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물리학을 지루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이므로 그걸로 스스로 위로하고 잊어야 하는가, 아니면 어쨌거나 그들에게도 정당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들을 고려하여 책을 써야 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 ▲ <모두를 위한 물리학>(한스 그라스만 지음, 이정모 옮김, 사계절 펴냄). ⓒ사계절 |
맞다. 이것은 아마 오늘날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혹은 매일같이 고민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라스만은 이 책을 통해서 이 문제에 나름대로 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내놓는 답의 방향은 대체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은 이렇다.
지루해지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옛 물리학이 아니라 새로운 물리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옛 물리학도 재미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 물리학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 새로운 문제를 푸는데 옛 물리학이 도움이 될까? (…) 옛 물리학이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의 내용의 절반 정도는 뉴턴 역학,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파동 그리고 열역학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대학교 1학년이 배우는 일반 물리학 교과서의 첫 학기 부분이다. 그러니까 바로 옛 물리학이다.
그라스만의 설명은 직관적이면서, 기초적인 현상으로부터 일반적인 원리를 잘 끄집어내고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물리학의 원리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이라면 이 책이 특별할 게 없다. 그라스만도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이런 것은 "물리학이 아니라 오히려 박물관"이라고 말한다.
이 책이 평범한 내용을 이야기하면서도 힘이 있는 것은 그라스만의 강력한 메시지 때문이다. 그는 물리학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힘을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미처 실현하지 않은 많은 가능성이 있고, 이런 기초적인 물리학만으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의 회사 아이소모프를 통해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의 중심 내용은 정보 물리학이라는 분야를 소개하고, 그 관점에서 진화와 인간을 보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아마도 그라스만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이 부분일 것이다. 그는 정보를 선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정규 수(canonical notation)'를 이용하면 자신의 선형 계산기(라기보다는 그냥 계산 표)가 양자 컴퓨터와 같이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IBM의 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초보적인 성과를 달성했다고 보고한다. 이것은 새 물리학이다.
사실 정보 물리학은 잘 정의되거나 합의된 개념이 아니며, 그라스만이 처음 쓴 말도 아니다. 정보 물리학이란 말은 복잡계의 물리학이나 물리학에 컴퓨터를 이용하는 다양한 융합적인 시도에 대해서 흔히 쓰는 말이며, 한국 대학에도 이런 이름의 과목이나 연구실이 아마 여럿 있을 것이다.
그라스만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자신만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므로 기존의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 물리학 연구와 혼동되면 곤란하다. 그리고 내가 지식이 부족해선지, 이 책의 설명이 부족해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책의 이 부분은 내게는 과장과 억지로 보인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미뤄두기로 하겠다.
물리학의 내용만큼이나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현대의 물리학 연구를 바라보는 그라스만의 입장이다. 그는 관료 사회로부터 연구비를 타서 쓰면서, 점차 관료화 되어가는 오늘날의 (독일의) 물리학계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아마도 이것은 독일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서 많은 나라에 상당 부분 적용되는 비판일 것이다. 연구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서, 기초 연구의 대부분이 훌륭하게 성공했다는 보고서를 내놓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한국에서는 어쩌면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또 심지어 연구 현장에서도 개개인 연구자의 연구를 평가하지 않고, 그룹의 방향에 따라 연구와 결과의 발표가 이루어지는 거대 과학 시스템을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 유럽핵연구평의회)의 UA1 실험과 미국 페르미 연구소의 CDF 실험에 참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비판한다. 이런 내용은 너무 민감해서 한쪽 당사자의 말만 듣고서 국외자인 내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그라스만이 본문에서 말한 논문이 발표된 것은 모두 사실이고, 오늘날의 거대 가속기 연구에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과 함께 그라스만이 내놓은 대안은 참으로 파격적이다. 예를 들면 거대 연구소를 하나 없애고 그 돈으로 독일 최고의 젊은 박사 과정 100명에게 한 사람 당 연간 100만 유로(약 15억원)씩 주라는 식이다. 확실히 통쾌하고 신선하다. 그 자신도 "처음에는 확실히 90퍼센트의 돈이 의미 없이 날아갈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거대 연구소들은 100퍼센트 쓸모없는 일만 하고 있으므로 그래도 진보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책임, 새로운 창의성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주장이고 어디까지가 이상인지가 모호해진다.
한편, 그라스만의 가속기 실험 비판에도, 입자 물리학자로서 내가 동의하지 못할 구석이 여럿 있다. 그런데, 아마도 나보다 입자 물리학의 현장을 더 잘 아는 저자가, 지나치고 때로는 삐딱한 비판을 하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의 목적이 일종의 '선동'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 책은 자신의 주장을 위해서 물리학을 '이용'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주장이 유토피아적이고, 몽상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생각이 반드시 의미 없는 구호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저자인 그라스만이 제대로 된 물리학자로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가지고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물리학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바닥에 깔려있다. 꿈은 사실 클수록, 허황될수록 아름답다. 뭐가 어쨌든 첫 장의 제목만 봐도 그렇다. "세계화라는 동화에 맞서는 물리학", 멋지지 않는가?
때로는 신랄하고, 때로는 허술하고, 때로는 지나치고, 때로는 유토피아적인 몽상이면서 간혹 정곡을 찌르기도 하는 이 책을 읽고 나니, 버나드 쇼의 말이 생각났다.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번역이 아주 나쁘진 않지만 요령부득인 구절이 간혹 눈에 띄고, 오역(이라고 할지 오기라고 해야 할지)도 종종 보인다. 더 곤란한 것은 역자가 굳이 달아놓은 주에 이상한 구절이 눈에 띄는 것이다. 과학책에서 이런 오류는 잘못된 과학 지식이 되어 잘 교정되지도 않고 퍼지기 때문에 매우 해롭다. 교정 및 수정을 바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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