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사군도 분쟁, 美‧中 '힘겨루기' 양상으로 가나?

베트남 이어 필리핀도 '포문'…美, 필리핀에 군 물자 지원키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 여러 나라가 서로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상의 난사군도(南沙群島.영어명 스플래틀리 군도)를 사이에 둔 분쟁 구도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징병령까지 발동하며 강경 대응했던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는 최근 대화 국면으로의 기류변화가 감지되지만, 또다른 당사국 필리핀이 미국의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특히 미국은 필리핀에 군 물자를 제공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예고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필리핀 외무장관과의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최근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한다"며 관련 각국의 자제와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무력의 사용이나 위협에 대해서는 반대하며, 분쟁 해결을 위한 협력과 외교적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 장관은 필리핀 해군의 물자 지원 요청은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필리핀 측은 해군 현대화를 위해 필요한 물자를 대여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했으며, 클린턴 장관은 이에 대해 "필리핀의 방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클린턴 장관은 1951년 체결된 미국과 필리핀 간 공동방위조약을 언급하면서 필리핀 방위와 관련한 미국의 노력과 의지를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는 말과는 달리 사실상 남중국해 분쟁에서 필리핀 편, 또는 중국의 반대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클린턴 장관과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앨버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은 필리핀이 최근 해군 현대화를 위해 2억5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책정하는 등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침략적 행위에 맞서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천명했다.

▲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알베르트 델 로사리오 필리핀 외무장관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남중국해 분쟁, 미-중 대결 양상으로?

이는 최근 난사군도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중국과 베트남이 자국민들의 여론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전환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조용히 있던 필리핀이 미국을 끌어들여 다시 불을 붙이는 양상이다.

지난달 26일과 이번달 9일 2차례에 걸쳐 중국 선박이 난사군도 내에 설치된 베트남의 석유 탐사 케이블을 절단한 사건으로 양국 간 갈등이 불거졌고, 베트남은 13일 난사군도상의 무인도에서 해군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한데 이어 14일 징병령을 발동하며 초강수를 뒀다.

그러나 19일 베트남 해군 함정 2척이 중국 함정과 공동으로 남중국해 순찰 활동을 한 데 이어, 이 함정들이 중국 광둥(廣東)성 레이저우(雷州)반도의 잔장(湛江)항에 기항해 중국 해군과 우호‧교류활동을 펼쳤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태가 진정되는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왔다.

자국 영토권을 강조한 중국과 베트남의 공식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이는 국민정서를 고려한 것일 뿐, 취소할 수도 있었던 군사교류활동을 그대로 진행한 것을 보면 원만한 사태 해결을 바라는 양국의 '본심'이 내비쳐지지 않았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필리핀이 미국의 손을 잡고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남중국해 분쟁의 향방은 가늠할 수 없게 됐다. 22일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남중국해에 대한 필리핀의 영유권을 계속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앞서 분쟁 해역에 자국이 보유한 최대 함선인 1600 톤급 초계함을 파견한 필리핀 해군에 대한 미국의 물자지원을 클린턴 장관이 약속한 것이다. 필리핀은 또 오는 7월 미국과의 공동 해상 훈련을 앞두고 있다.

이는 국제적인 해상수송로란 점에서 남중국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풀이가 나온다. 필리핀이 중국에 비해 군사적으로 절대 약세임을 고려할 때, 필리핀의 강경한 태도는 미국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해 7월 "남중국해에 미국의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공화당 유력인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난 20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맞설 수 있도록 미국이 이들 국가에 군사 및 정치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매케인 의원은 "중국은 아세안 회원국 간의 분열을 활용해 그들을 속이면서 자국의 어젠다를 강조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며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공격적인 행동'과 '근거없는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매케인 의원은 아세안(ASEAN) 회원국들이 남중국해에 조기경보시스템과 함정을 배치할 수 있도록 미국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아세안 국가들 간의 분쟁을 정리해 아세안 국가들이 '통일된 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냉전 시대 미국이 소련 봉쇄를 위한 동맹을 구축하고 지원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 남중국해상의 난사군도 인근에 중국이 설치한 해양 구조물. 난사군도는 석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수산물 생산 조건도 좋아 많은 국가들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중국 반발 "미국은 빠져라"…오는 25일 아태사무협상에 '눈길'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중국 탓이 아니다"라며 "미국이 개입하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추이 부부장은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유관 각 측의 잦은 도발에 우려하고 있다"며 "여타 국가들도 중국처럼 자제하면서 책임 있고 건설적인 태도를 보이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만일 다른 국가들이 이러한 자세를 취한다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14일 "중국은 '남해각방행동선언'에 기초해 문제를 풀자"는 입장이라면서 "미국은 남중국해 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한 바 있다.

'G2'로 떠오른 중국에 대해 미국이 최근 관계가 급진전된 베트남과 동맹국 필리핀을 앞세워 견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세계의 이목은 오는 25~26일 하와이에서 개최될 미중 간의 아시아태평양 사무협상으로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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