는 학자이다. 그 바쁜 연구 활동 중에 어떻게 이런 좋은 책을 충실히 번역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번역자의 노고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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