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캐널의 러브는 1890년대 초 나이아가라 강을 온타리오 호에 연결시키는 운하를 팠던 윌리엄 러브의 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러브 운하 건설을 통해 이 지역에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기여하려 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존하기 위해 나이아가라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자본마저 떨어져 폭 15미터, 길이 1.6킬로미터, 깊이 3~12미터만 파고 말았다.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나서 이 운하에는 물이 채워져 인근 지역 어린이들이 여름에는 수영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는 곳으로 변했다. 1920년대 운하는 나이아가라폴의 쓰레기 매립장이 돼 시는 정기적으로 도시 생활 쓰레기를 이곳에 투기해왔다. 1940년대에는 미군도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곳을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 때 나온 폐기물을 포함해 각종 폐기물의 처분장으로 사용했다.
1942년 후커케미컬도 이곳에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 것을 승인받아 55갤런의 금속 또는 섬유 조각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후커케미컬은 1947년 이 운하와 21미터 너비의 양쪽 둑을 사들였다. 그리고 전쟁 뒤 1948년 나이아가라폴이 이곳에 도시 생활 쓰레기 매립을 끝냄으로써 후커케미컬은 이 매립지의 유일한 사용자이자 소유주가 됐다.
이때부터 1953년까지 6~7.5미터 깊이의 이 운하 폐기물 매립지에 염료 제조 때 나온 알칼리, 지방산, 염소화탄화수소. 향료, 고무와 합성수지용 용매와 같은 화학물질 2만1000톤을 버렸다. 그 위에는 흙을 덮었으며 1953년 이후에는 이곳에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폐기물 투기가 끝날 무렵 나이아가라폴에는 경제 붐이 일어나 인구가 기록적인 비율로 증가해 8만5000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시 교육 당국은 새로운 학교를 지을 땅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후커케미컬이 소유하고 있던, 유해 폐기물이 묻힌 이 운하 매립지의 구입을 시도했다.
후커케미컬은 학교위원회 위원들을 매립지로 데려가 시추를 한 뒤 표층 아래에 독성 물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안전 문제를 들먹이며 팔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학교위원회가 포기하지 않자 단돈 1달러에 매각한다는 조건으로 1953년 4월 28일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 계약서에는 매립지 위에 건물을 지을 경우 위험할 수 있다는 17줄의 경고문이 포함돼 있었다.
이 땅 위에는 1954년 학교가 지어져 1955년 400명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녔고 1958년에는 두 번째 학교가 인근에 문을 열었다. 1957년 나이아가라폴은 이곳에 저소득층 주택과 단독 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학교위원회는 학교 터 외의 땅을 민간 개발자에게 팔아넘겼다.
▲ 러브 캐널 인근 지역주민들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wikipedia.org |
1978년 러브 캐널 사건은 전국적인 뉴스가 됐으며 언론은 이 사건을 "공중 보건 시한폭탄", "미국 역사상 가장 소름끼치는 비극 가운데 하나"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지미 카터는 1978년 8월 7일 국가 보건 긴급 재난으로 선포했고 연방 기금을 배정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연방재난지원국에 나이아가라폴을 도와 러브 캐널 지역을 구제할 것을 명령했다. 자연 재난이 아닌 곳에 연방 긴급 기금을 사용한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과학적 연구가 주민들의 질병이나 기형 등에 대해 매립지 화학 물질이 관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7종의 알려졌거나 의심되는 발암 물질이 확인됐지만 과학자들의 의견은 갈렸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벤젠이었다. 매우 유독한 물질인 다이옥신도 물속에서 검출됐다. 다이옥신 오염은 1조분(trillion)의 1 단위로 측정될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1조분의 1은 100만분의 1을 다시 100만분 한 것이다. 러브 캐널에서는 물 표본의 다이옥신 함량이 53ppb(10억분의 1단위) 수준으로 매우 높았다.
1979년 미국 환경청(EPA)은 주민들의 혈액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백혈구수가 매우 높았다. 이는 백혈병과 염색체 손상의 전구 증상에 해당한다. 주민의 33%에서 염색체 손상이 진행 중이었다. 정상적인 집단에서는 인구의 1%에서만 염색체 손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어떤 연구에서는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미국국가연구평의회(NRC)의 주된 관심은 음용수보다는 지하수에 모아졌다. 지하수에 녹아든 유해 물질은 지층에 스며들어 토양 중 공기나 토양을 통해 사람에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정부는 이 지역 800가구 주민들을 소개시켰고 집에 대해서는 변제했다. 그리고 의회는 1980년 흔히들 슈퍼펀드(Superfund)법이라고 하는 종합환경대응보상책임법(CERCLA, Comprehensive Environmental Response, Compensation, and Liability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오염 원인자가 피해에 대해 보상을 하도록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진 기관이 독성 물질 및 질병 등록국(ATSDR)이다.
슈퍼펀드법에 따라 미국이 정화해야 할 지역만 무려 800곳에 이른다. 미국은 1986년 슈퍼펀드법을 강화하는 내용의 수정법을 만들어 슈퍼펀드기금을 무려 85억 달러(10조 원)로 상향시켰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독 물질 불법 매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다.
1994년 연방지방법원판사인 존 커틴은 후커케미컬/옥시덴탈정유사에게 회사가 앞뒤를 가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폐기물을 다루거나 나이아가라폴 학교위원회에 매립지를 파는 과정에서 부주의한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평결했다. 미국 환경청은 옥실덴탈정유사(후커케미컬의 후신)를 상대로 소송을 내 1995년 1억2900만 달러(약 1500억 원)의 매립지 복원 비용을 받아냈다. 주민들의 소송도 몇 년 뒤 승리로 귀결됐다.
러브 캐널 사건은 컴퓨터 게임, TV 드라마,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돼 널리 알려졌다. 또 2000년에 개봉돼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와 1982년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투씨> 등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되기도 했다고 한다.
▲ 미국 환경청 직원들이 독성 물질로 오염된 지역을 조사하기 위해 시추하고 있는 모습. ⓒwikipedia.org |
칠곡 미군 기지 고엽제 사건은 그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 사건이다. 이는 주한 미군이 우리 땅에서 저지른 환경 범죄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은 서울 용산 미군 기지에서 한강에 독성 물질인 포름알데히드(포르말린)를 다량 방류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송강호 주연의 <괴물>이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해 주한 미군이 저지른 환경 재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다. 이밖에도 의왕 학의천 기름 유출 사건을 비롯해 주한 미군이 일으킨 크고 작은 환경 사건이 많이 있다.
칠곡 고엽제 불법 매립 사건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먼저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에는 다이옥신 성분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에도 베트남 참전 용사들이 이 고엽제 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이다. 어떤 위험에 대해 피해, 그것도 심각한 피해를 입은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을 경우 공중은 그 위험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구나 고엽제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직 살아 있으며 숨졌다 하더라도 그 유족들이 있어 관심은 증폭된다.
우리는 미국의 러브 캐널 사건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하며 이번 사건에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첫째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적용해 우리에게 환경 피해(또는 건강 피해)를 준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조사, 복원 등에 들어간 비용을 배상받아야 한다. 둘째, 각종 조사 등에 우리 정부가 대등하게 참여해야 하며 주민 대표도 참여시켜야 한다.
땅과 지하수 등이 유독 물질로 오염된다는 것은 우리 인체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번 주한 미군 고엽제 불법 매립 사건을 계기로 주한 미군이 저지른 환경 범죄 뿐만 아니라 주한 미군 지위에 관한 협정(일명 소파(SOFA))에 따라 우리에게 넘긴 주한 미군 소유 땅과 건물의 환경 위해성과 인체 위해성을 철저하게 평가해야 한다.
부산의 하얄리아 부대나 평택 기지 등 주한 미군이 머물렀던 자리에는 각종 화약, 기름, 석면, 중금속 오염 등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부는 소파를 핑계로 그 정확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국회에조차 관련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스스로 주권과 환경권, 생명권을 포기하는 굴욕적인 태도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소파 가운데 불합리하거나 종속적인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하며 그 실상을 숨김없이 즉각 알려야 할 것이다. 또 이번 사건을 일회성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정부에 있다면 미국이 러브 캐널 사건을 계기로 슈퍼펀드법을 만들어 대처하고 있듯이 우리도 이와 유사한 법과 기금을 만들어 오염자들한테서 재원을 받아내 이 땅에 파묻힌 각종 유독 물질에 대한 정밀조사와 복원에 당장 나서야 한다.
환경이 아프면 우리 몸도 아프다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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