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생각→암 치료? <시크릿> 괴담이야!"

[프레시안 books]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실무경험이 풍부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분"

한 포털 사이트의 채용 글의 지원 자격 중 하나이다. 업무 체계가 잘 잡힌 대기업은 모르겠지만 주로 개인적 만남의 차원에서 일이 진행되는 중소기업이나 행사 업무가 존재하는 기업들의 모집 공고엔 '커뮤니케이션이 원만한 자'라는 표현이 빠지는 일이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원만함은 '외국어 능통'과는 또 다른 의미로 직장인들의 필수적인 덕목이 되었다.

바바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은 이것을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긍정적인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타인과 접촉하는 환경에서는 일을 해가는 경험이나 지식보다 인간관계를 맺는 소프트 스킬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지 못했다는 것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는 일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86쪽)

▲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 에런라이크는 세포생물학 박사 출신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긍정의 배신>의 첫 문장은 인상적이다.

"'긍정적 사고'라는 문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인생이 최악의 상태에 놓였을 때였다. 암 진단을 받기 직전에 낙관주의자인지 비관주의자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아마 대답하는 데 애를 먹었을 것이다." (37쪽)

저자는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암 투병의 과정에서 느낀 의료 현실, 핑크리본의 상징성과 관련자들, 자기 계발서의 무한 긍정주의, 초대형 교회들의 번영 신학, 라이프 코칭과 기업의 커넥션 등을 이 책을 통해 각 장마다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고백적 수기 형식인 1장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방함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쾌활성이다. "쾌활함은 분노를 넘어 병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고" 자선 행사와 마라톤 대회 등의 스폰서십을 유지하기 위해 게시판과 대변인에게 전해져야 할 것들은 오직 "환자들의 낙천적인 기대'"여야 했다.

이를 거스르면 환자에게 좋지 않고, 그것은 곧 이단이 되어 '생존자 공동체'에서 추방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유방암은 예쁜 스카프를 고르는 등의 창조적 탈바꿈의 기회가 되고 유방암 환자들은 이들을 위한 몇 종류의 곰 인형과 유방암의 상징인 핑크리본을 구매하거나 핑크리본이 가득한 소품을 유방암 관련 재단에서 구매해 방을 꾸미는 등의 일상의 행복을 찬양했다.

과도한 긍정이 암의 치료를 정말 돕는지에 대해 저자는 과학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유방암은 환경적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설이 지지를 얻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떨친다고 해서 '자연 치유'를 할 수 있는 수단을 인체가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게다가 암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 더 이상 진화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면역 체계의 변화로 암이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처럼 암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은 감정에 영양분을 공급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끔찍한 비용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분노와 공포라는 실체적 감정을 부정하고 쾌활함의 분칠 아래 묻어 두도록 요구"(68쪽) 할 뿐이지만 이것은 의료 종사자나 환자의 친구들, 그리고 재단, 의료 산업, 각종 심리 치료 센터가 맞물린 거대한 산업인 동시에 그들 각각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고 암환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기본 소양이 되었다.

긍정에 대한 찬양은 암 치료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일자리에서 밀려나 빈곤을 향해 추락하고 있는 실업자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을 기회로 받아들이라는 말을 듣는다. 여기서 약속하는 결과 또한 그 자체로 일종의 치유다." (75쪽) 해고되어도 불평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기업에 의해 대량 구매되어 직원들에게 나눠졌다.

전국강연자협회에 참석한 저자는 한국의 다단계 기업의 다이아몬드 판매자가 하는 말과 비슷한 강연을 듣는다. 오로지 빛나는 미래만을 강조하며 그것이 원하면 이루어 질것이며 현재는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싼 돈과 청중이 약속되는 강연자가 되기를 원하는 코치와 트레이너, 유사 건강 산업 종사자들뿐이었다.

서비스 산업 노동자들은 진실로 긍정적일 필요는 없었다. 열의가 있는 느낌을 '풍기면' 충분하기에 우리는 끝이 올라가는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언니들을 통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갱님" "사랑합니다. 고갱님" 따위의 멘트를 들으며,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분노를 터뜨려야했다. 오히려 영업 사원들은 긍정적인 사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원래 고독한 판매원들이었고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존경을 받지 못했다(148쪽).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성공을 이끄는 자기 실현적인 예언이 되었고 간절히 원하면 실현된다는 '끌어당김의 법칙' 을 설파하는 베스트셀러 <시크릿>은 그렇게 어떤 보통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얻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오프라 윈프리는 진보주의자로 간주되는 긍정주의의 쇼의 진행자였다.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쾌활하고 자기 민족적인 세계관을 가지게 된 유래를 "기독교의 탈을 쓴 긍정적 사고"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만큼이나 칼뱅주의 역시 "사회적으로 강요된 우울증이었고 정신적인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노동이었다." (114쪽) 자기 혐오에 이를 정도의 자기반성과 끝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칼뱅주의의 무게는 신도 개개인이 감당하기엔 벅찬 것이었다. 그런 불안은 사람을 병들게 했고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신념들은 미국 사회를 장악했고 자기 계발 논리와 같은 위상을 가졌다. <시크릿>은 '인생의 바이블'이 되었고, 성경책 옆에는 <긍정의 힘> 이 놓였다.

번영 신학을 교회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새들백교회 목사 릭 워렌은 다보스포럼에서 밥을 먹을 정도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주요 교단이 성장이 멈추거나 감소한 반면, 복음주의 교단은 급격히 성장했고 '적극적인 사고'를 키워드로 제시한 '번영 신학'은 현재 가장 잘 나가는 개신교 원리가 되었다. 교회에 기업 경영 기법이 도입되었고 목사들은 신앙인 전문 컨설턴트들에게 상담을 받았다. 목사는 CEO이자, 긍정을 외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였다. 물질의 풍요를 '구하는 자들'은 직장에서 쇼핑몰로 기업형 교회로 차를 몰았고, 이들은 믿으면 된다는 복음을 듣고 확신을 얻었다. "긍정 신학은 아름다움과 초월, 자비가 없는 세계를 완성하고 승인했던 것"이다(205쪽).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는 지식인인 저자가 개인적 체험을 사회적으로 발견해낼 때 이런 저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저소득 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워킹 푸어의 현실을 고발한 뿐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취업 과정을 따라가 본 뒤 내놓은, 미끼 상술이라는 뜻의 . 바버라 에렌라이크는 자신의 겪은 암 투병 체험 수기를 사회적 긍정 신화를 무력화시키는데 기꺼이 사용한다.

지식인이 쓴 이런 자기 고백적인 현실 고발서를 우리는 최근에 보았던가. 지식인과 독자와 필자들마저 모두 자기 계발서와 가벼운 책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왜 정작 이러한 성찰을 만들어내지 못할까.

세계 10대 대형 교회 순위에 1, 2위를 비롯해 5개를 올려놓은 개신교 국가인 한국에서는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개인의 몫으로 보장해 주는 것 같은 기복신앙만을 강조해왔다. 성황당과 '비나이다'를 대체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었고 '주의 사자인 당회장 목사님'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젊은 목사들이 대거 귀국해 목회자 세대교체를 이루어낸 한국 사회는 미국 신앙 서적을, 미국의 자기 계발서를 수입해야했기 때문에 보다 '빡세게' 이 체제를 내면화시킨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 긍정의 신화를 어디까지 '삽질'해내고 있을까. 2009년 10월에 발표된 이 책이 지금 한국에 소개된 것은 바로 한국 사회를 성찰할 기회를 위함일 것이다. 긍정주의가 다른 것을 가려 보이지 않게 한다면, 이런 책을 내는, 또는 독자들이 이런 책 밖에 읽지 않는다고 판단해버리는 출판사들 역시 저자가 지적하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게 바로 이 책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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