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6자회담의 2.13 합의, 즉 북한 핵시설의 작동을 못하게 하는 불능화 조치들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후 약 1년간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는 약 80% 정도의 공정이 진척되었다.
그러나 북핵 폐기의 사전단계인 불능화 공정은 마무리를 보지 못하고 2008년 말 6자회담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그 근본원인은 핵무기 개발옵션을 버리지 않겠다는 북한의 집착에 있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열차의 주(主) 기관사 역할을 포기하고 객(客)으로 전락한 것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국가목표는 평화, 번영, 통일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① 남북 화해.협력, ② 북한 개혁.개방, ③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북한 핵문제의 진전과 함께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관계에 있다. 이 두 바퀴는 다소 서로간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는 속도균형을 유지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우리 국가목표 달성의 핵심난제인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북핵 해결 가능한가? 북한이 포기할까?
많은 사람들은 북핵문제가 과연 해결이 가능한가 의심한다. 이라크와 리비아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광경을 보면서 북한의 집권세력은 그들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부세력의 개입에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핵 옵션에 더 강하게 집착코자 할 것이기에 북핵문제의 앞날이 더욱 걱정된다.
김정일 사망은 전망을 밝게 하기 보다는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혹 장악력 있는 지도자의 결단이라는 실낱같은 기대도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핵 유지(遺志)는 더욱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미.중이 모두 당장 핵문제보다는 북한의 정세안정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북핵 해결 가능성은 ① 북한의 붕괴, ② 한반도 통일, ③ 확고한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세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비추어 볼 때, 최소한 가까운 장래에 그들이 통일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타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붕괴도 조만간은 상정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결국 한반도에서 공존의 장치, 즉 확고한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긴 과정을 통해 핵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핵에 대한 한국의 정책방향은 ① 북핵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② 핵능력의 추가 발전을 억제하면서, ③ 현상동결하의 단계적 해결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모아진다.
현재 북핵 능력은 "초보단계의 핵폭발 장치"와 핵폭탄 6-8개를 제조할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미사일이나 항공기에 탑재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경량화에는 미달한 상태로서 최소한 1회 이상의 추가실험이 성공하지 않고는 실전배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다. 우라늄 농축작업도 저농축을 넘어 핵무기용 고농축 수준으로 넘어 가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지배적 관찰이다.
그러므로 우선 북핵능력이 실전 무기로 진전되는 것을 억제하는 가운데 장기적 해결을 도모하는 협상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2006년 10월 및 2009년 5월에 걸친 북한의 두 차례 핵 실험은 각각 BDA 사건과 핵폐기 검증의정서 문제로 6자회담이 좌초되어 있는 상태에서 감행되었다. 적어도 6자회담이 진지하게 진행 중인 동안에는 북한도 핵실험을 감행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 눈덮인 한반도 인공위성 사진. 한반도 정세의 냉각은 한국이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연합뉴스 |
6자회담이 2008년말 좌초한 후 많은 비판과 무용론이 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개국 공히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6자회담의 유용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각국 공히 북핵문제 해결의 기본 골격과 원칙을 압축한 9.19 공동선언과 1단계 이행계획서인 2.13 합의, 또는 회담의 운영방식 자체에 기본적 결함에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9.19 공동선언은 입체적 접근방법을 취하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과 병행하여 다른 국가들은 △경제협력과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를 실천하고, 동시에 △한반도 휴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과 △동북아 다자안보대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다만, 북핵협상은 군축협상과는 달리 북한의 핵카드와 다른 국가들의 경제협력 및 관계정상화 카드가 극히 비대칭적이기 때문에 정교한 주고 받기 방식을 고안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9.19 공동성명은 6개국 특히 남.북.미.중의 북핵과 한반도와 관련한 이해관계를 공통분모로 집약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핵 또는 한반도에 관한 지금까지의 어떤 국제적 합의보다도 한국의 핵심적 입장을 반영한 합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이 합의 이행을 위한 주변국들과의 조율이 바로 대주변국 외교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9.19 공동성명의 초기 시공단계로 진행중이던 2.13 합의는 북핵 불능화라는 작업의 막바지에 좌초되었다. 그 경과에 대해서는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2008년 말 북한의 이행지연 전술과 한.미.일의 경직된 입장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신고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이 언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없었던 것을 표면적 이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각국의 국내정치적 작용이 컸다. 미국은 과거 냉전시 미.소 군축협상에 적용한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라는 러시아 격언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검증하라, 그리고 믿어라(Verify, then trust)" 원칙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물론 북한의 과거 행적에 비추어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결국 북한이 제출한 핵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미국과 핵폐기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검증받을 것을 주장하는 북한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국내외 정치일정상 장기과정을 통해 문제의 근원에 접근을 하기에는 너무 바쁜 나라다. 반면 북한은 정권유지를 위한 국내정치가 지상과제이므로 가능한 긴 협상을 통해 정권을 연장해 가고자 한다. 양측의 기본 욕구를 접합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2007년까지는 이런 간격을 한국이 접목시켰다. 미국내 강경파와 협상파간의 기싸움에 한국정부가 거들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한국정부 교체 후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내 강경파들은 사전 검증되지 않은 합의는 불가하다고 밀어붙였다.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 기세에 밀려 3단계 핵폐기 과정에서 있을 검증조치 합의를 2단계 핵불능화 과정으로 앞당긴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미국 내에서마저 이는 경기중 골포스트 자체를 옮기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원래 이런 상황을 조율하면서 앞으로 끌어가야 할 한국정부마저 오히려 강경론에 앞장서고, 기회만 보고 있던 일본도 가세했던 것이다.
회담 재개와 관련한 각국 상황
지난 수개월간 식량지원과 우라늄농축시설 가동중단 및 IAEA 사찰단 복귀 등을 둘러싼 미.북 접촉을 통해 회담재개 가능성이 증가하던 중 김정일 사망으로 재개 움직임이 주춤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북한은 김정은 체제 하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유지를 살리고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6자회담을 진전시켜 에너지와 식량지원을 확보하고 김정은의 외교성과를 대내에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지금의 과도한 대중의존을 탈피하기 위해서도 한국, 미국, 일본과의 경제교류 창구가 필요하다. 과감한 선택은 어렵지만 작은 조치들을 이어가는 전술을 택할 것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이란 핵 교착과 위기 상태에서 북핵문제나마 상징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이 플루토늄 재고량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3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미국이 받을 정치적 타격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민주, 공화 공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분위기가 확산되어 있어 당장 실질적으로 유연한 입장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역시 지도부 교체시기에 북한의 안정을 위해 6자회담 재개와 진전을 필요로 한다. 중국은 또한 북핵 추가 악화 및 동북아 핵확산 저지뿐 아니라, 천안함과 연평도가 웅변한 바와 같이 동북아지역 긴장완화와 위기통제 장치로서도 회담의 재개가 긴요하다.
결국 북.미.중 모두 가급적 조속한 시일내에 회담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단, 실제로 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한 그림'이 먼저 나오도록 사전 노력해야 할 것이다.
MB정부 및 한나라당의 북핵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평가
MB정부는 '원칙에 철저하면서 유연한 대북정책'을 표방했다. 애초부터 말은 좋으나 실천은 안 되는 정책이다. 실제로 원칙도 없고, 유연하지도 못한 소위 "선핵폐기론"의 아둔함만 보여 왔다. 먼저 핵을 폐기하라고 외치기만 하는 가운데 모든 행동은 실종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핵능력은 방치되고 남북간 무력충돌만 격화되었다.
아울러 혹시 '통미봉남' 당했다는 비판을 막기 위해 미.북 접촉을 억제하느라 많은 국익을 상실해 왔다. 한.미 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미국 무기 구입은 물론 이란 등 중동에서의 시장 상실과 같은 거대한 대가들을 치러야 했다.
새누리당 유력 대선후보의 "신뢰외교, 균형정책" 역시 허상이기는 마찬가지다. MB정부의 '원칙'을 '신뢰'로, '유연'을 '균형'으로 개칭한 것에 불과하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 기초하는 것임에도 불구, 어떤 행동으로 신뢰를 구축할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중관계가 개선되면 중국의 대북지원이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 어린 가설을 내세움으로써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노정하고 있다. 결국 그가 제시한 정책은 신뢰와 행동 사이의 순환논법과 미.중의 정책에 대한 희망적 사고에 기초하고 있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북핵문제 및 대북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은?
그렇다면 북핵문제 및 대북정책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 주도로 북핵 외교를 펼쳐야 한다.
북핵해결의 핵심 관련국인 미.중은 한반도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한마디로 누가 더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갖느냐 하는 문제이다.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 없이는 이런 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행동양식에 있어서도 예를 들어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해 단기적이고 강경한 접근을 취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제정세와 한.미 조율에 따라 어느 정도 유연한 방향으로 조정이 가능한 반면, 중국은 일견 온건해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북한의 안정에 집착하는 입장을 장기적으로 경직되게 고수한다. 이러한 양국간 전략적 이해와 행동양식의 차이를 좁히면서 단계적이나마 타협을 촉진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한국의 몫이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한국의 노력도 마찬가지다. 중국 아닌 다른 나라와의 경제교류 문호를 필요로 하는 북한의 사정을 전략적으로 수용하면서 한반도 정세호전을 이끌어 가는 지혜를 한국이 발휘해야 한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교류보다 더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는 길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만큼 긴박감을 갖고 나서는 나라는 없다.
둘째,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는 병행해야 할 사안으로, 상호 추동 효과를 기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분리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개 사안은 결코 별개로 다룰 수가 없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에서 "9.19 공동선언과 2.13 합의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 공동노력"한다고 합의한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남북간에도 핵문제 논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만약 핵과 남북관계를 분리 추진한다면 우선 우리 국민들부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남.북과 중국은 남북관계를 우선 발전시키기를 기대하지만, 미.일은 비확산 차원에서 우선 핵문제 해결의 진전을 기대하는 미묘한 차이를 조화시켜야 한다.
당연히 이 투 트랙을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우리의 발언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북한은 끊임없이 6자회담에서 한국을 주변화 시키려는 전술을 구사해 왔고, 미국 또한 일단 북.미 접촉이 진전된다면 한.미 공조에 주력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한국은 고도의 전략을 강구해 두어야 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촉진해야 한다.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핵해결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선 2008년 말 중단된 불능화를 완료하고 바로 핵시설 및 물질의 본격적 폐기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같이 협상해야 한다. 평화체제 협상의 틀은 6자 모두가 아니라 9.19 공동성명에서 명기된 바와 같이 직접 당사자인 '남.북 +미.중' 구도로 협상해야 한다.
남북간에는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성명, 10.4 정상선언의 주요내용을 차근차근 이행해야 한다. 이는 남북간에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그 기초 위에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미간에 체결할 문서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관계정상화, 즉 수교협정이 될 것이다. 한.중 수교시와 같이 상호불가침, 무력불사용, 유엔헌장 존중 등 정상적 국가관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들어가면 된다. 그 다음 단계에서 남북간에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체제 문서에 합의하고 미·중이 이를 지지하는 형태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수립될 것이다.
2015년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작전지휘권(op-con) 전환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유지는 명실 공히 남과 북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실질 군사력이 없는 유엔군 사령관은 휴전체제를 지킬 수도, 평화를 유지할 권능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주한미군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한.미간 합의를 평화체제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넷째, 주변국 외교를 지혜롭게 펼쳐야 한다.
미·중은 공히 한반도에서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다. 현상을 유지·관리하면서 양측의 지역·세계 전략 차원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9.19 공동성명은 이런 상호이익의 공통분모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이행을 통해 미.중의 동북아 갈등과 충돌을 완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반도와 주변에서 미.중간 마찰 방지를 위해서도 현재 내면적으로 심한 갈등을 빚고 있는 한.중관계에 대해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한.중 양국은 한반도정세 안정, 핵확산 방지, 평화체제 수립, 동북아 안보대화장치 마련 등 전략적 공동이익을 분명히 갖고 있다. 6자회담에서 진정한 협력 없는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무의미하다. 현 정부처럼 한반도 미래에 대한 그림 없이 북한붕괴와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형국에서는 한·중간의 전략적 이익은 동반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할 수밖에 없다.
단, 중국과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전략적 조건부 협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북핵협상의 비대칭성을 감안하여 북한과의 주고받기에 있어 엄격한 상호주의와 동시행동원칙을 넘어 북측 요구사항을 먼저 준 다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우리측 요구사항을 받아내는 탄력적 시차 접근법으로 협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시차이행 약속을 어긴다면 그 때는 중국이 이행을 보증서는 방식의 "공세적 협상"을 택하는 것이다. 중국도 2009년 7월 미.중전략대화에서 "북한의 이유 있는 안보우려들을 미국이 수용해 준다면 북한도 미국이 희망하는 포괄적 해결방안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면서 유사한 "공세적 협상"을 시사한 바 있다.
러시아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 진전으로 극동개발과 동아시아 국가로서의 위상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공세적 외교의 원군이 될 수 있다. 일본도 공세적 외교의 혜택, 즉 일.북관계정상화와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수립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핵심은 한국이 6자회담 외교에서 미.중관계를 조화시키고, 그 바탕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한.미.일 3자협의 구도와 주한미군의 지역내 역할의 확대 경향이 동아시아에서 미.중간 전략적 마찰을 격화시키는 작용을 할 것으로 우려된다. "주한미군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될 수 없다"는 주한미군 운용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확실히 지킬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 강자는 대한민국
많은 국민들은 북핵 문제에 대해 만성적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년전인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되었을 때, 당시 막 통일된 독일이 그로부터 다시 20년 전인 1972년에 체결한 동.서독기본조약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가 한반도 통일의 장전이 될 것이라는 희망찬 꿈을 품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한반도 문제는 북핵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에 부딪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였다. 아니 현재의 상황을 잘라서 본다면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마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독일은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후 18년만에 통일을 이루었다. 당시 서독이 기본조약에 따라 꾸준한 교류와 접촉을 축적했고, 동독을 받치고 있던 소련의 붕괴를 기회로 서독이 공세적인 주변국 외교를 전개했기에 통일이 가능했다. 지금 우리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교류와 접촉은 단속(斷續)을 반복하고, 북한을 받치고 있는 중국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데, 대주변국 외교는 조화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3명의 지도자가 바뀌는 사이에 우리는 10명, 미국은 11명의 대통령이 각각 바뀌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도 바뀌어 왔다. 때로는 혼란스러울 정도의 정책 전환이 있었다.
스스로 혼란스러운 정책으로는 강압적이든 유화적이든 북한을 설득할 수 없고 중국의 협조도 끌어 낼 수 없다. 북한에게 역사의 흐름과 국제규범을 설교한다고 해서 핵과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무엇을 해주겠다는 당연해 보이지만 기계적이고 평면적인 접근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타협이 이루어지고 실행이 되면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길이 열릴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냉전상태의 소극적 평화에 있다. 주변국들이 이런 소극적 평화를 활용하면서 안주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만큼 이 소극적 평화를 적극적 평화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긴박감을 갖고 있는 이는 없다. 적극적 평화를 위한 부담감수와 선제조치는 강자만이 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강자는 대한민국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냉철하게 조명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입체적 전략으로 평화, 번영, 통일을 향한 공세적 외교를 펼 때가 되었다. 늦었지만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
* 송민순 의원(민주통합당.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6자회담 2.13 합의 5주년을 맞아 12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글을 전재합니다. 원제는 '북한 핵문제와 한국 외교안보 전략'입니다. (☞송민순 의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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